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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장의 그림에 담긴 救援에 이르는 도정
열 장의 그림에 담긴 救援에 이르는 도정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8.07.02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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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성학십도-자기 구원의 가이드맵』

“우리는 어디로 떠밀려 가는 것일까. 풍요의 한가운데 기쁨은 없고, 고립과 경쟁으로 나날이 피폐해 가는 삶,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삶일까?” 16세기 조선 퇴계 이황이 편집한 『聖學十圖』를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철학)가 번역·해설해 『성학십도, 자기 구원의 가이드맵』으로 펴냈다.

이 책은 『성학십도』의 배경을 이루는 인물들의 전기나 교유, 학파와 계보, 정치적 다툼은 접어두고, “상처를 치유하고 의미에 충만하고 싶다면 유교 心學의 구원론에 귀 기울이라”고 말하며 이름 그대로 열 장의 그림에 담긴 구원에 이르는 도정에만 집중한다. 

『성학십도』
『성학십도』

선조 임금에게 올린 열 장의 그림 

1568년 겨울, 선조 임금의 강학 선생이던 이황은 선조의 곁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그를 위해 그림 열 장을 남겼다. “옛 성현들이 聖學을 밝히고 心法을 밝힌 도설이 많이 유포돼 있습니다. 그 가운데 뛰어난 일곱 개의 도를 골랐습니다(단, 제6 ?심통성정도?는 임은 정씨의 그림들 가운데 하나만 취하고 나머지 둘은 내가 그렸습니다). 나머지 세 그림도 내가 만들기는 했지만 순전한 창작이 아니라 본문의 취지를 그대로 살린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학을 위한 열 개의 그림(聖學十圖)’이 모였습니다.”(46쪽) 

『성학십도』는 율곡 이이의 『성학집요』와 함께 조선 유학의 구원론을 완성한 책으로 손꼽힌다. 방대한 유교 고전의 숲을 뒤져, 유학의 핵심 텍스트를 선별하고, 이황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열 장의 그림 중 일곱 장은 주렴계, 주희, 임은 정씨 등 옛 성현들이 작성한 것이고, 「소학도」, 「백록동규도」, 「숙흥야매잠도」 세 장은 이황이 직접 그렸다. 『성학십도』를 ‘퇴계 이황 편집’으로 밝힌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 圖와 設이 단지 열 폭 종이 위에 펼쳐져 있을 뿐이지만 道를 응집하고 성인으로 거듭나는 일의 핵심과 품성의 토대를 다져 바른 정치와 경영을 기약하는 일의 원천이 모두 여기 구비돼 있습니다.” 

인간 회복을 꿈꾸는 주자학의 설계도서문 

유교적 구원을 선포한 『성학십도』는 ‘생각하는 힘’을 통해 길을 찾아가는 법을 말한다. 제1 太極 인간의 기원에서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모른다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것이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제2 西銘에서는 인간의 소명 즉, 우주 안에서 인간은 누구인지, 수많은 생명들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이고, 이 땅에서 우리가 맡은 소명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제3 小學에서는 본래 완전했던 인간이 어쩌다 타락하게 됐는지, 그 안타까움을 끌어안고, 전락으로부터의 회복을 위한 기초 훈련을 적었다. 제4 大學에서는, 성장과 교육의 프로그램을 말한다. 유아적 환상을 떠나 ‘지식’에 이르는 법, 자기기만을 제거하고 불건전한 충동을 다스리는 법 등 자기 훈련이 무르익으면 공정한 태도가 육성되고, 사회적 책임과 정치적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제5 白鹿洞規에서는 지식을 획득하고 실천하는 방법을, 제6 心統性情에서는 드디어 心學, 즉 마음 훈련의 시작을 말한다. 퇴계는 그동안 고봉 기대승과 나눈 철학적 논쟁의 핵심을 설파한다. 욕동과 이성, 그리고 영성 사이를 섬세하게 가르는 퇴계의 솜씨를 만나볼 수 있다.

제1태극도.

