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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스포츠선진국인가? 올림픽·월드컵 성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길
한국은 스포츠선진국인가? 올림픽·월드컵 성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길
  • 전용배 단국대·스포츠경영학과
  • 승인 2018.06.18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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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개막했다. 우선 축구이야기부터 하자. 16강 진출은 가능할까? 비록 전력은 F조 최하위로 평가되지만 혹시나 하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축구이기 때문이다. Eli Ben Naim을 비롯한 동료들은 2006년 스포츠계량분석학회에 게재한 「What is the most competitive sports league?」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지난 100년간의 데이터 분석결과는 축구와 야구가 약자가 강자를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스포츠라는 것이다. 축구와 야구가 인기 있는 것은 이렇게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는 스포츠! 따라서 우리가 오늘 밤 스웨덴 전을 보기 위해 TV에 앞에 앉아 있을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한 행운에만 의존해야 할까. 한국축구는 2002년 월드컵 4강에 이미 진출한 경험이 있다. 또한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9회 연속 진출이다. 월드컵에 9회 연속 진출한 나라는 지구상에 6개 나라밖에 없다. 그런데도 축구에 관한한 철저히 ’변방‘에 속한다. 승부 외에는 다른 어떤 의미 있는 시스템과 문화를 창출하지 못한 것이다. 

다른 스포츠는 어떤가. 결과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스포츠 강국이다. 1988 서울올림픽 4위의 기적을 쓰더니 2004 아테네올림픽과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각각 9위와 7위에 올랐다. 2012 런던올림픽 5위에 이어 2016 리우올림픽에서도 8위를 하며 ‘톱10’을 유지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7위를 달성해 겨울스포츠도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런 결과에도 왜 우리는 스포츠선진국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을까. 도대체 무슨 문제가 우리 스포츠에 내재되어 있는 것일까.

우선 1972년 10월 도입한 ‘체육 특기자’ 제도는 보완이 필요하다. 학업 성적과 상관없이 일정한 경기 실적을 보유하면 상급학교 진학 허용과 등록금 감면 혜택을 제공한 체육 특기자 제도는 우리나라가 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문제는 특기자 제도가 스포츠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데는 장애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 선수들은 ‘전국대회 우승’만 하면 자신이 원하는 대학 진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학업 대신 운동에만 몰입한다. 이런 폐단은 “운동선수는 공부를 안 한다”는 선입견을 낳았다. 학부모들이 자녀가 전업 운동선수가 되는 걸 반대하는 이유다. 학생들도 ‘선수’로 입문하는 데 주저한다. 결국 체육 특기자 제도가 ‘누구나 운동을 즐기는’ 건강한 스포츠생태계 조성에 걸림돌이 돼 버린 것이다. 운동을 선택하는 순간 ‘올인’해야 하는 비합리성은 운동 참여자의 수가 적정 수준에 못 미치는 ‘소수정예’ 구조를 낳았다. 학생 운동선수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인데도 현재의 체육 특기자 제도에서는 구조적으로 운동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2018 평창올림픽에서 금·은메달을 획득한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두 종목 등록선수는 중·고·대학과 실업까지 모두 합쳐도 30여 명에 불과하다. 인기 종목인 여자배구와 여자농구도 고교 3학년 졸업 예정 선수가 연간 각 50명 정도다. 30여 명의 선수 양성을 위해 1000억 원이 넘는 봅슬레이 경기장을 세금으로 짓는 게 합당한 것인지, 연간 50명 남짓의 선수가 배출되는 여자농구와 여자배구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설사 국제경쟁력이 있다고 한들 그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 스포츠 선진국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반면 일본은 고교야구 등록 선수만 15만명에 달한다. 미국 여자 고교배구는 등록선수가 30만명이다. 일본 고교야구 선수 500명 가운데 평균적으로 한 명만 프로야구 선수가 된다. 달리 말하면 일본에선 프로야구 선수가 목적이 아니다. 삶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 야구를 즐기는 학생이 대다수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개인에게는 크나큰 자기성취이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큰 의미가 없다. 결국 그 종목의 저변이 넓어지지 않으면 스포츠 생태계가 작동이 안 된다. 생태계 작동은 생존의 문제다.

일본 공무원 출신의 아마추어 마라토너 가와우치 유키는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2018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했다. 가와우치는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우리나라와는 수준 차이가 큰 일본의 선진 스포츠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다. 평창올림픽에서 여자빙상 500M에서 우승한 고다이라는 나가노가 고향이다. 어릴 적부터 눈과 얼음에서 놀았고, 공부와 빙상을 병행했다. 그녀의 꿈은 교사였다, 물론 지금은 병원직원이지만. 컬링에서 동메달을 딴 후지사와는 어떤가. 홋카이도 태생의 보험판매원이다. 추운 홋카이도에 태어나 어릴 적부터 컬링을 취미로 해서, 고교졸업이후 보험사에 취직하고 시간 날 때 컬링을 한다. 그게 다다. 선진국에서는 프로스포츠선수가 아닌 이상, 국가대표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처럼 운동만 할 수는 없다. 세계최강 캐나다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들은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을 고민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회사를 휴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 직장이 있는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위선양’이라는 이유로 대표선수들을 ‘국가 공무원’화시켜 ‘사육’한다. 

가장 불행한 것은 국제대회 성적이 좋으면 좋을수록 그 종목의 선수가 늘어나기는커녕 소수정예만 남아 더 초라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스포츠의 현주소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외화내빈(外華內貧)이다. 등록선수는 줄어들고 스포츠생태계는 고사(枯死)직전이다. 각 대학에서 왜 운동부가 없어지고 있나. 올림픽 메달을 따도 학교에 도움이 안 되니 해체되고 있는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스포츠 경험이 시민 개인 삶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지 TV를 통한 대리만족이 아니다. 선진국 국민은 학창시절 대부분 ‘운동선수’출신이다. 반대로 우리나라  정치인, 관료, 기업가, 대학교수,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중에서 운동선수 출신의 거의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선진국 기준으로는 ‘운동선수’ 경험 없이 어떻게 ‘세계인’이 될 수 있냐고 할 수도 있다. 우리의 스포츠정책은 인류 보편적 기준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다시 월드컵으로 돌아가 보자. 월드컵이 지구촌의 대형 스포츠이벤트 이기는 하나, 세계 최고수준의 축구대회는 아니다. 축구수준으로만 보면 최고의 선수와 클럽이 출전하는 유럽 챔피언스리그가 인류 최고수준의 축구대회이다. 월드컵은 국가별 대항전이고 대륙별 안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FIFA 랭킹 하위권 팀들도 출전한다. 물론 축구의 의외성은 어느 나라도 결과를 담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축구격언처럼 결국에는 저변과 생태계,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클래스가 영원할 수 없다. 월드컵 16강, 8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어릴 때부터 스포츠에 참여하고 즐기는 문화와 제도가 정착되는 것이다. 이젠 스포츠강국이 아니라 스포츠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용배 단국대·스포츠경영학과
미국 뉴멕시코대에서 스포츠경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 및 한국스포츠관광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스포츠시설 경영 및 스포츠행정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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