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兩博의 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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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18.04.0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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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김철교 배재대 명예교수·경영학

만 70세 초입에 중앙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어에 있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나의 DNA에 혹은 개인 무의식에, 배움의 인자가 들어 있는 모양이다.
특히 배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동안에는 감리교 신학(목원대 신학석사)을 공부했으며, 상담심리학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6학기(상담전문가과정 3학기, 코칭전문가과정 3학기)동안 배우고 연구재단에 등재된 심리학 학회지에 논문까지 게재한 바 있다.

정년 퇴임 후에 주어지는 ‘적지 않은 세월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의 물음에 대한 정답은 없다. 사람마다 생김생김은 물론이요 성격과 DNA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삶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안지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오직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직업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는 사람일 것이고, 다음으로는 최소한 정년 퇴임 후에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좋은 문장을 대할 때마다 기쁨을 느낀다. 조부께서 평생 서당에서, 학동들과 나에게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學而時習之 不亦說呼)에 세뇌돼, 강의실에 교수로 서 있는 것도 즐거웠지만, 학생으로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더 즐겼다. 하서 김인후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던 조부는 매천 황현 수하에서 수학하면서 진사에 합격했으나 시대가 어수선하여 평생을 막걸리와 시를 벗 삼아 서당 훈장으로 보내셨다. 종조부님은 일본에서 공부하고 조선대 총장을 지내셨다. 6.25 때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시고 대위로 제대하신 아버님께서는 광주사범을 졸업하셨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40여년을 봉직하시다가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셨다. 지금은 대전국립묘지에 누워계신다.

나 또한 가풍을 따라 교단에 서기 위해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아내가 국어 선생님이어서 나는 회사로 직장을 옮겼으나,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되는 바람에, 중앙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결국은 1990년에 교단으로 돌아와 배재대 경영학 교수로 정년 퇴임했다.

2014년 2월에 정년 퇴임을 하자마자 3월에 바로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 올해 2월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 나의 좌우명은 교수다운 교수, 장로다운 장로, 시인다운 시인이 되자는 것이었다. 부끄럽지 않은 교수가 되기 위해 적지 않은 저서(증보판을 제외하고 경영경제 관련 19권, 문학 관련 11권 등 30권)와 논문(연구재단 등재지 18편 등 51편)을 썼고, 신학석사과정을 통해 성경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려고 노력했으며, 문학박사과정을 통해 문학 이론을 나름대로 정립하고 싶었다.

경영학 교수로 정년 퇴임을 한 후에 문학박사과정을 시작한 것은 내 나름의 예술론 혹은 문학론을 갖기 위함이었고, 미술과 음악과 시가 어우러진 詩劇을 쓰기 위함이었다. 학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문학에 대한 열망은 튼실한 열매를 맺지 못했었다. 도중에 회사로 방향을 트는 바람에 경영학으로 젊은 시절을 보낸 것이다. 1971년에 공군 번역실에서 군 복무를 하는 동안 『詩가 있는 마을』(시문사)이라는 시집을 발간한 바 있으나, 등단이라는 과정은 2001년 수필, 2002년 시, 2015년 평론을 거쳐서, 2018년 소설부문으로 마무리하였다. 물론 시와 평론에 전력투구할 것이지만, 타 장르의 작품을 쓰는 것도 문학의 폭과 넓이를 확장해 갈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했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각 장르의 수업을 들으면서 숙제를 하는 동안 얻은 수확이라 할 것이다. 

 

 

김철교 배재대 명예교수 · 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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