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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인터넷 중독증?
[문화비평] 인터넷 중독증?
  • 교수
  • 승인 2001.0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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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2-20 14:51:53

90년대 초부터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도태되어 버릴 것이라는 주장들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증이 이 사회를 휩쓸었으나, 아무도 이런 강박증에 감히 저항하지 못했다. 다시 1990년대 말이 되자 이제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도태되어 버릴 것이라는 주장들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이런 주장에 힘입어 이 사회는 2000년 말에 인터넷 이용자가 2000만명에 육박하는 ‘인터넷 강국’이 됐다.

강박증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이용자가 급격히 늘어난 까닭을 설명해 주는 좋은 예가 된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한 심리적 현상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익히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여기도록 하는 것, 이것이 컴퓨터와 인터넷의 이용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강박증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컴퓨터산업을 중심으로 한 현대 사회체계의 정치경제적 실천의 산물이다. 이 점에서 그것은 심리적 현상을 훌쩍 뛰어넘는 사회적 현상이다.

강박증이 컴퓨터와 인터넷의 이용에서 보이는 급격한 변화를 설명해 주는 공통 요인이라면, 중독증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이용에 대한 이 사회의 차별적 대응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아무도 ‘컴퓨터 중독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 중독증’에 대한 경고를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차이가 나타나게 된 것일까?인터넷 중독증은 단순히 하루 중의 상당 시간을 인터넷에 매달리며 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상태를 뜻한다. 여기에는 명백히 부정적인 뜻이 함축되어 있다. 요컨대 인터넷 중독증은 치유되어야 할 새로운 정신적 질환이다.

잘알다시피 중독증은 흔히 인체의 화학적 반응과 관련된 정신적 이상상태를 뜻한다. 알콜중독이나 마약중독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매체이다. 이런 매체에 대해 중독증을 논한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책에 푹 빠져 드는 것은 ‘독서 삼매경’이라고 하지 ‘독서 중독증’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텔레비전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텔레비전 중독증’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고 해도 ‘컴퓨터 중독증’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인터넷에 대해서만 유독 ‘인터넷 중독증’을 논하는가? 이런 차이는 분명히 인터넷의 매체적 특성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열린 통신매체로서 인터넷은 인류가 이제까지 이용한 매체 중에서 표현의 자유를 가장 높은 정도로 누릴 수 있는 매체이다. 그 어떤 매체도 인터넷만큼 높은 수준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인터넷은 인류가 이제까지 이용한 매체 중에서 가장 위험한 매체이기도 하다.

인터넷 중독증과 관련해서 이 위험성은 대체로 두가지로 논의되는 것 같다. 첫째, 익명성을 통한 ‘자아의 해방’이 ‘정체성의 혼란’으로까지 이어져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사이버포르노’를 둘러싼 해묵은 논란에서 최근의 ‘자살 사이트’나 ‘폭탄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반사회적’이지만 몹시 자극적인 내용들을 인터넷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들을 자율적으로 조절하여 인터넷을 슬기롭게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충동장애’가 바로 인터넷 중독증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 중독증은 우리가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우리를 이용하는 현대 사회의 뒤집힌 기술적 현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중독증이 아니라 강박증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인터넷 중독증은 인터넷 강박증의 이면이다. 따라서 인터넷 강박증을 유발하는 사회적 기제들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인터넷 중독증을 경고하는 것은 기만이거나 미봉이다.

인터넷 중독증에 관한 논의는 이용자들의 개인적 능력이나 취향에 관한 비판적 진단을 넘어서 인터넷의 올바른 이용과 관련된 사회적 의제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인터넷 강박증의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 인터넷 중독증에 관한 경고는 ‘인터넷 삼매경’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멀쩡한 사람들을 정신적 장애자로 취급하는 우를 범하기 십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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