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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찾아온 연구의 즐거움과 책임감
함께 찾아온 연구의 즐거움과 책임감
  • 이윤미 건국대 나노기술연구센터·박사후연구원
  • 승인 2018.04.23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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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기고문 요청을 받고, 연구자로서 내가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다른 분들이 쓴 글들을 읽게 됐다. 나와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어 공감도 되고, 다들 열정이 가득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대체 그분들의 그런 열정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이런 물음을 자문하다 석사 신입생 때가 떠올랐다. 

석사과정에 입학해 처음으로 실험을 배우던 날이었다. 단백질의 발현 정도에 따라 까맣게 탄 필름을 보여주며 실험을 가르쳐주던 선배가 내게 물었다. “이것 봐, 진짜 신기하지?” 그렇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솔직히 별로 신기하지 않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멋모르고 연구가 시작됐다. 

실험 얘기를 할 땐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다른 실험실 동료들에 비하면, 나는 이렇다 할 대단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대단한 열정이나 호기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나이는 들어가는데, 경제적인 활동을 못한다는 불안감, 학위를 받는다고 해서 보장된 어떤 것도 없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도 너무 커서 연구가 마냥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 만난 취직한 친구가 멋지게 차려입고 나온 걸 볼 때면,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논문이 완성될 때의 성취감, 좋은 실험실 환경, 훌륭한 스승님과 동료들, 마음이 요동치더라도 매일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야만 한다는 내 성격일 것이다. 학위과정 중에 마음이 가장 편안했을 때는 박사학위 논문의 최종 심사를 통과한 날로부터 졸업식 날까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바라던 졸업장을 받고 사회에 나와 보니, 열정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수많은 경쟁자들 속에서 나는 하나의 점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졸업과 동시에 출산을 하며, 2년 정도 연구도 쉬게 됐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지 2개월이 됐을 때, 좋은 기회로 다시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하게 됐다. 재빠르게 변화하는 연구동향 속에서 내가 얼마나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너무 컸다. 그런데 오히려 학위과정이 끝난 후의 연구는 정말로 즐거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자체 육아휴직 동안, 나는 성숙해졌고 책임감도 강해졌다. 실험을 하면 그 결과가 너무나 궁금했고, 논문을 제출하면 저널에서 어떤 답이 올지도 몹시 궁금했다. 연구 자체가 즐거워지니,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어졌다. 그리고 결과물의 정확도가 오히려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연구가 전보다 더 즐거워진 것은 한국연구재단의 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에 선정되고 난 이후부터였다. 내가 제안한 실험 내용에 대한 연구비를 지원받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게다가 하고 싶은 연구를 안정된 자리에서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깨닫게 됐다. 연구책임자가 된다는 것이 물론 쉽지는 않지만 시야가 더 넓어진 것은 분명하다. 아직도 고민 중인 많은 후배 연구자들에게 나처럼 늦게 깨닫는 사람도 있으니 너무 낙담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많은 회사와 학교, 연구소에서 나처럼 엄마가 되고난 뒤, 책임감이 전보다 강해지는 사람도 있으니, 너무 여성과학자들을 꺼려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 봄바람에 떨어진 벚꽃의 꽃잎들이 흩날리는 캠퍼스를 보며 포기하지 않았더니 캠퍼스의 낭만을 여전히 즐길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연구실에 석사 신입생이 입학했다. 실험을 가르쳐 주며, 마지막으로 내가 덧붙인 말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진짜 신기하지 않니?”였다. "그렇다"고 대답한 우리 연구실 석사 신입생이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보다 빨리 연구에 대한 즐거움과 연구에 대한 책임감을 찾길 바란다. 

 

이윤미 건국대 나노기술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서울대 의과대학 약리학교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암, 대사성증후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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