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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 소설집 『고발』과 남북 관계
반디 소설집 『고발』과 남북 관계
  • 방민호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5.2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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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

반디라는 북한의 저항작가가 있어 『고발』이라는 창작집을 펴냈다. 이게 처음에는 조갑제닷컴에서 나왔는데 지금 필자가 구입한 판본은 다산북스다. 이 책이 구미권에 알려져 여러 언어로 번역되고 소비에트 시대의 솔제니친 같은 작가라는 평을 들으면서 책 내는 출판사가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 

필자도 지난 세 개의 정부 시절 내내 북한의 민주화나 인권 상황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국경을 넘는 그림자』, 『금덩이 이야기』, 『꼬리 없는 소』 등 탈북 작가와 한국 작가가 함께 펴내는 공동 소설집을 통하여 북한의 현실에 관한 관심을 촉구해 왔고, 올해도 어떻게든 이 앤솔로지만은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반디라는 이름은 물론 필명인데, 반딧불이를 의미한다고 한다. 북한은 전기가 공급되더라도 어둠의 땅임에 틀림없다. 문학도 죽었다. 살아있는 문학은 당국의 사전 검열에 의해서 철저히 통제된 관제, 어용문학뿐이요, 진정한 문학은 어디에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땅에 하나의 살아있는 작가가 있어 그가 『고발』이라는 창작집에 실린 일곱 편의 작품을 체제 바깥으로 보내 세상의 빛을 본 것이다. 

이 소설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책을 소개한 사람은 무슨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하는 단체의 대표인 듯한데, 그가 1950년생이며 북한작가동맹의 일원이기도 하다고 했다. 뒷부분은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일곱 편의 작품 면면을 보면 그 문장이나 문체가 심히 간결하면서도 표현력이 뛰어나 전문적 문학 수업을 받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구사할 수 없다. 앞부분은 어쩐지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첫 번째로 수록된 「탈북기」라는 작품에는 옛날 일제 강점기의 신경향파 작가 최서해가 쓴 「탈출기」 이야기가 나온다. 「탈북기」라는 제목도 「탈출기」를 패러디한 것이고 작중에 나오는 주인공과 굶주리는 아내의 관계도 「탈출기」를 다분히 의식했다고 할 수 있다. 신경향파 작가의 존재라는 문학사를 충분히 의식하고 패러디할 수 있으려면 그는 상당한 연륜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고 어떻게 보면 1950년 출생 이상의 세대적 위치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 작품집 전체를 살펴보면 그 창작연대가 대략 1989년부터 1995년에 걸쳐 있음을 알게 된다. 반디는 아마도 작가동맹 급에서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역량 있는 작가였으나 1990년을 전후로 한 세계사적 격변부터 김일성 사망 시기에 이르는 현실 세계의 변화를 목도하며 북한체제에 대한 각성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그런 만큼 그의 작품들은 북한체제의 누적된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탈북기’의 주인공은 누대에 걸쳐 적대 계급으로 분류되는 멍에를 짊어지고 있다. 이른바 내각 결정 149호에 따라 압록강 근방으로 강제 이주당한 그의 가족의 불행은 해방 직후 부친이 유산자 계급으로 분류되어 원산으로 강제 이주당해야 했던 연장선상에 있다. ‘유령의 도시’에서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 빗대어 마르크스, 김일성의 초상화가 군림하는 평양의 전체주의 메커니즘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준마의 일생’에서는 한평생을 북한체제 유지를 위해 바친 성실한 노인의 죽음을 그린다. 

남북 사이에 정상회담이 열리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도 정상회담을 준비한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판문점이다, 평양이다 하다가 얼마 전에는 싱가포르에서 개최할 것이라는 소리도 들렸다. 

길주군 풍계리에 핵실험장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폐기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 확실히 평화 무드가 이 시대의 주조가 된 것은 사실인 것도 같다. 그러나 지난 16일 뉴스는 어감이 좀 달랐다. 북한 쪽에서 정상회담 일방적 연기를 주장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김계관인가 하는 외교 ‘수장’은 북한만 일방적으로 핵을 폐기하는 식은 곤란하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일보전진 이보후퇴, 이보전진 일보후퇴하는 것이 외교나 국가 간 관계의 항다반사니 이런저런 변화의 굴곡들에 신경을 쓰는 것은 건강에도 해롭다. 분명 한반도에는 화해와 평화가 열려야 한다. 또 그래도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눈들도 없어서는 아니 된다.

 

방민호 편집기획위원/서울대·국어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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