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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올림픽, 드러난 엘리트 체육 시스템의 민낯
평창 올림픽, 드러난 엘리트 체육 시스템의 민낯
  • 양도웅
  • 승인 2018.05.08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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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육학회 주최 제37회 국민체육진흥세미나 「평창 올림픽, 체육 정책, 그리고 국민행복」

국가가 운동선수들을 육성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시스템일까. 한국체육학회(회장 강신욱, 단국대)가 지난달 27일 ‘평창 올림픽, 체육 정책, 그리고 국민행복’을 주제로 제37회 국민체육진흥세미나를 개최했다. 위 세미나의 좌장을 맡은 류태호 고려대 교수(체육교육과)는 “평창 올림픽과 올림픽을 구분해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이 설령 성공한 올림픽이라 하더라도 올림픽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들은 해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판문점으로부터 약 200여km 떨어진 평창에서는 올림픽 개·폐회식이 열린 스타디움을 철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올림픽 이후, 막대한 유지 및 관리 비용만 발생한다는 것이 철거의 이유였다. 

세미나의 좌장을 맡은 류태호 고려대 교수(체육교육과)는 “평창 올림픽과 올림픽을 구분해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한국체육학회
세미나의 좌장을 맡은 류태호 고려대 교수(체육교육과)는 “평창 올림픽과 올림픽을 구분해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한국체육학회

올림픽,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첫 번째 발표를 맡은 이학준 대구대 교수(한국특수문제연구소)는 「올림픽 평가와 포스트 평창」에서 “평창 올림픽은 평화와 화해를 회복했다는 측면에서 성공한 올림픽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경제적인 측면과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적인 측면에서 그가 언급한 것은 올림픽 준비 단계에서부터 논란을 빚은 가리왕산 복원 문제였다. 

지난 정부가 약 2천억원을 들여 2016년에 완공한 가리왕산 알파인 스키장은 현재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복원 비용 때문이다. 급한 경사, 부족한 적설량 등으로 알파인 스키장 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됐다. 따라서 올림픽 폐막 후 가리왕산 복원 계획을 잡고 건설했다. 하지만 천억원 넘게 들어가는 복원사업을 막상 하려니 여의치가 않은 것이다. 설령 복원사업이 진행된다 해도, 단 26일 동안 사용하기 위해 자그마치 3천억원이 넘는 국고가 사용되는 것이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밖에 없었을까? 이 교수와 동일한 주제로 발표를 한 양종구 〈동아일보〉 기자는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제기됐던 ‘분산 개최’를 언급했다. “개·폐회식장의 경우도 최초에는 강릉에 지으려 했다. 하지만 평창이 반발해 평창에 짓게 됐다. 단, ‘짓고 부수겠다’가 조건이었다.” 하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알파인 스키장 또한 이런 문제로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열린 무주리조트의 활강경기장을 이용하자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무시됐다.

‘분산 개최’는 IOC가 권고한 사항이기도 했다. IOC 또한 환경 파괴와 재정 부담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위 제안이 수용되지 않은 이유로 ‘지역 이기주의’를 언급했다. “지방 자치단체에서 메가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할 때 지역 마케팅이나 지역장의 정치적 야심도 중요하지만, 국가 전체 이익이 얼마큼 되는가를 따져야 하는데, 무작정 달려들고 난 뒤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에 모두 떠넘기는 식이다”며 “지역 이기주의가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강원도청은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에 국비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메달로 ‘공무원’되는 것이 목표인 선수들

평창 올림픽 이슈 가운데 남북 단일팀 문제는 빼놓을 수 없다. 남북 평화도 중요하지만, 몇 년 동안 올림픽을 준비한 선수들이 국가 간의 이해관계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이에 대해 「체육 위기 속 해법 찾기: 체육 위기에 대한 정책 진단과 대응」을 발표한 전용배 단국대 교수(스포츠경영학과)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많은 선수들이, 국가나 국민들의 요구에 반대의사를 표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동계 올림픽에서 성적을 낸 선수들은 대부분 ‘공무원’이며, 그들은 올림픽 참가로 100만원이 넘는 수당을 받았다”는 것이 그가 내세운 근거였다. 

평창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상화 선수는 스포츠토토빙상단 소속의 선수로 ‘공무원’이다. 국민들의 혈세로 운동을 하고 올림픽에 출전했다. 반면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 수상자이자 이상화 선수와 국경을 뛰어넘는 우정을 보여준 일본의 고다이라 선수는 과거에 스폰서십을 구하지 못해 은퇴를 고민할 정도였다. 그녀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친구와 달리 정부의 지원보다는 현재 일하고 있는 병원장의 호의 때문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을 선사한 쇼트트랙의 최민정 선수 또한 성남시청 소속의 ‘공무원’이다. 

지난 25일,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행하는 체육진흥투표권인 스포츠토토의 수탁사업자인 ㈜케이토토(대표 손준철)가 스포츠토토빙상단 소속의 이상화에게 포상금 3천만원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 출처=스포츠토토 홈페이지
지난 25일,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행하는 체육진흥투표권인 스포츠토토의 수탁사업자인 ㈜케이토토(대표 손준철)가 스포츠토토빙상단 소속의 이상화에게 포상금 3천만원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 출처=스포츠토토 홈페이지

국가와 국민의 지원을 받는 그들이, 국가와 국민의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 ‘개인의 권리’를 근거로 반대 입장을 내놓는다는 것이 적절한가? 전 교수는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그러나 이런 문제의 이면에는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존재한다”며 “엘리트 체육 시스템에 따른 저변 위축은 결국 운동선수들의 일자리 문제와 지도자 처우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선택권 없이 평생 운동만한 선수들이 결국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국가 지원’뿐이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국가 지원을 받기 위해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메달’을 획득 해야만 하는 이 시스템이 바로 우리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인 것이다. 

“운동선수들이 격리되는 게 문제다”

세미나의 마지막 주제 「체육 바로 세우기: 체육계 적폐청산 과제와 대응」을 발표한 이대택 국민대 교수(스포츠건강재활학과)는 여자 팀추월 경기 이후 줄곧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한 교수를 언급한 뒤, “40년 전부터 지적한 것이 왜 해결되지 않았을까.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적폐가 해결될 필요가 아예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이어 “패러다임의 전환과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으면, 여자 팀추월 경기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은 다음 올림픽에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문제는 스포츠를 국가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만 해결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안으로 그는 새로운 ‘스포츠 기본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무엇보다 그 법을 만드는 데 체육계만이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체육계는 체육 정책을 자신들만이 만드는 데 자부심을 갖는다. 하지만 체육 외의 다른 분야도 체육 정책을 만드는 데 들어와야 한다.” 그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을, 한 사람 혹은 하나의 조직만이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읽힌다.

평창 올림픽의 유산은 무엇일까. 수많은 외신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목도한 장면 중 하나는 체육계의 만연한 비리와 인권유린 등이었다. 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는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왕따’를 당했고, 한 쇼트트랙 선수는 올림픽 개막전 코치의 폭행으로 훈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메달을 획득해 국위선양을 해야 한다는 ‘목표에 대한 맹목’,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격리돼 운동만 해온 선수들로 구성된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 교수는 “운동선수들이 격리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평창 올림픽이 남긴 유산에 평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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