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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살이’를 기록한다는 것
‘춤살이’를 기록한다는 것
  • 윤덕경 서원대·체육교육과
  • 승인 2018.01.22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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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필자는 11살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근처서 들려오는 장구 소리에 이끌려.

무용학원으로 몇 번이고 찾아가 유심히 구경하고 필자는 그 황홀감에 어머니를 조른 끝에 드디어 춤을 배울 수 있었다. 학교서도 필자의 머릿속은 온통 춤과 무용선생님과 ‘나’였다. 필자는 삶 속에서 춤을 췄고, 마음과 생각 속에서 춤을 만들었다. 필자에게 춤을 추고 춤사위를 만드는 일은 세상을 사는 일, 예술적 주체인 필자의 삶을 사는 일이었다. 어느 새 춤이 필자를 만들었다. 고마운 ‘춤살이’이다.

교수직 정년퇴임이라는 세상사 한 매듭을 앞두고 의미 있는 정리를 하자는 생각에서 틈틈이 춤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예전부터 준비해온 성과물을 집대성하는 차원의 작업이었다. 몇 년 전에도 지난 춤살이 여정과 작품들을 모아 춤 화보집을 준비했었다. 여러 사정으로 마무리되지 못했지만, 그 작업들이 춤을 기록하는 작업의 기반이 됐다. 따라서 이 책은 여러 해 산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작업이 그때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 있다면, 화보집을 넘어 사진과 글로써 ‘춤을 기록한다’라는 콘셉트를 강화한 것이다.

이번 기록물을 준비하면서 ‘춤을 기록한다’는 말을 오래도록 붙들고 매만졌다. 춤을 추는 것, 구성하고 만드는 것, 춤을 느끼는 것, 춤을 보는 것, 그것을 또한 회상하고 기억하는 것까지. 그 과정과 요소들을 온전히 더듬어 챙기고 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온전한 기록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 첫 무대의 두근거림, 함께 한 이들의 땀의 무게, 영감이 떠오르던 그 순간들의 황홀 감, 춤과 교감하고 하나 됐던 관객들의 예술적 감흥을 어떻게 다 담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결국 시간과 역사와 여러 삶들을 관통하는 예술체험의 순간과 연속에 맡겨야 하는 일이다. 삶과 예술은 온전히 기록될 수 없지만 그래도 이어지고 깊이 남는다. 그 결론에 앞에서 ‘기록’에 대한 욕심은 겸손해지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필자가 의도한 ‘춤의 기록’은 필자의 춤과 춤살이를 기록의 형식으로 재구성해 또 다른 가능성을 마련하는 지극한 시도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필자의 춤과 삶에 대한 수습과 정돈일 것이다. 춤을 통한 도전과 세상과의 교감, 그 과정에서 주고받은 영광과 희열, 상처들의 모음이기도 할 것이다. 아직 남아있는 춤살이 의 도약을 위한 성찰의 자료도 될 터이다. 나아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떤 춤 꾼 의 이야기가 한 시대의 춤의 흐름을 울퉁불퉁 보여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 창작춤 의 소박한 증언이기도 할 것이다. 후학들의 매서운 비평에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쓰임에 대한 기대로 이 겸연쩍은 기록을 마련했다.

춤을 기록하는 일은 즐거움이었고 또한 겸손과 절제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지난 춤들이 마치 꿈같아서 꿈속에서 상상하고 다시 꿈을 꾸는 환상적인 여행이었다. 아울러 수많은 사연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새삼 고마움을 배우는 일이었고, 그 시간은 기록의 과잉을 범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들이었다.

필차의 첫 안무작은  「연에 불타올라」다. 작년 11월엔 「화려한 외출」로 장애인들과 함께한 춤을 구상하기도 했다. 그 모든 춤의 궤적들을 기록물로 한데 엮었다. 필자의 기록은 4부로 구성된 책으로 발간됐다. 먼저 1부 ‘44 Dance and worlds: 기쁨도 슬픔도 넘치지 않고’에서는 44개의 춤 레파토리에서 초연작품을 사진과 함께 설명했다. 2부 ‘Autography: 시간으로 몸짓을 깁다’는 춤꾼으로 살아온 춤살이의 여러 마디와 대목들을 간단하게 자서했다. 글이 미치지 못한 점을 보완하려 여러 사진들도 곁들였다. 3부에서는 평론가들의 글과 리뷰, 몇몇 인터뷰를 간추려 실었다. 많은 격려를 주신 평론들과 리뷰들을 다 옮겨 싣지 못해 송구할 따름이다. 4부는 작품 관련 포스터자료와 춤 공연활동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 필자의 여정을 참조하도록 했다.

기록 작업을 하다보니 필자의 춤살이는 세상 도처의 인연과 도움으로 마련됐다는 점을 느꼈다. 한없는 스승의 가르침은 물론이고, 동료들 제자들과 함께한 협력자 모두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꽃의 눈이 강인함을 잃지 않고 한겨울을 견디며 준비하듯 가족들은 필자가 기록 작업하는 데 있어 열정과 강인함의 근거가 돼 줬다.

윤덕경 서원대·체육교육과
윤덕경 서원대·체육교육과

 

이화여대 무용과에서 학사를,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건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윤덕경 춤을 기록하다』가 있다. 창무회 회장, 한국무용연구회 이사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장애인문화예술진흥개발원 부이사장직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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