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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올해의 사자성어 ‘君舟民水’
2016년 올해의 사자성어 ‘君舟民水’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12.2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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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丙申年,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환하게 밝힌 것은 전국의 촛불이었다. 촛불은 바람을 타고 권력의 심장까지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가을과 겨울이 함께 증발했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했다. 교수들은 과연 이런 한 해를 어떤 사자성어로 집어냈을까.
 
전국의 교수들이 선택한 2016 올해의 사자성어는 君舟民水다. 출전은 『苟子』 「王制」편이다. 원문은 “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君以此思危 則危將焉而不至矣.”다. 풀이하면,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육영수 중앙대 교수(역사학)가 추천한 성어로 응답한 교수 611명 가운데 32.4%(198명)가 이 성어를 꼽았다.
 
육영수 교수는 추천 이유로 좀더 전복적인 설명을 내놨다. “엄밀히 따지자면, ‘군주가 배라면 백성은 물이다.’라는 사자성어도 시대착오적인 개념이다. 유가사상에 입각한 전국시대의 지식인(순자)이 지배자에게 민본주의를 훈수하는 帝王學에서 파생됐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의 세상에는 더 이상 무조건 존경받아야 하는 군주도 없고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는’ 착하고도 슬픈 백성도 없다. 그러므로 ‘君舟民水’라는 낡은 사자성어는 현대적으로 새롭게 번역돼야 마땅하다.”
 
역대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 세태의 단면들과 부합하는 성어들이 경합했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군주민수와 경합을 벌인 성어는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가 추천한 ‘逆天者亡’으로, 28.8%(176명)가 세태를 반영한 성어로 꼽았다. 『孟子』에 나오는 말로, “천리를 거스리는 자는 패망하기 마련이다”라는 뜻이다. 이 교수는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헌정농단은 입헌민주주의의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원리를 거스른 일”이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가 추천한 ‘露積成海’도 선전했다. 응답자의 18.5%(113명)가 이 성어를 꼽았다. 윤 교수는 “작은 이슬방울들이 모여 창대한 바다를 이루듯, 과거의 낡은 시대를 폐기하고 성숙한 공화정인 2017 모델로 나아가는 한국 역사의 큰 길을 시민들의 촛불 바다가 장엄하게 밝혔다”라고 추천 이유를 댔다.
 
이밖에도 올해의 사자성어 최종 후보에는 憑公營私(빙공영사), 人衆勝天(인중승천) 등도 올랐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가 추천했다. 전자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고, 후자는 미증유의 사건에 사태와 그 처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정치공학적 접근을 비판하면서 시민들이 광화문 촛불집회를 통해 국회의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2016 올해의 사자성어에 비친 한국사회, 함성이 돼 민주주의 회복을 선언하다
 
군주민수, 역천자망, 노적성해, 빙공영사, 인중승천은 올해 후반기에 불거진 가파른 정국 변화를 꼭 찌른 사자성어들이다. 민주주의의 원칙과 재권주민의 의미를 밝혔고, 공적인 일을 빙자해 사익을 챙긴 이들에 대한 날선 비판으로, 결국 정치공학적 셈법에 의존하는 정치권을 질타해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워준 시민의식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교수들은 밤을 밝힌 촛불의  바다에서 민주주의의 미래를 읽어냈다.
 
‘군주민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은 한 교수는 “2천500년 전에 이렇게 주권재민의 원리를 이야기한 순자에게 소름끼치는 경외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군주민수를 꼽은 교수들은 민주주의 본령에 합치한다고 봤다.
 
‘역천자망’을 꼽은 교수들의 시각은 대동소이했다. 한 교수의 설명처럼 “국정농단은 민주주의 시스템이 붕괴되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사건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정치는 망하기 마련”이라는 것.
 
‘노적성해’를 사자성어로 꼽은 교수들은 어떤 생각일까. 이들은 “빗방울 자체는 힘이 약하고 바람에 쉬 날리고 힘도 나약하지만, 서로 연대해 바다를 이룬다. 2017년 대한민국의 촛불은 우리의 미래를 비추는 희망의 등불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빙공영사’를 꼽은 교수들은 “이번 국정농단의 핵심적인 본질은 사사로운 사적 이익과 공적 책임을 구별하지 못한 비선과 대통령의 잘못으로 발생한 국난이다”라고 비판했다.
 
사람이 하늘을 이긴다는 ‘인중승천’을 꼽은 교수들은 ‘민심이 곧 천심’, 혹은 “어떤 힘도 진리와 국민을 이기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추천했다”고 밝혔다.
 
올해의 사자성어 추천위원들이 보내준 사자성어 후보군에는 좀더 다양한 성어들이 즐비하다. 현실주의 감각이 뛰어난 곽복선 경상대 교수는 ‘重蹈覆轍(중도복철)’과 ‘堤潰蟻穴(제궤의혈)’ 등을 추천했다. ‘앞에서 벌어진 잘못된 일을 반복한다’는 뜻을 지닌 중도복철을 추천한 이유로 곽 교수는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 모두 대통령 임기 4~5년차에 인친척, 측근의 비리가 발생해 온 나라가 시끄러웠는데 박근혜 정권도 역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정치사는 왜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는가?”라는 힐난을 들었다.
 
석길암 금강대 교수는 ‘百尺竿頭(백척간두)’를 제안했다. 800년대 중반에 활약한 초기 남종선의 인물인 장사경잠(?~868)의 게송의 일부인데, 그는 두 가지 관점에서 ‘백척간두’를 올해의 사자성어 후보로 냈다. 하나는 상당한 수행의 진척을 이룬 상황을 빗댄 것으로, “그 이룬 자리에 집착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며, 나아가 대통령의 소통불능, 소통거부의 태도가 초래한 위기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하나는 촛불의 힘으로, ‘백척간두 진일보’의 의미(‘백 척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는 진전을 예비하는 말)다. 석 교수는 “10월부터 계속해서 이어지는 촛불시위는 이처럼 백척간두에서 進一步해야 한다는 국민의 열망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을 보탰다.
 
빙공영사와 인중승천을 추천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이외에도 ‘百思不解(백사불해)’도 함께 골라줬다. 그가 ‘백번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이 성어를 추천한 이유는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사건 처리, 위안부합의, 사드도입, 그리고 국정농단 등 대통령의 국정난맥의 이유와 현상 등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어서”다.
 
합리적 보수주의로 이름난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문을 던지면서 ‘羊頭狗肉(양두구육)’을 함께 추천했다. “입만 열면 ‘자신은 국가와 국민만 생각하며 사심은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임을 자랑하는 최악의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이다.
 
역시 균형감각을 잘 보여주는 허형만 목포대 명예교수는 ‘知足無辱(지족무욕)’을 골라줬다. 허 명예교수는 ‘욕심이 지나치면 그것을 채우려는 마음에 도량이 없어지고 경거망동한다. 경거망동하면 재앙이 생긴다.’는 이 성어를 추천한 이유를 “크게는 제후의 자리에 오르고 작게는 천금의 부를 쌓아도 그 이상을 바라면 결국 형벌이나 사형보다 더 지독한 고통에 빠진다”라고 설명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君舟民水란?
2016 올해의 사자성어는 ‘君舟民水’다. 출전은 『苟子』 「王制」편이다. 원문은 “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君以此思危 則危將焉而不至矣.”다. 풀이하면,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육영수 중앙대 교수(역사학)가 추천한 성어로 응답한 교수 611명 가운데 32.4%(198명)가 이 성어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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