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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군 장교'에서 '중국 최고 석학'으로… 린 이푸가 던진 중국 경제 관련 5가지 질문
'대만군 장교'에서 '중국 최고 석학'으로… 린 이푸가 던진 중국 경제 관련 5가지 질문
  • 양도웅
  • 승인 2018.07.1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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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등교육재단 초청 린이푸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 명예원장 강연 

지난 1979년, 대만의 對중국 최전방 지역 金門에서 한 엘리트 장교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대만군은 즉각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끝내 그 장교를 찾지 못했다. 그는 결국 실종자 처리됐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나, 대만 정부는 그 장교를 ‘탈영 및 1급 반역죄’로 수배했다. 그는 사라졌던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 망명했던 것이다. 약 2km 폭의 바다를 헤엄쳐, 그것도 농구공 하나에 의지해. 그가 바로 前 세계은행 부총재이자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 명예원장인 린 이푸다. 그는 자신의 탈영과 망명에 대해 “과거 행위는 내 양심에 따라 이뤄진 것이며 역사가 판단할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망명 이후 린 이푸는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밟은 뒤, 미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 예일대에서 박사후 과정까지 마친 그는, 1987년 미 대학들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베이징대로 금의환향했다. 이후 그는 중국 최고 지도부의 경제 멘토로 성장했다. 이처럼 소설 같은 이력을 가진 그가 지난 3일 한국고등교육재단(이사장 최태원)의 초청으로 한국고등교육재단 컨퍼런스홀에서 강연했다. 강연 제목은 ‘China`s rejuvenation and its implication for global economy’이었다.

린 이푸가 던진 중국 경제를 둘러싼 5개 질문

린 원장은 “지난 40년간, 중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약 9.7%였다”며 “중국만큼 이렇게 높은 경제성장률을 오랫동안 유지한 국가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독일을 제치고 세계 최대 수출국 자리에 올랐다(2010년). 중국의 수출 품목 가운데 약 97%가 제조상품으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린 원장은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공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국가는 영국, 미국, 독일·일본·한국 등이었다. 이제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됐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경제 성장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마친 뒤, 린 원장은 다섯 가지 질문을 던졌다. △중국은 어떻게 높은 경제성장률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는가 △개혁개방(1978년) 이전 중국은 왜 빈곤국가 상태였는가 △1980~90년대 많은 개도국들이 전환기를 거치며 경제 성장이 정체됐음에도 중국은 왜 안정과 성장을 구가했는가 △향후 중국은 얼마나 오랫동안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중국의 경험이 다른 국가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가 등이었다. 리 원장은 이 다섯 가지 질문에 차례차례 답하며 강연을 진행했는데, 그의 답변들은 따로 구분할 수 없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들이었다. 

뒤쳐진 국가의 생존(발전) 방식 

“간단하다. 경제 성장은 소득(수익) 증가다. 이 소득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노동생산성이 증가해야 하고,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선 기술혁신이 필요하다. 동시에 신산업이 만들어져야 한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만들어지며 많은 자본이 몰려야 한다. 하지만 기술혁신과 신산업 창출은 높은 비용과 리스크를 극복해야 한다. 개발도상국(개도국)은, 선진국이 이런 위험을 극복하고 만들어낸 기술들을, 모방 또는 라이센싱을 통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 후발주자로서의 이점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린 원장의 답변이다. 

후발주자는 경제 성장에 필수적인 ‘혁신 기술’을, 선진국에 비해 낮은 비용으로 활용 가능하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만으로 충분한 걸까? 린 원장은 이와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보호·육성 정책’을 꼽았다. “고부가가치 산업은 자본집약적인 산업이다. 하지만 후발 국가가 자본집약적인 산업을 ‘자유로운 시장경제 체제’에서 육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특정 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장의 왜곡’은 경제 성장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사실 한국 또한 이런 방식으로 성장했고, 영국·프랑스에 비해 산업 발전이 늦었던 독일도 이런 방식으로 성장했다. 즉, 후발주자로서 ‘국가 주도의 산업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은 1979년 ‘개혁·개방 정책’ 이후에야 이 방식을 채택했다. 중국은 왜 다른 개도국처럼 일찍 이 방식을 채택하지 못했을까? 이에 대해 린 원장은 “후발주자의 이점과 잠재력을 중국 ‘스스로’ 포기했다”며 “중국이라는 국가가 최초에 사회주의혁명을 통해 수립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린 이푸 원장은 ‘개도국은 후발주자가 갖고 있는 이점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후발주자의 이점은 ‘실용적인 사고’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 시킨 요인

