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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대학에 넘어왔다
공은 대학에 넘어왔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12.0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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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최익현 편집국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학구조개혁평가’가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구조개혁평가 대신 진단과 지원에 집중하겠다는 신호다. 재정지원을 통해 대학 줄세우기 하던 기본 방식에서 선회한 것이라 우선 환영할 만하다.
 
2015년 실시된 대학구조개혁평가는 대학 정원과 각종 지원 사업에 ‘구조개혁’ 평가를 연계했다. 이 때문에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근본적인 비판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각종 재정 지원 사업이 걸려 있어서 대학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30일 교육부가 공식 발표한 내용이지만, 그림은 한달여 전인 10월 23일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취임 100일을 맞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을 때, 이미 나왔다. 구조개혁평가를 대학의 기본 교육 여건을 진단하고 지원하는 ‘대학 기본역량진단’으로 개선하고, 대학재정지원사업도 사업 구조를 단순화해 대학의 기본역량 향상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목표부터 성과관리까지 대학이 자율적으로 운용하는 ‘상향식 지원 방식’도 제시됐다.
 
물론 이번 발표로 대학의 자율관리가 당장 가시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기본역량진단’이라고 명패를 바꿨다고 하지만, 여전히 ‘역량 진단’이라는 외부적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대학을 지원하다보니 최소한의 전문적 진단은 필요할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 ‘官’의 입김을 최소화하고, ‘民’의 의지를 최대한 보장하느냐다.
 
그러나 여기서 더 큰 고민을 하게 되는 대목이 있다. 과연 한국의 대학들이 정부가 ‘대학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말할 때, 대학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대학들 스스로 ‘자율관리’를 수행할 내공을 축적하고 있냐는 ‘체력 여부’가 아니라, 대학들이 생각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자율관리’의 방향성과 철학에 대한 대학공동체의 ‘합의 여부’일 것이다.
 
그간 정부가 내세운 각종 당근을 챙겨왔던 대학이다. 비자발적 자발성, 다시 말해 안으로부터의 자기 분석과 요청이 아니라 밖으로부터의 요청에 의해 대학교육을 밀고 나갔다. 그것은 돈 안 되는 전통적인 분과학문들의 축소로 이어졌고, 파행적인 강사법과 비정규직 교수 양산이란 깊은 골을 만들기도 했다.
 
교육부가 대학 줄세우기 정책에서 탈피하겠다고 밝힌 이상, 이제 공은 대학에 넘어왔다. 실은 정부가 이런저런 대학정책을 그려나가고 있을 때, 인류 공동체의 미래와 진리 탐구를 기치를 내세운 대학이었다면, 과감하게 자신의 방향성을 고집하면서 정부 정책에 ‘아니오!’라고 말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제 대학들이 답해야 할 차례다. 고령화와 저출산, 에너지·환경, 사회경제적 양극화, 국민통합과 남북통일, 인류 평화 기여 등 한국사회가 풀어야할 과제가 수두룩하다. 대학은 이런 문제와 무관한 곳일까. 오로지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취업’ 하나에 대학역량을 퍼붓던 관성은 쉽게 근절될 수 있을까. 베이비부머 세대 교수들의 은퇴 이후, 이 나라 학문공동체의 체질과 근력, 개성을 새롭게 구성하는 문제는 또 어떨까. 강사 문제도, 학문후속세대 문제도 그렇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지금 한국 대학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4차산업혁명’을 말하고, 이것을 하나의 修辭처럼 곳곳에 펄럭이게 만들고 있다. 속도는 있으되, 방향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이런 방향성은, 조금 느리더라도 대학공동체 깊은 곳에서부터 토론과 숙의를 통해 도출돼야 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교수들과 교직원, 학교당국은 오랜 시간 내공을 축적해왔다. 서로의 내공과 지혜를 대화와 소통, 숙의의 장에 올려 대학이 나가야할 방향을 깊이 모색하는 광경을 보고 싶다.
 

 

최익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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