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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출간된 책도 ‘기념판’으로 … 재해석·영향 분석 눈길끌어
1970년대 출간된 책도 ‘기념판’으로 … 재해석·영향 분석 눈길끌어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11.20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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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_ 책 속으로 들어온 ‘러시아혁명 100주년’

러시아혁명 100주년인 2017년. 그 11월도 열흘 정도 남았지만 餘震처럼 관련 책들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어떤 책들이, 어떤 관점에서 쏟아져 나왔을까. 책 속으로 들어온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정리할 때,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바로 서울대출판문화원에서 내놓은 ‘문명공동연구’ 7권  『1905년 러시아 혁명과 동아시아 3국의 반응』(박노자·이혜경 외 지음, 2016.12)이다. 1905년 러시아혁명이 동아시아 세 나라에 미친 영향과 그 반응을 다뤘으니, 엄밀히 말하면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조명한 책이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2017년을 의식해 기획했고, 특히 혁명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고 평가되는 1905년의 러시아혁명이 동아시아의 입헌운동과 혁명운동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짚어내고자 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은 ‘100주년’을 조명하는 조명탄과도 같은 작업으로 꼽아도 좋을 듯하다.

좀더 본격적인 책은 『혁명과 이행: 러시아혁명의 현재성과 21세기 이행기의 새로운 혁명 전략』(제8회 맑스코뮤날레 엮음, 한울, 2017.5)이다. ‘현재성’과 ‘새로운 혁명 전략’이란 부제의 표현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2017년 5월 12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제8회 맑스코뮤날레에서 발표된 글을 묶은 이 책에서는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아 러시아혁명을 새롭게 평가하고 사유하는 작업이 펼쳐진다. 이 작업을 출발점으로 삼아 새로운 사회 혁명의 가능성과 사회적 대전환의 가능성을 모색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특히 이 책은 러시아혁명과 레닌주의를 다양한 시각에서 평가했으며, 68혁명과 중국혁명을 비롯해 20세기의 여러 혁명적 운동을 새롭게 해석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과거의 담론에 그치지 않고 인공지능, 제4차 산업혁명과 같은 최근의 담론을 고려한 혁명과 이행의 전략을 논의하고, 생태 위기에 대한 대안적 전략도 분석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오늘날 마르크스주의 운동을 실현할 대안으로 적-녹-보라 연대와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도 빠뜨리지 않았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이 세기의 사건에 맞춰 재호명된 책들도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잘 알려진 E.H.카의 『러시아혁명』(유강은 옮김, 이데아, 2017.7)과 러시아 혁명사 연구의 거장 알렉산더 라비노비치의 1976년 작(The Bolsheviks Come to Power)을 개정한 『1917년 러시아 혁명: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유한수 옮김, 책갈피, 2017.7)이다.

카는 국내의 일반 독자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소비에트 러시아’ 연구의 권위자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자체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대공황과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점철된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계획화와 전체주의에 대해선 호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이런 태도 때문에 보수적인 기성 학계에서 배척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카는 이런 ‘왕따’ 분위기를 전화위복으로 삼았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 1950년 1권을 발표한 뒤로 1978년 마지막 권을 내놓기까지 28년 동안 열네 권으로 펴낸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1950~1978년)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그리고 14권의 저술을 마친 이듬해인 1979년에 일반 독자를 위해 간추려 쓴 게 바로 이 책 『러시아혁명』이다. 1917년에서 시작해서 1929년으로 끝나는 이 책의 서술은 혁명의 발발부터 전쟁과 내전, 전시공산주의, 신경제정책, 5개년 계획, 농업 집단화, 독재의 시작 등으로 이어지는 혁명 직후 10여 년의 기간을 다룬다. 혁명의 딜레마가 어떤 식으로든 처리되고 스탈린 독재의 기틀이 마련되면서 향후에 소련 체제가 나아갈 방향이 정해진 시점까지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1934년에 태어난 알렉산더 라비노비치는, 10월혁명 이후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러시아인 집안에서 자랐다. 미국에서 교육받으며 처음에는 대다수 역사학자처럼 10월혁명을 쿠데타로 보는 보수적 견해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수많은 1차 사료를 분석하며 러시아 혁명을 엄정하게 연구하다가 1917년의 ‘진실’을 알게 됐고, 마침내 10월혁명을 평등을 목표로 삼은 진정한 대중 혁명으로 보게 됐다. 볼셰비키의 10월혁명을 다룬 최상의 연구서라는 명성을 얻은 이 책은 소련에서 최초로 번역·출간된 서방 학자의 10월혁명 역사서이기도 하다. 1917년 7월 봉기부터 10월혁명까지를 상세히 다루고 있으며, 또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 혁명가들의 논쟁과 실천, 평범한 노동자와 병사의 목소리, 숨겨져 있던 이야기 등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러시아혁명 100주년에 맞춰 개정판으로 미국, 한국 등에서 출간됐다. 보리스 콜로니츠키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럽대학 역사학 교수는 “이 책을 읽지 않고 러시아 혁명사를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상찬했다.

