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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과학자'로서의 어려움
'의사+과학자'로서의 어려움
  • 오창명 차의과대 임상조교수(분당차병원 내분비내과)
  • 승인 2018.03.0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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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 오창명 차의과대 임상조교수(분당차병원 내분비내과)

필자는 진료실보다는 실험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의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대를 졸업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등의 수련을 받고 환자를 보는 임상 의사가 되거나 기초 의학교실로 진학하여 석사, 박사 등의 학위를 취득하고 기초 의학자로서 연구를 한다. 임상을 선택하신 분 중에 대학에서 진료와 함께 연구를 계속해나가는 분들을 가리켜 임상 의학자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임상 의학과 기초 의학이라는 두 분야는 언뜻 보면 매우 달라 보이지만, 사실 아주 다른 길은 아니다. 두 길 모두 사람의 질병과 마주하고 그 병리기전을 이해하여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지향점이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상 의사 중에도 임상 연구뿐만 아니라 기초 연구를 활발히 하시는 분들도 많고, 기초의학교실에도 임상 경험을 충분히 쌓은 후에 기초 연구를 열정적으로 하시는 분들도 많다. 두 분야 연구자들 간의 공동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요즘은 임상 경험을 통해 얻은 질병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증명하기 위해 기초 연구를 하고 계시는 분들이나, 반대로 기초 연구에서 얻은 아이디어들을 실제 임상에서 증명해나가고 계신 분들이 참 많다. 이런 분들을 가리켜 따로 의사과학자(Physician Scientist)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임상 의사 중에서 기초 의학 연구를 활발히 하시는 분들이나 임상 의학과 기초 의학을 접목 시키는 중개 연구 (Translational research)를 하시는 분들을 가리킨다. 

이 ‘의사과학자’라는 건 아직까지는 명확하게 정의된 개념은 아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의사이지만 환자를 직접 마주하는 시간보다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의사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는 의미에서 필자 또한 ‘의사과학자’에 가까운 사람 중 하나이다. 필자는 의대를 졸업하고 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 내과 전문의가 된 다음,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서 4년 동안 기초 의학을 연구하여 2015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지금까지 대학병원에서 임상 의사로서 진료를 보며, 실험대에 앉아 細胞株 또는 동물을 이용하여 실험도 계속 하고 있다.

비록 몇 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지만, 그 간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의사과학자의 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우선 진료를 계속 보기 위해선 임상의로서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환자는 실력 있는 의사를 보러 온 것이지 연구 잘하는 과학자를 보러 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도 기초 의학 연구만을 하시는 분들만큼 잘 해야 한다. 임상 의사가 만들었다고 해서 데이터에 가산점이 붙지는 않기 때문이다. 

의사과학자에게는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있다. 우선은 진료를 가능한 한 줄이고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다. 진료를 아예 중단하는 것을 고민해보기도 한다. 이러면 기초 연구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보다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이렇게 하면, 임상 경험들이 더 이상은 쌓이지 않기 때문에 점차 ‘임상 경험이 있는 기초 과학자’로서의 장점들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 방안은 기초 연구를 포기하고 진료 및 임상 연구에 집중하는 것이다.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연구자로서도 임상 의학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하면 ‘임상 의학자’이지 더 이상은 ‘의사과학자’가 아니게 된다. 

필자가 생각해낸 마지막 방안은, 임상에서 많은 환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 해결되지 않고 있는 분야에 집중해서 기초 연구를 해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기초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얻은 지식들이 바로 임상에서의 최신 知見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임상에서 겪은 경험들이 기초 연구 과정에서 부딪힌 벽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문제는 실제로 이렇게 하려면 진료도 임상 의학자처럼 열심히 해야 하고 기초 연구도 기초 의학자처럼 열심히 해야만 하므로, 결국 ‘방안’이랄 것이 못 된다는 점이다. 결국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주위를 보면 많은 선배님들이 이 어려운 길을 훌륭하게 걸어가고 계신 것 같다.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을 비롯한 여러 의과학대학원에서 새롭게 의사과학자로서 길을 걷기 시작한 후배님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 글을 보실 여러 교수님께서 앞으로 ‘의사과학자’들이 걸어가는 길을 잘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창명 차의과대학 임상조교수(분당차병원 내분비내과) 

한국과학기술원 의과학대학원에서 박사를 했다. 이후 비만, 당뇨병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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