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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어도 외로운 이유
함께 있어도 외로운 이유
  • 김정규 서평위원/방송대 출판문화원·시인
  • 승인 2018.07.1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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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54%가 하루에 10번 이상 SNS에 접속하고 60%가 SNS상에서 2시간 이상(19%는 5시간 이상)을 소비한다고 한다. 학생의 하루 가용시간을 고려해 보면 여가시간 거의 모두를 사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페이스북이나 밴드 등 SNS상에서 포스팅을 하고 ‘좋아요’나 댓글을 기다리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카톡이나 메신저를 통한 지인들과의 실시간 연결은 의무가 됐다. 댓글이나 답글의 속도가 관심이나 우정, 사랑의 밀도로 인식되고도 있다. 

2000년대 초에는 기회의 확대라는 신천지를 안겨 주었던 SNS가 이제는 그 반대로 심리적인 불안의 원인이 되고 있다. FOMO(fear of mission out)로 알려진 ‘기회 상실의 두려움’은 SNS의 편리성이 주는 대표적인 불안 요소로서,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늘 나의 선택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현상을 말한다. 

사람들은 상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순간에도, ‘지금 여기가 최선’(carpe diem)일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렸을지도 모를 다른 기회들을 생각해 내느라 깊이 있는 대화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현재에 집중하지 못함으로써 상대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도 놓치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비인격화되고 외로워진다.
이러한 불안감과 외로움을 해소해 주기 위한 또 다른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다. ‘띵스플로우’라는 스타트업이 개발한 AI 기반의 ‘헬로우봇’을 보자. 이용자의 그날의 운세를 알려주고, 친구에게도 말 못하는 연애상담도 해주며, 퇴근 무렵에는 직장상사에 대한 욕을 부탁하거나 오늘의 시 한 편을 추천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렇게 우리는 이미 ‘공감 앱’들과 함께 살고 있다. 

기술심리분야 연구의 선구자인 셰리 터클(Sherry Turkle) MIT대 교수는『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황소연 옮김, 민음사, 2018)에서, 사람들이 불안감과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 공감 능력을 키우려면 SNS상이나 로봇 같은 기계와 나누는 가짜 대화보다 사람과 마주하여 나누는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SNS가 사람끼리의 깊은 관계 형성을 방해하는 요인은 ‘대리인’, 즉 자신의 최상의 모습만 내보내는 데 있다. 이것은 연애나 우정에서 초기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필요한 전략이다. 하지만 SNS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대리인만 내보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에,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도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할 수 없게 하여 심지어 데이트폭력이나 사기를 당하는 결과까지 초래하기도 한다. 

또한 SNS상에서의 소통은 쉽게 ‘없던 일’이 되는 ‘매체의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연애 사이트들은 부지불식간에 거절과 매칭이 이뤄지게 해 이용자의 부담을 없애는, 이른바 ‘마찰 제로’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런데 이런 편리한 관계들은 상대를 상품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더 비인격화되고 마침내는 사고현장 앞에서조차 V자를 그리며 인증샷까지 찍기에 이르렀다. 

위의 책에서 셰리 터클은 SNS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멀티태스킹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멀티태스킹은 신경화학적 흥분도를 높이기 때문에 집중력이 올라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은 ‘감정을 읽는 능력’을 떨어뜨릴 뿐이라고 한다. 또한 멀티태스킹은 우리를 각성과 유사한 상태, 일종의 지속적인 경계 상태로 몰고 가기 때문에 스트레스 강도도 높아진다고 한다. 

야후와 IBM은 능률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행한 재택근무를 금지하고 직원들을 다시 일터로 불러들였다.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근무가 오히려 ‘생산성과 창의력’을 떨어뜨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로펌 회사에서부터 컨설턴트 회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때 ‘효율성’ 증진을 위해 점점 더 대면회의를 없앴지만, 그 결과 오히려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한 질적 향상을 희생시키고 말았다. SNS는 모든 사람들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 모았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대화의 불씨를 꺼뜨린 것이다. 

SNS는 ‘공감을 위한 보조 바퀴’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본말이 전도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우리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 존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기술에 지배당하지 말고 기술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키우자는 셰리 터클의 주장을 되새겨 볼 만하다.

“테크놀로지를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찾자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의 산물이자 심오한 심리의 산물이며, 복잡한 관계의 산물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솔직하고 대담한 대화의 산물이다.” 셰리 터클이 책의 말미에 쓴 글귀다.

김정규 시인
김정규 시인

 

김정규 서평위원/방송대 출판문화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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