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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둔 정치인들 지역대학에 손뻗자 덥썩잡는 대학들
총선 앞둔 정치인들 지역대학에 손뻗자 덥썩잡는 대학들
  • 이재 기자
  • 승인 2016.01.11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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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보건의대·창원 산업의대·사법시험 존치
‘선거용’ 공약에 멍드는 국가 기간인력 양성제도
▲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전남 곡성·순천)은 20대 총선을 100여일 앞두고 공공의과대학 및 공공의과대학병원 설립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앞서 이정현 의원은 지난 2014년 치러진 19대 재보궐선거에서 순천대 의대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워 승리한 바 있다. (사진= 이정현 의원실)

20대 총선을 100여일 앞두고 대학가가 시끄럽다. 의사와 법조인 등 국가의 기간인력을 양성하는 대학교육정책이 선거의 유불리에 따라 널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여년간 묶여 있던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풀기 위해 대학들이 적극적으로 정치권과 손을 잡으면서 관계부처가 불쾌감을 토로할 만큼 혼란스러운 양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전남 곡성·순천)의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보건의료대학설치법안)’이다. 국내 열악한 보건의료 인력을 중점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의된 이 법안은 이정현 의원이 지난 2014년 보궐선거 당시 ‘순천의대 유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발의한 법안이다. 

이정현 의원의 당선에는 여권실세가 지역의 숙원사업을 해결해줄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특히 이정현 의원이 선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이라며 의대유치를 자신하면서 표가 크게 쏠렸다는 평가다. 

보건의료대학설치법안은 오는 2030년 의사인력이 약 4천267명~9천960명 부족해져 인구 1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의 60% 수준으로 하락하고, 의료취약지역의 의사 역시 최소 1천명에서 2천명까지 부족해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보고서에 기초하고 있다. 의대 내에서도 성형 등 인기학과에 학생들이 몰리고 내과나 정형외과, 산부인과 등 힘든 학과에는 학생들이 미달되고 있어 공공·보건의료 인력부족현상이 심화될 전망이다. 

20년 숙원사업 의대설립에 ‘혹’한 대학

지난해 5월 이 법안을 발의한 이정현 의원은 12월 28일 재차 ‘공공의료인력 양성 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이정현 의원은 “의료취약지의 원활한 공공의료인력 확보를 위해 각계의견을 수렴해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이 법안에 대한 관계부처의 반응이다. 의료인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보건복지부는 28일 토론회에 직접 참석해 법안통과의지를 피력할 만큼 큰 지지를 보내고 있다. 반면 의대정원을 관장하는 교육부는 이 법안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교육부는 의대정원 뿐만 아니라 213개소 공공의료기관 가운데 20개에 달하는 대학병원을 관리하는 주무부처이기도 해 이정현 의원으로서도 부담이 크다. 교육부가 이 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주목할 지점은 공공의료대학의 관할부처다. 대학병원이 모두 교육부의 관할인데 반해 보건의료대학설치법안에 따라 설치되는 보건의료대학은 보건복지부 산하다. 또 이에 따라 설립될 부속·협력병원도 보건복지부가 관할하게 된다. 가뜩이나 고용노동부 산하 폴리텍대학과 비교를 자주 당하고 있는 교육부로서는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손이 미치지 않는 의대가 생기는 셈이라 반발이 큰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도 이 법안에 대해 반대목소리를 내고 있다. 신현영 대한의협 홍보이사는 “의협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도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공공의대 설립에 투입될 자금과 시간을 고려하면 보다 현실적으로 공공의료인력을 양성하는 방법이 분명 있다. 이를 외면한 채 공공의대 설립만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선거용 전략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표심을 얻기 위해 의대설립을 주장하는 것은 이정현 의원만이 아니다. 경남 창원시의창구를 지역구로 둔 박성호 새누리당 의원 역시 최근 산업재해 연구와 치료를 위한 전문의대를 창원대에 설립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한 ‘창원산업의료대학 및 창원산업의료대학병원의 설치ㆍ운영에 관한 법률안(창원의대법안)’을 지난해 12월 8일 발의했다. 

