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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인지과학선서’는 어떻게 성공한 총서가 됐을까?
도쿄대 ‘인지과학선서’는 어떻게 성공한 총서가 됐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11.13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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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전집) 기획’ 다룬 제35회 한국·일본대학출판부협회 합동 세미나

‘총서’, ‘전집’은 한 나라의 출판문화 정수를 측량할 수 있는 눈금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출판계는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총서나 전집을 갖추지 못했다. 지난 1일부터 사흘간 제주에서 진행된 제35회 한국·일본대학출판부협회 합동 세미나가 흥미로운 건 이 때문이다. 주제가 아예 ‘총서(전집) 기획과 대학출판부’였다. 두 가지가 읽힌다. 하나는 대학출판부가 어떤 새로운 활로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반 상업 출판사들도 절절매는 ‘전집’ 작업에 대학출판부가 도전장을 던질 수 있다는 신호다.

이번 한일국제세미나에는 한국에선 49명이, 일본에선 9명이 참가해, 두 건의 주제를 소화했다. 제1주제는 ‘총서(전집) 기획과 대학출판부’, 제2주제는 ‘실제 총서(전집) 발간·기획 성공사례’였다. 과연 어떤 논의가 오갔을까. 양광준(충남대출판문화원)의  「대학출판부 총서 발간 현황과 그 의미」와, 구로다 다쿠야(도쿄대학출판회): 「‘인지과학선서’(전 24권)에 대하여」를 발췌, 소개한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한일대학출판부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총서(전집) 기획과 대학출판부’를 주제로 아이디어를 서로 교환했다.
세미나를 마친 뒤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제공=한국대학출판부협회

 

양광준(충남대출판문화원): 「대학출판부 총서 발간 현황과 그 의미」

각 대학출판부에서 발간한 총서는 크게 세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 발간 유형은 학술 및 교양 관련 총서류다. 이 유형들 중 총서를 발행하는 각 대학의 개성이 십분 드러나는 총서들이 관심을 갖게 했다. 가톨릭대와 침례신학대 등 신학대학을 단과대학으로 거느리고 있거나 신학을 중심으로 설립된 대학에서 발간된 총서가 있었다. 이 두 학교의 출판부에서 발간된 총서는 신학에 특화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부산외대출판부의 총서는 외국어와 외국문화 교육을 전문으로 특화된 이 대학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이화여대출판문화원에서 발행된 여성학총서는 이화여대가 한국 여성학의 선구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총서라 할 수 있다. 단국대의 대학병원 건강 교실, 서울대출판문화원의 Health+ 시리즈 등은 대학이 보유한 대학 병원을 매개로 발간한 총서라는 점에 특이점이 있다. 대구대출판부에서 발간한 특수교육총서, 치료교육총서 등은 대구대가 특성화한 특수교육과 연계된 분야의 총서라는 점에서 흥미를 갖게 한다.

물론 가장 일반적인 총서는 특정 주제를 바탕으로 발간된 인문학 관련 총서이다. 건국대출판부의 세계작가탐구 시리즈, 경성대출판부에서 간행한 경성대 문화총서, 연세대출판문화원에서 발행한 문학의 기본 개념 시리즈, 영남대출판부의 인문학 육성총서 등이다. 아울러 대학 내 연구소 등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발간되는 총서 유형도 다수 있었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에서 집필한 동양학 학술총서, 부산대 영화연구소에서 집필한 영화연구소 학술총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발행한 아시아연구소 총서 기초연구 시리즈, 충남대 인문과학연구소에서 발행한 인지문화연구 시리즈 등이 그 사례다.

두 번째 발간 유형은 지역 관련 총서류다. 각 대학이 위치한 지역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문화와 역사, 철학, 언어 등의 주제와 연관된 총서 유형을 말한다. 경상대출판부에서 발행한 지앤유 로컬북스 시리즈, 계명대출판부의 계명영남학총서 등이다.