제7 仁說에서는 우주의 본질이 사랑이며, 인간 또한 사랑하고 성장하는 힘을 ‘본성’으로 갖춘 존재라는 주장을 마주한다. 이는 유교 인간학의 초석이고, 훈련의 나침반이 된다. 제8 心學에서는 마음의 구체적 훈련 요목을 적었고, 제9 敬齋箴을 통해서는 이 모든 훈련을 관통하는 중심이 경전임을 강조한다. 제10 夙興夜寐箴에서는 선비의 일과를 보여준다. 앞의 경재잠이 ‘상황’에 따른 敬의 실천을 보여준다면, 여기서는 ‘시간대’에 따른 경의 자세를 특필하고 있다. 별지들, 제3 소학의 별지에서 『소학』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제6 심통성정 별지에서 조선 유학 영원의 논제인 사단칠정론을 정리 수록했다. 이 논쟁이 한가한 비현실적 지적 유희가 아니라, 삶의 길을 두고 벌인 인간사의 절실한 의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제8 심학 별지에서 자기 망각과 각성의 방법을 두고 펼치는 퇴계와 율곡의 진검승부를 관전할 수 있고, 제9 경재잠 별지에서는 ‘경건(敬)이 일상의 비본질적 삶을 깨워 어떻게 영혼의 치유를 감당하고 구원으로 나아가게 하는지 말한다. 

세 종류의 번역과 해설  고전은 연구가 필요하고, 오랜 사색과 체험을 거쳐야 다가갈 수 있다. 요약본과 인터넷 검색으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길임이 분명하다. 저자는 먼저, 고전 한문이라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세 종류의 번역을 제시한다. ‘현토’로 문장의 구성을 살피고, ‘현대어역’으로 대강의 내용을 파악한 후, 독자들 스스로 자구를 붙들고 학습하고 사색할 수 있도록 ‘축자역’을 보탰다. 다시 이 세 벌 번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하고, 틈나는 대로 길고 긴 해설을 덧붙였다. 해설은 사서삼경을 위시한 유교의 고전들, 송대 새로운 유학의 혁신, 퇴계 자신이 평생 갈고 닦은 훈련들을 모두 동원해 유교 심학의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유교 내부의 해설만으로는 자칫 모호함의 쳇바퀴를 돌거나 억측의 미로를 헤맬까 염려해 동서양 지혜의 전통이 갖고 있는 폭넓은 ‘평행’(parallels)의 지평을 확인하고, 상호 대화의 活潑潑 속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제10속흥야매잠도.
제10속흥야매잠도.

세속과 종교 사이에 난 제3의 길

퇴계가 율곡에게 권한 오래된 학문의 길 『성학십도』에 담긴 구원론은 이를테면 세속과 종교 사이에 난 제3의 길이다. 지혜는 신의 것이고, 세속인들은 거기 관심이 없다. 그러나 우리 모두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갖고 있다. 남의 삶을 사느라 자신의 삶을 소모시켰다는 자책으로 불면의 밤을 보낼 때 우리는 이 벌거벗은 물음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유교는 그 돌파구가 ‘學問’이라고 말한다. 『논어』 첫머리 “배우고(學) 때로 익히면(習)…”이 바로 이 기술을 말하고, 공자가 “나는 열 다섯에 배움(學)에 뜻을 두었다”고 할 때, 바로 성장과 의미로 충만한 삶을 이루겠다는 지향과 포부를 밝힌 것이다. 그 관심을 ‘먹고사느라…’의 변명이 가로막고 있다. 

1558년 퇴계는 율곡에게 이런 편지를 써 보냈다. “세상에 늘 인재는 차고 넘치지요. 그런데 이 오래된 학문을 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흙탕물에 쓸려가듯이 다들 그래요. 이 도도한 세속의 흐름에서 간혹 발을 뺀 사람들이 있긴 하나, 안타깝게도 재능이 따라주지 못하거나 아니면 나이가 너무 들었습니다. 그대는 뛰어난 두뇌에다,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바른 길’로 들어섰으니, 후일의 성취를 어찌 짐작하겠습니까. 모쪼록 천만 원대하기를 기약할 일이지, 작은 성취에 자족하지 마시오.” 

유교의 중심 자산에 대한 새로운 논의의 시작

20세기 초, 유교는 망국의 책임을 떠안았고, 그러다가 최근에는 급속한 산업화의 문화적 기반으로서 ‘유교적 근대화’를 외치게 됐다. 이 책은 이 소란 너머에서 오히려, “왜 유교가 근대와 불화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거기서 역설적으로 유교의 희망을 읽는다. 생태와 환경, 소외와 그 극복, 그리고 잊혀진 ‘삶의 길’로 이끄는 유교의 중심 자산에 집중한다. 저자의 그동안의 저서, 『왜 동양철학인가』, 『왜 조선유학인가』, 『조선유학의 거장들』 등이 그 중간 보고서라면, 이 책은 그동안의 연구와 이해를 종합 정리한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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