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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라는 탁월한 상징
다윈이라는 탁월한 상징
  • 김환규 전북대·생명과학과
  • 승인 2018.05.08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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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인류는 가정이나 직장에서 그리고 운송이나 통신수단 등 하루라도 과학기술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그것이 현시대의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19세기 초반까지 자연과학 분야에서 ‘종 불변성’은 주된 연구 주제였다. 많은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들이 동물 및 식물 화석을 발견했으나 이들 생물체에 대한 동 시대의 생존 실물을 찾을 수 없었으며, 퀴비에(Georges Cuvier, 1769~1832)는 일부 종이 멸종됐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지구상에 남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6천 년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는 신념이 더욱 확산됐다. 

자연과학 분야에서의 지식의 전문화는 다윈(Charles R. Darwin, 1809~1882)으로 하여금 진화론을 정립하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과학자’란 용어는 1830년대에 영국에서 자연 자체의 연구에 중점을 두고 물질세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사용됐다. 1807년에 창립된 ‘지질학회’와 1833년에 창립된 ‘런던 곤충학회’가 특정 분야의 연구자들이 한데 모여 과학계를 형성한 예이다. 이후 대학에서의 교수 수 증가와 식물원의 큐레이터 같은 연구 직종의 출현은 과학적 연구가 귀족 또는 성직자의 아마추어적 영역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현재의 일반인들의 세계관은 19세기 초반의 시대정신과는 현저하게 다를 것이다. 이런 혁명적인 변화의 원천에 대해 많은 사상가와 과학자들이 언급된다. 뉴튼(lsaac Newton, 1642~1727)이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같은 과학자는 ‘현대의 일반인’ 보다는 ‘현대의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한계 때문에 이들 과학자들은 일반인들의 세계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극명한 대척점을 제시했다. 이러한 이론의 수용은 사상적 혁명을 필요로 한다는 면에서 다윈만큼 일반인들의 세계관에 극적인 변화를 초래한 과학자는 없을 것이다. 

다윈이 제시한 기본 원칙은 그 당시에 널리 퍼진 사상과 갈등을 빚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초자연적 현상과 인과관계를 거부했다. 진화론은 생명체의 적응과 다양성을 오직 유물론으로 설명하였기 때문에, 창조자 또는 설계자로서 신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됐다. 자연신학자들이 ‘놀라운 설계’라 칭송한 모든 현상은 자연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과학에서 신을 제외시킴으로써 모든 자연현상에 대해 엄격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공간과 실증주의가 생겨났다. 이것은 강력한 지적 그리고 영적 혁명을 일으켰으며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다윈은 類型學을 반박했다. 피타고라스학파에서부터 플라톤까지의 시대에 세상의 다양성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은 그 자체의 불변과 안정성이었다.

1859년 이전까지는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1744~1829) 등이 제시한 진화에 대한 모든 제안들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이래 지속돼온 ‘자연의 사다리’라는 완벽을 향한 목적론적 진행인 ‘선형진화’가 일반적이었다. 다윈은 종의 ‘비항상성’과 ‘분지진화’의 개념으로 지구상의 모든 현생 종을 설명했다. 다윈은 진화가 점진적이며 불연속이 없다는 것을 인식했으며, 진화의 기작을 ‘자연선택’으로 제시했다. 그는 린네(Carolus Linnaeus, 1707~1778)의 “자연에는 도약이 없다”라는 모토에 충실했다. 

다윈은 ‘진화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생물학 영역을 개척했다. 다윈은 과학에 ‘史的事實’을 도입했다. ‘진화생물학’은 물리학이나 화학과 달리 ‘사적사실’ 과학으로, 진화생물학자는 지난 시기의 사건을 특별한 시나리오로 재구성한다. 예를 들어 백악기 말에 일어난 공룡의 갑작스런 멸종은 치명적인 유행병, 기후의 대변화와 소행성의 충돌 등의 시나리오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에서 다윈은 모든 동물은 공통 조상을 갖고 있으며, 동물은 ‘성선택’을 통해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만든다고 했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가장 단순한 생물체로부터 출현했으며, 변이 결과 보다 복잡한 생물체가 출현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특정 시점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수생생물의 자손이며, ‘자연선택’이 현재의 후손을 만들었다는 것이 다윈의 주장이었다.

다윈과 월리스가 설명한 ‘자연선택’은 그 자체로 매우 특별한 철학적 진보다. ‘자연선택’ 개념은 적응적 변화를 설명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자연선택’의 본질은 단순성으로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법칙’과는 다르다. ‘자연선택’ 개념의 진정한 가치는 目的因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사 거의 모든 일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자연선택’의 방향은 환경이 다양하기 때문에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조차도 바뀔 수 있다.

다윈은 탁월한 과학자이자 상징이다. 다윈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관련된 콜럼부스(Christopher Columbus, 1451~1506)와 유사하게 진화론과 밀접하게 연관된 이름이다. 콜럼부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최초의 유럽인이 아니었고 그가 대륙에 도착하기 이전에도 그곳에는 번창한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때문에 콜럼부스의 업적이 감소되지는 않는다. 진화론을 최초로 발표한 월리스(Alfred R. Wallace, 1823~1913)는 19세기에 생물학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펼쳤으나, 진화론과 연관된 상징은 다윈으로 다윈설(Darwinism)은 진화론과 동등하게 사용되고 있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명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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