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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오후 
예루살렘의 오후 
  • 김종영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18.07.0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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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사회학

Via Dolorosa 37번지.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오아시스이자 요새인 ‘오스트리아 인’이 위치한 곳이다. 5m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이 호텔 위로 약 20m 높이의 사이프러스 나무 두 그루가 뿌리내리고 있고, 비슷한 높이의 열대 야자수들이 우거져 있다. 빨간 장미, 진분홍 부시, 연분홍 선인장꽃도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태양을 향해 붉은빛들을 내뿜고 있다. 넓은 사각의 하얀색 파라솔은 햇빛을 받아 더욱 하얗고, 그 옆으로 뻗어 있는 짙은 녹색의 선인장은 이국적인 정취를 더해준다. 예루살렘의 금요일 오후를 보내기에 이보다 평온한 장소는 없다. 

호텔의 망루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무슬림 교도들은 다마스쿠스 문 쪽에서 알와드 거리를 따라 황금 지붕이 있는 엘악사 사원으로 구름떼처럼 몰려가고, 왼쪽으로는 십자가를 맨 일군의 기독교인들이 라틴어 ‘주님의 기도’를 부르며 2천년 전에 예수가 갔던 길을 따라간다. 양쪽의 충돌을 방지코자 십자가의 길 4처 앞에 이스라엘 경찰들은 M16을 들고 군중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또 다른 일군의 경찰들은 이슬람 지역인 이곳에서 십자가를 맨 기독교인들을 보호코자 그들을 따라 다닌다. 이 와중에 자전거를 탄 무슬림 아이가 2~3m 폭의 거리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 속으로 힘겹게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하고 상인들은 관광객들에게 호객행위를 한다. 글로벌리제이션과 문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가르쳤지만 나는 이토록 평온한 오아시스에 앉아 저토록 뒤죽박죽인 세상의 이해 불가능성을 한탄한다. 

트램에서 폭탄이 터지지는 않았다. 호텔 방으로 총알은 날아오지 않았다. 폭탄과 총알이 난무하는 곳은 이미 130여명의 사상자를 낸 가자지구다. 예루살렘이 안전한 이유는 텔레비전에 총을 든 군인들이 광고모델로 등장할 만큼 이스라엘의 일상적인 병영국가 체제 때문이다. 다마스쿠스 문 바로 밖에서 아랍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간다.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에 높고 긴 장벽이 수십km 뻗어 있어 분리가 무엇인지 시각적으로 확인시켜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베들레헴 택시 드라이버는 나에게 접근해 호객을 하고, 나는 이 지역이 처음이라 그의 택시를 탄다.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교회에서 수많은 성지순례객을 발견한다. 택시 드라이버는 나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벽이 있는 관광 명소까지 안내하며 이스라엘의 부당함을 열렬하게 설명한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디아스포라가 6백만명이며 그들이 국외로 여행을 하려면 텔아비브 공항이 아니라 요르단을 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동의 제한은 자유의 제한이며 언제나 권력의 작용이다. 아랍 버스를 타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M16과 방탄복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의 검문을 받는다. 

자파 문 옆에 위치한 다윗의 성에서 수천 년간 이어진 예루살렘의 전쟁, 영광, 비참을 느낀다.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스-로마 문명, 이슬람 문명이 함께 싸우고 꽃피운 곳이 예루살렘이다. 이곳은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공-창조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죽인 공-파괴의 장소다. 이곳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공존을 모색했지만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한 듯하다. 공생이 얼마나 어려운지 홀로코스트 박물관인 야드 바셈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예루살렘의 가게에서 젊은 유대인 점원과 종교와 행복의 의미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주제를 빠져나오고 싶어 유발 하라리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들어본 적이 없단다. 다른 유대인들에게도 물어보니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편의 표집이긴 하지만 어쩌면 하라리 교수에게는 다행이다.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서 그는 인류의 모든 종교는 헛소리라고 설파했는데 매일 통곡의 벽에서 율법을 외우는 사람들이 그가 히브리대 교수라는 것을 알았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라리 교수는 21세기의 예루살렘은 실리콘밸리이며 이제 인류의 마지막 종교인 ‘데이터교’가 우리를 지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비탄의 길 37번지로 돌아와 뜨거운 햇살 아래 망루에 앉아 좁은 길을 바라본다. 이 길은 크리스천들에게는 의미가 폭발한 길이며 무슬림들에게는 3대 성지로 가는 길이며 상인들에게는 생활의 길이며 이스라엘 군인들에게는 통제의 길이며 아이들에게는 놀이의 길이다. 사회학자에게는 뒤죽박죽인 혼돈의 길이며 세상의 이해 불가능성을 느끼는 비탄의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공존과 공생의 길을 상상한다.

 

김종영 편집기획위원/경희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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