1980~90년대 많은 개도국들이 전환기를 거치며 경제 성장이 정체됐음에도 중국은 왜 안정과 성장을 구가했는가? 이 세 번째 질문에 린 원장은 “1980년대 후반, 남미의 여러 개도국이 과거보다 낮은 경제성장률을 보이자,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에서 탈피해 선진국의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하라는 요구가 많았다. 그것이 ‘워싱턴 컨센서스’다. 중국이 채택한 점진적인 발전 방식이 잘못됐다는 얘기도 이때 등장했다. 하지만 성급하게 선진국의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한 개도국은 오히려 망했다”고 답했다. 이어 “1990년대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어 정부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권고가 선진국으로부터 등장했을 때도, 중국은 국영기업을 민영화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보조금을 주며 보호·육성한 것이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켰다”고 덧붙였다. 

린 원장의 입장은 명확했다. 산업을 뒤늦게 발달시킨 국가와 산업을 먼저 발달시킨 국가의 경제성장 방식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 분야의 주류 이론은 선진국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개도국이 그 이론을 받아들이기 전엔 그 이론이 어떤 조건 위에서 만들어졌는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 이런 방식에 기초한 중국의 경제는 언제까지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린 원장은 “지난 2008년 중국의 1인당 GDP는 미국의 1/5였다. 일본은 이를 1951년에 달성했고, 대만은 1975년, 한국은 1977년에 달성했다. 이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를 달성한 뒤 20년 넘게 8%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럼 중국도 대략 2028년까지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것의 구체적인 이유로 그는 “방대한 인적자본과 내수시장”을 꼽았다. 린 원장은 “개발한 기술이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그 기술이 표준이 돼야 한다. 중국의 경우,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을 때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내수시장에 판매할 수 있고, 손쉽게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국가가 모든 걸 잘할 순 없다

하지만 중국처럼 방대한 내수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국가는 전 세계에 중국뿐이다. 즉 중국의 경제 성장 방식도, 다른 나라가 받아들일 때 “어떤 조건 위에서 만들어졌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린 원장은 마지막으로 “중국의 성장이 어떤 의미인가. 내 분석은, 모든 개도국은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후발주자가 갖고 있는 이점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잠재력을 찾을 수 있다면 중국이나 다른 동아시아 국가처럼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발주자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으려면, ‘실용적’이어야 한다. 어떤 산업을 개발할지 결정해야 한다. 현대화 과정에서 몇몇 개도국이 너무 야심찼다. 선진국처럼 대규모의 첨단 산업을 성급하게 추진·육성하려 했다. 어떤 산업을 개발하는 것이 유리한가를 고민해야 한다. 즉, 자국의 비교우위와 특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편 강연 이후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엔 '중국의 일당독재 체제에서 어떻게 그 많은 창의적 기업들이 등장할 수 있는가'라는 류의 질문이 주를 이뤘다. 현재 기업 가치가 1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 즉 '유니콘 기업'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236개다. 이 가운데 중국 기업은 64개(27.1%)로, 미국 기업 다음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결과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표한 것. 이런 의문의 이면에는 민주주의 체제가 '지속적인' 경제 발전에도 이롭다는 판단이 있다. 과연 그럴까. 린 원장의 강연이 제기한 근본적 질문은 '경제발전과 정치체제의 관계'였다. 

글·사진 양도웅 기자 doh032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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