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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와 언론개혁
시민사회와 언론개혁
  • 교수신문
  • 승인 2001.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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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한국 언론에서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삶의 현장이 어떠한지, 그들이 알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하고 바라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가 언론을 통해서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정부 또는 정책 당국자들의 기업대책, 금융대책, 교육대책, 건설, 통신, 교통대책 등등 각종 정책 발표와 논란에 대한 뉴스는 있어도 정작 기업의 현장, 노동의 현장, 농촌 현장, 교육의 현장, 학문의 현장, 어업, 어촌의 현장 등등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거기에서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고 쌓여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한국 언론들이 그렇게 무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한국 언론이 개혁되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제 한국의 언론이 그들의 존재이유를 ‘국민들의 알 권리’에서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데서 출발한다. 알다시피 근대 민주주의 언론은 서구의 시민혁명과 함께 생성하고 발전하였다. 이 근대 언론은 중세의 봉건체제, 근대 초기 절대왕정의 ‘궁정언론’과는 그 기반을 전혀 달리하면서 지배 체제의 ‘관보’를 타도하고 시민사회에 바탕한 전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체제였다. 절대권력의 홍보선전 수단으로서의 봉건적 언론과 근대 시민사회에서의 국민적 자유로서의 시민 언론으로 대별되는 두 가지 유형의 언론 개념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언론은 여전히 전자의 유형, 즉 봉건적 언론에 속한다.

국민의 ‘알권리’ 외면하는 한국언론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생겨난 한국 언론은 일제의 파시즘적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채 8.15해방을 맞았고 해방과 동시에 밀려온 동·서 냉전 이데올로기와 민족분단, 6.25 동란을 겪으면서 사상적 폐쇄성과 군사문화에 길들여져 왔다.
2000년대 한국사회의 최대의 과제는 안으로는 나라의 민주화이고 밖으로는 남북의 화해와 교류, 그리고 통일로 나아가는 일이다. 한국 사회가 시민사회로 나아가려면 그에 걸맞게 사회의 모든 분야가 민주적 법과 제도를 갖추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경제성장도, 한국 사회의 선진화나 세계화도 진전될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한국사회가 세계사에서도 이미 폐기처분된 50년 전의 분단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앞으로도 계속 남북이 반목, 대립, 적대시한다면 한반도는 다시 한번 세계열강의 세력 각축장이 되었던 100년 전의 역사로 되돌아가 버릴 것이다. 한국 언론이 개혁되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이같은 민족사의 기로 위에서 한국 언론이 참으로 반민주적이고 수구적이라는데 있다.
한국 언론은 현재 시민사회가 사회 각 분야에 걸쳐서 주장하고 요구하고 있는 각종의 개혁입법의 목소리를 전반적으로 묵살·외면하고 있고 심지어는 냉소적이다. 한국 언론들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인권법이나 부패 방지법의 제정운동, 국가보안법의 폐지 내지는 개정운동, 나아가 교육관계법의 민주적 개정운동을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현 추세대로라면 한국 언론은 남북의 통일로 가는 긴 여로 내내 ‘북한 불신론’, ‘상호주의’, ‘남한 경제살리기 우선론’ 등등 수많은 이유로 계속 딴지를 걸게 될 것이다.

시민사회의 언론으로 거듭나야

한국의 언론들은 현재 시민사회에서 날로 높아가고 있는 ‘언론개혁’의 목소리들에 대해 ‘언론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최근 국세청이 실시하고 있는 언론사 정기 세무조사 조차 일부 언론사들은 ‘언론사 목조르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은 그동안 자산규모 1백억원 이상의 기업들에게 5년마다 한번씩 정기적으로 실시하게 되어있는 세무조사를 언론사들에게만 ‘열외’시킨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해왔다. 그것은 언론사들도 만민에게 평등한 법치에서 ‘성역’일 수가 없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언론사들 자체가 탈법, 탈세 등 불법에서 벗어나야만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권력의 횡포나 부정·부패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사 세무조사는 당면한 언론의 법과 제도개혁과는 무관한 일이다. 정기간행물등록법 개정이나 언론시장의 공정한 질서 확립, 광고시장에서의 기업의 자유로운 선택권, 아직도 정부가 직접 지배하고 통제하는 언론사들에 대한 소유구조개편 등등 언론의 민주화를 위한 개혁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리 시민사회는 이 개혁과제들을 정부권력이 언론 길들이기에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야 정당, 시민단체, 학계, 언론 현업인들이 참여하는 가칭 ‘언론발전위원회’를 국회에 설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행정부는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 언론이 시민사회의 언론으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것, 언론사나 언론인이 아무 말이나 마구하는 그들만의 ‘언론자유’가 아니라 국민들의 편에 서서 오직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것, 그것을 위한 법과 제도의 개혁이 ‘언론개혁운동’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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