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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의 목소리를 듣자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듣자
  • 박순진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5.1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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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

대학 사회가 예전 같지 않다.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던 대학원생과 조교들이 부당한 처우와 잘못된 관행을 문제 삼아 공개적으로 대학 당국에 개선을 요구하기 시작하고 일부에서는 권익을 지키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공공연하게 묵인돼 온 교육과 연구 현장의 차별적 관행과 심지어 ‘갑질’ 수준에 이른 교수들의 그릇된 행태가 곳곳에서 폭로되고 있다. 사안 자체가 오래되고 심각하여 곪아 터질 지경에 이르렀는데 학문 후속세대의 한층 암담해진 미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장밋빛 미래를 위해 현실의 어려움을 참아내는 것은 이 시대의 대학원생에게 더는 현실적이지 않다. 학령인구 감소하면서 재정위기가 현실화된 대학 당국이 자발적으로 대학원생과 조교의 처우를 합리적 수준으로 개선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학사구조 개편에 내몰린 대학이 신임교원을 확충하는 것도 한계가 뚜렷하니 학문 후속세대의 입장에서 장래가 그다지 밝지 않다. 최근에는 심지어 비정년 트랙이니 비전임 교원이니 하는 대단히 차별적이고 비교육적인 제도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치열한 학술적 고민과 청운의 푸른 꿈을 가진 젊은 학자들이 마주한 현실은 그들의 열정과 이상만으로는 견디기 쉽지 않다.

청년 세대의 고달픈 삶은 비단 대학과 학계의 일만은 아니다.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고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와 성장이 정체되고 기회구조가 닫힌 시대를 살아야 하는 젊은 세대는 확연히 다른 상황에 부닥쳐있다. 기성세대가 살아온 1970년대와 1980년대는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기회구조가 확대되던 시대였다. 개인이 노력하면 그에 대한 합리적 보상이 주어졌다. 2000년대 이후의 상황은 그때와는 다르다. 성장이 정체된 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이 반드시 기대한 성과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작금에는 학문 후속 세대의 특출한 노력이 좀처럼 안정된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

오랜 기간 대학 사회의 구성원들은 관행에 기대어 기존의 방식대로 행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관행들이 종종 곪아 터지곤 했다. 간헐적으로 문제가 곪아 터지더라도 누군가 인생을 걸고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되면서 곧잘 잊혀온 것이 그간의 대학 현실이었다. 누군가 나서서 공개적으로 부당하다고 말하거나 조치를 요구하기도 어려웠고 용기 있는 누군가 적극적으로 행동하더라도 실질적인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할 진리의 전당에서 합리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일들이 깊은 성찰과 반성 없이 온존돼온 것이다.

대학과 학계에서 기성의 권위는 한두 사례의 사건에 의해 극적으로 부인되거나 좀처럼 뒤집어지지 않는다. 거대한 관행의 완고한 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기성 사회라는 공고한 패러다임은 간헐적으로 폭로되는 충격적인 일탈에 직면하더라도 문제 되는 개별 사건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예외적인 사례로 치부하곤 한다. 비등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철폐되어야 마땅한 관행은 거듭 되살아오고 응당 처벌받아야 할 관련자들은 잠시의 사과와 짧은 자숙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몇몇 대학원생은 학계에 실망하고 학문의 길을 저버리기까지 했어도 실제 이루어진 조치는 대단히 미흡하기 일쑤였다.

현실 공간이든 사이버 공간이든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는 갈등은 대단히 파괴적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세대 간 갈등도 만만치 않다. 대학 내에서 부분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대학원생과 조교들에 대한 비합리적 차별과 잘못된 관행이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못한다면 광범위하게 잠재된 갈등이 장차 파괴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대학 당국과 일부 교수들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잘못된 관행에 대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늦기 전에 대학사회가 공론을 모아 청년 학생들의 열정과 이상에 응답하기를 강력하게 기대한다.

 

 

박순진 편집기획위원/대구대·경찰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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