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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강의 스케치] ①김상봉의 칸트강의(문예아카데미)
[열린강의 스케치] ①김상봉의 칸트강의(문예아카데미)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1.0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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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20 14:49:27

월요일 7시 인사동 ‘문예아카데미’ 제1강의실. 빈자리가 거의 없다. 수강생은 대학원생과 학부생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엔 교수와 목사도 끼어 있고 문화비평가도 눈에 띤다.

지난 세기 독일의 관념론이 오늘날 어떤 효용이 있을까 라는 의구심은 김상봉 강사의 열강을 들으면서 잦아든다. “칸트 미학은 우리 시대의 미학적 사유 속에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상황에 닿아있다. 그것은 바로 예술의 자율성 문제다. 칸트와 함께 가거나 칸트에 반대해 갈 수는 있지만, 칸트 없이는 갈 수 없다”는 김 강사의 문제의식이, 학적 깊이와 활달한 언변을 통해서 공유되기 때문이다.

왜 칸트 미학인가 라는 질문에 김상봉 강사는 “수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실제로 그는 93년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학교 밖 강의를 계속해 왔으며, 교수를 그만 둔 지금은 ‘문예아카데미’ 외에도 ‘철학 아카데미’와 ‘김상봉의 철학교실’에서 ‘라틴어’ ‘희랍어’ ‘철학사’ 등을 강의하고 있다.

적지 않은 인문학도가 학교 밖 강의를 찾는 것은 분명히 대학에서 인문학에 대한 수요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대학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대학 바깥의 강의가 대학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학에 자극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그의 강의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긴 하지만, 강의의 수준은 대학원에서 개설했던 강의와 다름없다. 강의 수준은 “수강자의 반응에 따라서 조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강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교수와 학생 사이의 권력 관계가 없기 때문에 생산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는 것, 여러 학과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각도의 질문이 제기된다는 것 정도다.

물론 전공자만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아니기 때문에 번역서를 읽어야 한다는 한계도 있다. 그러나 김상봉 강사는 주교재인 ‘판단력 비판’을 자신이 직접 번역하여 수강자들에게 읽게 함으로써 그런 한계를 최소화하고 있다. 게다가 칸트 철학의 효용은 결코 철학 전공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한 대학원생은 “요새 정치학과의 추세가 실용적인 분야에 몰려 있어 정치철학으로 논문을 쓰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이 강의는 나에게 논문 지도 교수보다 더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번 학기에 강독하는 부분은 “예술과 사회의 관계”에 주목한다. 강의 첫 시간에 김 강사는 “심미적 판단력은 정치적 판단력과 동근원적이다”라는 명제를 제시했다. 그리고 강의가 막바지에 이른 지금 수강자들은 그런 선언이 칸트의 텍스트 속에서 어떻게 증명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칸트가 강조하는 것은 미적 쾌락의 보편적 전달가능성이며, 김 강사는 칸트가 아름다움에 대한 공통감각을 통해서 지적 보편성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고 해석한다. 칸트의 미학을 사회적·정치적 지평에 적용하는 것이다.

보편적 소통가능성에 대한 그의 철학적 성찰은 그런 가능성이 부재한 문학과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수업 중에 간간이 ‘학벌 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을 ‘선전’하는 것도 뼈아픈 사회비판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그가 진행하는 이 反학벌 운동 역시 주류사회학의 전제를 반성케 하는 철학적 사유에 기반하고 있다. 서구의 경우에는 사회적 차별의 주체를 계급이나 남성 등 보편자로 매개할 수 때문에 ‘무엇이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하지만, 우리 나라의 공동체는 씨족의 연합에 불과하기 때문에 ‘누가 지배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강사에 따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학벌’이다. 그의 열린 강의에서 진지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도 이곳이 학벌과 무관한 학문 공동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아 기자 anonio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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