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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 조직에서 나가는 이유? "나와 비슷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그 조직에서 나가는 이유? "나와 비슷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 양도웅
  • 승인 2018.05.08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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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KAIST 교수, F1 경주 빅데이터 분석으로 극심한 갈등 원인 밝혀
이원재 교수는 "우리는 협동할 의지도 있지만 끊임없이 경쟁도 한다는 것, 그 경험적 사실에서 인식은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카이스트 홍보실
이원재 교수는 "우리는 협동도 하지만 끊임없이 경쟁도 한다는 것, 그 경험적 사실에서 인식은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카이스트 홍보실

같은 조직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살의에 가까운 분노를 느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와 비슷한 지위에 있는 사람, 나와 비슷한 정체성(프로파일)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그런 분노를 느끼게 된다.” 지난달 발표된 이원재 KAIST 교수(문화기술대학원)의 연구결과다. 이 교수는 “여기서 정체성은 현실적으로 출신 학교, 취향 등이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직 내에서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할 수 있게 만드는 나만의 개성”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체성이 비슷하다는 것은 외부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누가 누구인지, 혹은 누가 더 훌륭한지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연구결과는 45년간 치러진 F1 경기에 출전한 355명의 선수 사이에 발생했던 506회의 충돌 사고 관련 데이터 분석을 통해 도출됐다. 이 교수는 스포츠 경기를 연구대상으로 삼은 이유를 “회사나 조직에서의 경쟁관계나 우위는 데이터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하지만 스포츠는 종속변수로 삼는 선수의 성과가 매우 객관적으로 구해진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서로 간의 승·패가 비슷해 경쟁관계에서 우위가 구분이 안 되면 본인이 모호해진다고 느끼게 된다”며 “특히 나와 프로파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져도 나와 비슷한 상대에게는 반드시 이겨 나의 모호한 정체성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토너먼트도 구조의 일종이라 할 때, 사람들은 구조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약해질까 전전긍긍 댄다는 말이다. 설령 패배로 일찍 구조에서 이탈하게 되더라도 그 패배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될 만한 패배일 경우, 나를 패배에 이르게 한 상대를 경멸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유유상종과 대립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일각의 반응에, 이 교수는 “유유상종의 반대가 아니다. 인간은 처음에 끼리끼리 모이지만, 끝내 내부에서 분화가 일어나 갈라진다. 그 원인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불안함이 있지만, 이러한 분화로 사회는 고도화 된다”고 답했다. 

인류가 조직을 이뤄 문명을 건설해 왔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 교수의 연구결과는 여타의 조직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사회학은 보통 성공이나 협력 등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 연구한다”며 “이번 연구는 살인이나 폭력과 같은 파괴적인 행위에도 조직적이고 사회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인간이 조직을 이루고 있는 이상, 위계는 불가피하다”며 “하지만 조직이 위계를 갖는 것이 조직에 소속된 사람들의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효율적·효과적인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집단이 필연적으로 위계적일 수밖에 없다면

위계와 효율, 경쟁 등은 산업혁명 이후 진보 이데올로기에서 가장 예민하게 다뤄지고 있는 개념들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불가피하기 때문에 위계와 경쟁이, 평등과 협동보다 우선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며 “사람들은 협동도 하지만 경쟁도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위계와 평등, 경쟁과 협동 등은 모순적인 관계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경쟁만을 강조하든, 평등만을 강조하든 파시즘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의 이상만을 강조하며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으로 행동하는 사람과 조직에 대한 비판이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조직과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폭력에도 인류는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우리가 규칙과 제도를 올바르게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조직 내부에 안정된 규칙을 만들어야, 내부의 경쟁이 파국으로까지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이 진보 이데올로기에서 말하는 진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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