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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영어 절대평가 유감 
수능 영어 절대평가 유감 
  • 김선웅 한국영어학회장·광운대 영문과
  • 승인 2018.08.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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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7일 국가교육회의 대입개편 권고안 발표를 접하며, 우리나라 영어 관련 학회들의 대표 협의체인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이하 영단협)는 2022학년도 대입개편에 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수능 영어 평가 방법이 다른 기초과목에 비해 현저히 불균형한 상황에 있어 결과적으로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영단협의 입장에 동의하며 구체적인 의견 몇 가지를 요약해 밝힌다. 

수능 절대평가 제도는 학교 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감소를 위해 도입됐지만, 현재 같은 기초과목군에 속하는 국어·영어·수학 과목 중 영어만 절대평가다. 영어 절대평가는 다른 과목들의 절대평가를 전제로 시범적으로 시작됐고, 현 정부는 대선 핵심 교육 공약으로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도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가 국가교육회의 권고안에 따라 2022년 대입 이후에도 영어만 절대평가를 계속하게 되는 경우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이다.

첫째, 다른 기초과목인 국어, 수학과는 달리 영어에만 적용되는 수능 절대평가는 학교 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감소라는 근본 취지가 무색하게 단지 학교 영어교육의 부실화만을 낳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수능 영어 절대평가 시행 이후, 사교육 과목이 달라졌을 뿐 전체 사교육비는 줄지 않았다. 이는 영어 과목의 평가방식 변화만으로 사교육비 감소라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수능 영어 절대평가가 결정된 당시에도 고등학교 사교육비 최대 지출과목이 영어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사교육비 관련 고려는 다시 검토돼야 할 것이다.

둘째, 수능 영어 절대평가 발표와 시행 이후 학교 영어교육의 위축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8년도 영어교사 임용 비율은 2014년도 대비 37% 수준으로 대폭 하락했다. 물론 학생 수 감소에 따른 교사 수요 감소를 십분 감안하더라도, 같은 기간 국어 교사는 60%, 수학 교사는 57% 수준으로 임용된 현실은, 수능 영어 절대평가 시행이 우리나라 학교 영어교육의 상황 악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셋째, 이러한 학교 영어교육의 위축은 새로운 교육과정의 적용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선택과목의 확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기초과목의 교육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영어는 교육과정 상으로는 국어, 수학과 동일한 과목으로 분류돼 있지만, 대입을 앞둔 상황에서 이뤄지는 학생별·학교별 과목 선택에 따라 영어 수업은 급격히 감소할 것이고, 그만큼 학교 영어교육 과정의 위축도 가속화될 것이 매우 우려된다.

넷째,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학교 영어교육의 위축과 부실화가 계속된다면, 고비용의 사교육이나 해외 유학 등의 방법을 선택하지 못하고 학교 교육을 통해서만 영어를 익혀야 하는 대다수 보통 학생들과 상대적으로 재정적 상위에 있는 부유층 학생들 간의 영어격차(English divide)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영어(실력)격차는 사회 양극화라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더욱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이는 당초 사회의 격차 해소를 목표로 도입한 절대평가 제도가, 오히려 불균형한 시행을 통해 결과적으로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동되는 논리적 모순이다. 염려스럽기 그지없는 절대평가의 역습이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과 급변하는 국제정세로 국가 간 소통 경쟁력은 더욱 절실해져만 가는데, 수능 평가방법의 불균형한 시행과 지진에 흔들리듯 불안정한 대입 체제로 영어교육의 근간이 흔들려 국가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디로 갈 것인지 진땀 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필자는 2018년 8월 7일 국가교육회의 대입개편 권고안의 발표를 접하면서 수능 영어 절대평가가 가져오는 학교 영어교육 악화와 이에 따른 사회양극화 심화, 국가 경쟁력 약화에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국가의 교육 정책은 시민참여단뿐만 아니라 학술단체와 같은 전문가집단도 함께 참여해, 생산적이고 중·장기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설정될 필요가 있다. 국가의 교육과 장래를 우려하는 영어 전문가들의 충정을 적극 수용해, 영어교육이 학교 교육 현장에서 위축되고 국가 경쟁력도 하락하는 현 상황을 하루속히 바로잡기를 진심으로 촉구한다.     

김선웅 한국영어학회장·광운대 영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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