국내 저자의 책들도 눈에 띈다.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인 최일붕이 쓴 『러시아 혁명: 희망과 좌절』(책갈피, 2017.8), 귀화한 연구자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의 『러시아 혁명사 강의』(나무연필, 2017.9)다. 앞의 책은 러시아 혁명을 둘러싼 숱한 혼란과 왜곡을 걷어 내려는 시도이자, 스탈린의 소련을 혁명 러시아와 엄격하게 구별해 21세기 혁명의 가능성을 되살리려는 데 무게를 실었다. 반면, 뒤의 책은 ‘혁명의 여파와 영향’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 점은 2016년 12월 출간된 『1905년 러시아 혁명과 동아시아 3국의 반응』에 박노자가 필진으로 참여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 혁명 100년 1: 정치·사회』(박영균·한정숙 외 지음, 2017.10), 『다시 돌아보는 러시아 혁명 100년 2: 인문·예술』(박종소·김수환 외 지음, 2017.10)도 혁명 이후 100년의 磁場을 짚어낸 국내 기획서로 볼 수 있다. 일단 이 책들은 오늘날 한국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점수를 매길 수 있다. 다만 주제에 맞춰 새롭게 집필한 게 아니라, 최근 수년간 학계와 여러 토론 공간에서 발표된 논문과 평론들을 실었다는 게 약간 김빠진다. 1권에는 혁명 해석사를 한눈에 정리, 분석한 한정숙의 글에서부터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면면을 추적한 심광현의 글까지, 다양한 주제와 관점을 보여주는 논문 10편이 실려 있다. 2권에는 러시아 혁명이 문학에 불러온 변화의 과정을 조망한 박종소의 글에서부터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포스터 속 레닌 이미지의 특징과 변화를 분석한 김정희의 글까지, 러시아 혁명과 예술의 관계를 다룬 인문·예술 분야의 논문 12편이 실렸다.

관점이 조금 튀는 책도 있다. 러시아 현대사의 권위자인 런던대 버벡 칼리지의 올랜도 파이지스 교수가 쓴 『혁명의 러시아 1891~1991』(조준래 옮김, 어크로스, 2017.11)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러시아 혁명을 100년 동안 장기지속된 하나의 사이클로 서술한다. 러시아 혁명을 다룬 대부분의 책들이 혁명이 일어난 1917년 전후의 짧은 시기의 사정에만 초점을 맞춘 것과는 차별되는 지점이다. 올랜도 파이지스는 이 책에서 혁명의 기원에서부터 독재, 그리고 소련 몰락에 이르는 비극적인 과정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서 혁명 이전의 제정 러시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인류 최대의 유토피아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 혁명과 공산주의에 대한 이상이 어떻게 현실에서 왜곡되고 실패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레닌과 볼셰비키의 10월 혁명에서 고르바초프의 개혁 이후 소련 몰락에 이르는 전 과정을 혁명의 계승과 진행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했다.

‘러시아혁명 100주년 기념판’도 이들 목록에 덧붙일 수 있다. 슬라보예 지젝이 쓰고, 편집한 『파국과 혁명 사이에서 1―혁명의 기술에 관하여』(레닌 지음, 슬라보예 지젝 편집 및 서문, 정영목 옮김, 생각의힘, 2017.10), 『파국과 혁명 사이에서 2―레닌의 유산: 진리로 나아갈 권리』(슬라보예 지젝 지음, 정영목 옮김, 생각의힘, 2017.10)가 그렇다. 러시아혁명의 가장 긴박한 순간에 쓴 레닌의 텍스트에 기반해 지젝은 자신의 철학적 방법론과 아이디어로 레닌의 기획을 재사유해, 레닌이 기획했으나 실행하지 못한 것, 사유했으나 실천하지 못한 것, 나아가 레닌이 미처 사유하지 못한 것, 다시 말해 레닌을 ‘파국’과 ‘혁명’ 사이에 놓인 우리 시대의 문제로 읽어낸다. 이외 『소련의 건강 보장―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판 소련 보건의료 1』(세마쉬코 지음, 신영전 외 옮김), 『붉은 의료: 소련의 사회화한 건강―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판 소련 보건의료 2』(J.A.킹스베리 외 지음, 신영전 외 옮김,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7.11)도 기념판으로 나왔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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