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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아니라 최선
최고가 아니라 최선
  • 이계호 충남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6.18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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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이계호 충남대 명예교수·분석화학

우리나라 산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가장 많다. 소나무가 산에 많은 이유는 식목일이면 누군가가 몇 그루씩 산에 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토리나무 또는 상수리나무라고 불리는 참나무는 누가 심지도 않았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의 모든 산에 풍부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아무도 심지 않은 참나무가 왜 그렇게 산에 많을까? 

참나무는 흉년이 들 때는 도토리 열매를 많이 맺어 모든 동물의 먹이로 충분히 공급하고, 풍년일 때는 도토리 열매를 적게 생산하는 것으로 자연의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가을 참나무에는 도토리가 무성하게 열리는데, 이 도토리는 바로 다람쥐의 먹거리가 된다. 그래서 다람쥐는 가을 동안 풍성하게 열린 도토리들을 열심히 따서 겨울 동안 먹을 양식으로 저장한다. 이 나무, 저 나무를 열심히 오가며 많이 딴 도토리를 다른 다람쥐들이 모르는 자기만의 장소에 이곳저곳 숨겨놓는다. 그런데 다람쥐는 머리가 총명하지 못해 자신이 숨겨놓은 도토리 저장고를 다 찾지 못한다. 낙엽 밑에 숨겨진 도토리 중 다람쥐가 찾지 못한 도토리에서 싹이 나 참나무로 자란다. 이 때문에 깊은 산에도 참나무가 많은 것이다. 아무도 심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만약 우리나라에 사는 다람쥐가 모두 일류대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다람쥐였다면 우리나라 산에는 참나무가 없을 것이다. 똑똑한 다람쥐가 이곳저곳에 자기가 숨겨놓은 모든 도토리를 찾아서 먹거리로 했다면 산에는 참나무가 자랄 수가 없다. 또한, 일류대 다람쥐라면 머리가 아주 좋아서 다른 다람쥐들이 숨기는 곳을 곁눈으로 보고 알아두었다가 모두 찾아 먹어버려 산에는 참나무가 한그루도 없을 것이다. 누가 일부러 심지 않는 한 말이다. 

이 세상에는 최고가 존재할 이유도 있지만, 꼴찌가 존재할 이유도 있는 것이다. 꼴찌 다람쥐가 존재했기에 산이 푸르고 풍요로웠듯이, 꼴찌 사람도 존재하기에 세상이 풍요롭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 똑똑한 최고의 사람들만 있다면 일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찾아 먹지 못한 도토리에서 싹이 트려면 도토리는 반드시 흙과 접촉해야 한다. 만약 멍청한 다람쥐가 게을러서 도토리를 대충 낙엽 위에 뿌려놓는다면, 흙과 접촉하지 못한 도토리는 모두 부패한다. 짧은 앞발을 가진 다람쥐가 도토리를 숨길 때, 낙엽 아래 가장 깊숙한 바닥에 숨기는 최선의 노력이 없었다면 도토리가 제대로 싹 트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꼴찌 다람쥐도 최선을 다해서 낙엽 깊이 숨겼기에 흙과 접촉한 도토리가 싹이 트기 시작할 수 있었다. 만약 꼴찌 다람쥐가 부지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하지도 않고, 그냥 도토리 몇 개만 따서 이곳저곳에 깊이 숨기지도 않은 채 낙엽 위에 흩어놓았다면 참나무는 자랄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모두가 다 최고 다람쥐가 되고자 하는 것과 같다. 꼴찌도 최고가 되고자 하고, 중간도 최고가 되고자 하고, 최고는 당연히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것에서 인간의 불행은 시작된다.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인이 꼴찌인지, 중간인지, 최고인지도 모르고 항상 최고가 되기 위한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이러한 삶을 살면서 정신적인 압박감에 시달려왔고, 육체적으로 무리하게 된 것이 만병의 근원인 셈이다.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자 밤잠도 자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풍요로움을 가졌지만, 그 대가는 심각할 정도로 문제가 많다. 

꼴찌가 최선을 다해 꼴찌가 됐을 때, 박수와 갈채를 보내면서 꼴찌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세상이 인간이 살아야 할 진짜 세상이다. 주위를 둘러보아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박수와 갈채와 격려를 해주자. 치열하게 무리하면서 자리를 지키는 일등보다는 노력하는 과정을 즐기며 최선을 다하는 꼴찌가 진정한 행복을 얻을 것이다. 

 

이계호 충남대 명예교수·분석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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