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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과 북미협상 
기울어진 운동장과 북미협상 
  • 정용길 논설위원
  • 승인 2018.06.2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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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정용길 논설위원/충남대·경영학부

평평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게 되면 공정하지 않다. 각자의 노력과 실력이 아닌 다른 조건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경쟁이나 협상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전략이나 능력이 아닌 외부 환경에 의해 결과가 결정되는 경우가 있고, 이러한 상황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한다. 

최근에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고,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을 담은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한 역사적 발걸음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진행된 북미협상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협상과정을 생각할 때 기울어진 운동장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협상과정을 이해하고, 구조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있는 당사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협상성공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첫째, 미국은 북한에 대해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북한은 미국에 대해 체제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수단을 맞바꾸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카드는 서로 등가성을 갖고 있지 않다. 즉 북한의 비핵화 과정은 핵무기와 관련 시설, 그리고 핵물질 등에 대한 물리적 폐기가 수반된다. 이러한 것들은 일단 프로세스가 진행되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불가역적인 조치들이다. 북한이 해야 할 일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제재완화와 체제보장 등은 행정적 조치이고 문서상에서 이뤄지는 행위다. 일단 프로세스가 진행되더라도 중간에 언제든지 거둬들일 수 있는 가역적 성격을 갖으며, 미국 정부 ‘의지’의 표현에 불과하다. 협상과정에서 힘을 포기해야 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불공정하고 불안하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거래일 수 있다.

둘째, 북미협상이 중간에 실패로 종결되는 경우에 양국에 미치는 파급효과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실패에 불과하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국가존망과 연결될 수 있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협상이 실패하더라도 미국은 국제사회와 더불어 과거의 압박과 제재조치를 재가동하면 된다. 국익에 커다란 손실이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핵무기 개발에 사활을 걸었던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으며, 핵무기와 핵시설을 원상 복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협상과정에서 힘의 균형은 대단히 중요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협상은 구조적으로 어느 한쪽에 불리하다. 이러한 경우에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당사자는 협상과정의 매 단계마다 철저한 검증과 확인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면에서 북미 공동선언에서 미국이 주장해왔던 일괄타결 방식을 거둬들이고 단계적 비핵화에 동의한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아울러 문서상에서 이뤄지는 대북제재 완화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체제를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 수단도 필요하다. 대동강변에 트럼프 타워가 올라가고, 평양 시내에서 맥도널드가 영업하는 경우에 실질적인 평화가 담보될 수 있다.    

한반도 운전자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북한의 입장을 미국에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으며, 미국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우리가 힘을 보태야 한다. 트럼프는 북미관계가 정상화된다 하더라도 미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경우에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한에 대한 사회간접자본 투자, 인도적 지원 등을 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에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정용길 논설위원/충남대·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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