세 번째 발간 유형은 한국과 글로벌 관련 총서류다. 대학이 교육기관으로서 해야 할 중요한 역할중 하나는 글로벌 인재 양성일 것이다. 세계화 속에서 국제적 경쟁력 확보를 다지기 위해서는 이 유형의 총서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영남대출판부의 민족문화자료총서와 중국연구총서, 서울대출판문화원의 미국학총서와 일본연구총서, 성균관대출판부의 동아시아학술원총서 등의 총서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동안 발간된 총서를 확인한 결과 대학출판부는 학술·교육적 영역에서 전문적이고 다양한 총서를 발간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일반 대중과 같은 다양한 독자층을 고려하여 기획하고 발간한 총서도 눈에 띤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대목은 지역 관련 총서류의 발간이 적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체 대학출판부의 지역관련 총서 목록을 모두 조사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지만 이 유형의 총서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대학출판부의 역할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과 연계하여 생각하면 깊이 고민해 봐야할 대목으로 보인다.

 

구로다 다쿠야(도쿄대학출판회): 「‘인지과학선서’(전 24권)에 대하여」

오늘 여기에서 전집이나 총서(시리즈 기획 등)의 성공사례로 거론하는 것은 1985년 10월부터 1992년 5월에 걸쳐 도쿄대학출판회에서 간행된 ‘인지과학선서’ 전 24권입니다. 이 선서 시리즈는 그야말로 일본에 ‘인지과학’이라는 언어학, 심리학, 컴퓨터과학, 철학 등을 포함한 학제적 연구를, 연구자는 물론 일반 독자에게도 널리 소개해, 인지과학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고, 그 연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됐으며, 현재의 인공지능연구 융성에도 연결된 도전적인 출판 기획이었습니다.

한국의 출판시장과 일본의 출판시장은 규모가 다르므로 단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일본에서도 일정 레벨의 전문적 지식이 들어있는 서적이 1만 부를 초과하는 경우는 좀처럼 드뭅니다. 5천부를 초과하면 아주 잘 팔렸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매일 주문을 받고 있다는 입장에서 ‘팔린다’고 실감할 수 있는 것은 3천부를 초과한 정도일 것입니다.

‘인지과학선서’는 ‘인지과학’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인식시키고 그 후의 학문 전개에 탄력을 주었으며 나아가 매출 면에서도 높은 성공을 거뒀습니다. ‘인지과학선서’는 왜 이렇게 성공했을까. 또 왜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는가. 이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선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유 중 한 가지는 어찌 됐든 재미있는 연구를 하는 사람을 찾아내 쓰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에키 유타카(佐伯) 교수의 말을 인용합니다. “(이 인지과학선서의) 편집자들이 취한 작전은 다양한 테마를 설정하고 ‘연구회’를 개최해 그 연구회에서 할 발표를 모집하는 가운데 재미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교섭해서 참가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연구회에서 할 발표 가운데 반짝 빛나는 것이 있는 사람을 주목하고 그 사람이 쓴 것을 찾아내 ‘혼자서 책을 쓸 수 있을까’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것은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단계에서 본인에게 의뢰하고 격려하며 ‘이렇게 써 보면 어떨지’ 등 의논해 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사에키 교수가 당시를 회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편집작업은 더없이 어려웠다. 첫 초고는 거의 모든 페이지가 빨갛게 보일 정도로 수정이 들어가거나 직접 저자와 면담해 ‘며칠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의 혹평과 함께 원고를 그대로 돌려보낸 일도 있었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집필자가 몇 번이나 다시 써 준 것은 편집위원과 편집자가 ‘이것이야말로 최고로 재밌다, 중요한 포인트다!’ 라고 감동한 점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그 점을 나타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진심으로 집필자와 의논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 제2고, 제3고가 되면 놀랄 정도로 알기 쉽고 정열이 넘치며 박력 있는 문체로 바뀌어 오는 것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전반에 일본에서도 새로운 학문적 지평을 개척하고자 했던 다양한 연구자들의 정열이 출판과 만났을 때 현재에도 영향력을 지속하는 시리즈로 결실을 본 것입니다. 단, 이러한 열기 넘치는 ‘인지과학’도 지금은 이미 normal science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연구가 진행된 증거이기도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서는 멀어져 간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차세대 독자에게 우리 대학출판부는 어떤 틀로 재미있고 자극적인 학문을 전할 수 있을까요. 그때 이 ‘인지과학선서’에 관련된 사람들의 정열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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