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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들 무식이 녹색미래 망친다
관료들 무식이 녹색미래 망친다
  • 박영근 주간
  • 승인 2001.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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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박영근
주간·중앙대 불문학

13대 대선을 눈 앞에 두고 표 모으기에 혈안이 됐던 전두환 정권은 86년 “전북이 지역발전에 뒤처져서 어느 지역보다 주민들의 개발욕구가 거세기 때문에 새만금사업이 좋겠다”는 황인성 농림수산부장관의 의견을 듣고 새만금지역 종합개발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사업규모로 볼 때 일이년 정도는 걸려야 할 타당성 조사는 이례적으로 7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물론 경제성이 있다는 ‘정치적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전 대통령은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새만금사업추진계획을 국책사업으로 전격 발표하도록 했다.
재미 한국인권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있었던 유종근씨는 지난 87년 대선 때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정책기획 담당으로 임명돼 새만금 개발공약을 마련했다. 이런 이유로 95년 초대 민선 전북지사에 임명됐고 98년에 다시 당선된 유 지사는 새만금사업에 남다른 집착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경제고문이자 현 정권의 실세인 유 지사가 정부예산 담당자를 찾아다니며 예산배정을 요청하는 등 새만금사업에 세몰이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환경단체들이 완강히 반대하자 유 지사의 노회한 뒷통수치기가 튀어나왔다. 유지사는 99년 1월 기자회견을 열어 관련 부처와 협의하거나 건의하는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느닷없이 새만금사업의 재개 여부를 민관조사단을 구성해서 그 보고서에 따라 결정하자고 발표했다. 그러자 농림부와 건교부 공무원들은 “일개 도지사가 국가사업에 ‘감놔라 배놔라’ 간섭할 수 있는 것인가? 중앙부처 공무원으로서 모멸감을 느낀다”고 한숨을 터뜨렸다.

더군다나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드는 어처구니 없는 짓이 연거푸 터졌다. 지난해 새만금사업의 타당성 여부가 공동조사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에, 새만금사업 공사대행을 맡고 있는 농업기반공사 문동신 사장은 “새만금 간척사업을 중단하면 방조제 유실 등 생태계 재앙이 초래되고 막대한 국고낭비와 공약사항 불이행으로 국민불신이 초래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또한 지난 9월초 농업기반공사가 6천만원을 들여서 홍보용으로 ‘농업기반신문’을 일시적으로 만들었다. 새만금사업에 대한 네쪽짜리의 기사가 있는 이 신문을 모 중앙일간지 간지 속에 넣어 17만부를 서울 강남지역에 뿌렸고 지난해 10월에도 35만부를 서울과 분당지역에 배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사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데 있다. 최종결론이 유보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 신문은 결론이 난 것처럼 보도했고 조사기관에서 오류가 인정돼 자진폐기한 여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소개하는 등 내용의 상당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

반대 봇물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2백여개의 환경-시민단체는 지난해 10월16일부터 서울 조계사에서 ‘새만금 갯벌 살리기 33일 밤샘농성’을 벌였다. 이어서 지난해 10월24일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가톨릭농민회’ 등 5개 농민단체들도 반대하고 나섰다. 새만금간척사업은 농토확장이라는 기초적인 목적도 달성할 수 없는 무모한 사업이라고 못박으면서 농지확보와 식량생산에서 비효율적일 뿐만이 아니라 어장을 비롯한 환경 전반의 파괴로 이어지는 이 사업은 즉각 백지화돼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31일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11개 인권단체들도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성명서에서 “대통령과 전라북도가 정략적인 차원에서 사업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면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바깥쪽 환경관련인사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월드워치의 레스터 브라운 소장이 지난 연말 새만금 갯벌사업의 부당성을 지적·항의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는 우리 관료들의 무식함을 ‘죄악’이라고 호되게 꾸짖었다. 또한 지난해 8천억을 퍼부었던 일본판 새만금사업으로 불리는 시마네현 나카우미 간척사업을 37년간의 투쟁 끝에 백지화시킨 호보 타케히코 교수는 “한국도 한번 시작된 공공사업은 멈추지 않는다는 잘못된 관행이 뿌리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파괴를 반대하는 운동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관료들의 우직함과 그들이 만든 정책의 경직성이라고 못박았다.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서 우리신문과 많은 환경-시민단체들은 여러 번 새만금사업의 심각한 문제점을 갈파했다. 그런데도 이같은 소나기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올해 예산에 천여억의 새만금사업비를 승인한 국회의 망국적 곁방망이질은 마땅히 규탄받아야 한다.

이제 우리 모두는 눈 앞의 자투리 이익을 떨쳐버리고 ‘람사협약’의 정신을 존중해서 새만금 갯벌을 습지보전지구로 정해서 후손에게 대물림해야 된다. 시화호와 화옹호처럼 대재앙이 될 공산이 큰 애물단지인 새만금사업에 대해 김 대통령은 민심을 헤아려서 결단을 내려야 하고, 유 지사는 월권적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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