박성호 의원은 “창원지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업공단지역이나 해당 지역에 의사인력을 양성하는 의과대학이 설치되지 않아 의료 인프라가 열악해 산업의료대학 및 산업의료대학병원의 설치가 필요하다”며 “창원산업의료대학과 창원산업의료대학병원을 설치해 산업의료 분야에 장기간 복무할 산업의료인력을 양성하고 산업재해에 따른 치료ㆍ재활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현 의원의 보건의료대학설치법안이 유치대학을 특정하지 않은 데 반해 박성호 의원은 창원대에 산업의대와 의대병원을 설치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창원대 역시 약 20여년간 의대설립에 관심을 기울여온 대학이다. 박성호 의원 외에도 그간 지역구 의원을 초청해 수차례 의대설립을 위한 발대식을 진행한 바도 있다. 그러나 법안까지 발의해 의대설립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이면에는 박성호 의원 개인의 특별한 이력이 작용했다. 박성호 의원은 19대 총선에 앞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창원대 총장을 역임했다. 1990년 창원대 국제무역학과 교수로 임용된 뒤 학생부처장과 처장, 창원대 중국비즈니스인력양성사업단장 등도 거쳤다. 창원대 총장 당시 직접 의대설립을 위한 유치활동에 나서기도 한 바 있어 의대설립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2012년 19대 총선을 통해 처음 국회에 입성한 박성호 의원은 이번 20대 선거에도 재선에 나선다. 그러나 이번엔 창원지역에 출마한 새누리당 내 후보가 많다. 현역의원인 박성호 의원을 비롯해 창원시장을 지냈던 박완수 전 국제인천공항공사 사장과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새누리당)이 출사표를 냈다. 무명의 김모하 예비후보(새누리당)도 출마해 여권에서만 4명이 경합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박성호 의원으로서도 당선을 확실히할 만한 ‘한방’이 필요했던 셈이다. 한 야권인사는 “사회의 근간을 이뤄야할 의료인력양성제도가 선거에 동원되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민들도 의대설립이라는 공약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검토하는 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지방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의대유치공약’과 달리 서울에서는 관악구를 두고 여야의원들이 모두 법조인 양성제도 개정을 꺼내들었다. 현행 법학전문대학원 도입과 함께 폐지가 예정됐던 사법시험을 존치시켜 관악구의 부동산 임대업자들의 표심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임대업자 표심 노린 ‘사법시험 존치’

여당은 이미 수차례 사법시험을 존치시키자는 법안을 냈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오신환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발의한 ‘사법시험법 일부법률개정안’이다. 2017년으로 예정된 사법시험 폐지를 취소하고 사법시험을 존치하도록 하는 게 주요내용이다. 오신환 의원은 지난해 4월 치러진 재보궐선거에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사법시험 존치를 공약으로 당선됐다. 당선된 직후 사법시험 존치 법안을 낸 것이다. 오신환 의원은 또 지난해 12월 법무부가 사법시험 폐지 4년 유예안을 발표하자 “만시지탄의 아쉬움이 있지만 의미 있는 결정”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맞서는 야당 역시 사법시험 존치공약으로 지역표심 공략에 나섰다. 오신환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관악을에 예비후보로 출마한 정태호 관악을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장은 지난해 김관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사법시험, 폐지할 것인가’ 국회토론회에 참가해 사법시험 존치 입장을 전달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신림동 주민과 임대업자 400여명이 대거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정태호 위원장은 앞서 지난 2014년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오신환 의원과 맞붙었던 인물로 당시에도 사법시험 존치를 지역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국가 기간인력 양성제도가 ‘선거용’으로 전락하는 데 우려가 크다. 정치학을 전공한 한 사립대 명예교수는 “말로는 자원도 없는 나라라 인재가 재산이라면서 국가를 장기적으로 떠받쳐야 하는 기간인력양성제도를 마구잡이로 훼손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갈택이어 아니겠는가. 선거 한번 끝나면 제도가 남아나질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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