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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술정책은 아직 쇄국적 … 비교문화 통해 세계적 독립학자 키워야”
“한국 학술정책은 아직 쇄국적 … 비교문화 통해 세계적 독립학자 키워야”
  • 윤상민
  • 승인 2018.09.0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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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Storia della Corea』 펴낸 마우리치오 리오토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마우리치오 리오토 이탈리아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 윤상민 기자
마우리치오 리오토 이탈리아 나폴리동양학대 교수 ⓒ 윤상민 기자

꼭 1년 만이다. 한국학자들은 자부심이 없다고 쓴 소리했던 마우리치오 리오토 나폴리동양학대 교수를 다시 만났다(「학문 추동하는 건 호기심…한국 학자들, 자부심 없고 새로운 도전 하지 않는다」<교수신문> 889호). 지난 7월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도형)이 유럽 역사교육자(유로클리오)와 함께 ‘국경을 초월한 역사교육’을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에 초청받은 리오토 교수가 「역사교육에서의 ‘타자’ 형상화」를 발표하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은 것. 이례적이었던 한국의 2018년 폭염을 견뎌내고 이탈리아로 귀국하기 전, 기자를 만난 그가 활짝 웃으며 책 한 권을 내놓았다. 『Storia della Corea』(Bompiani). 이탈리아어로 쓴 한국의 역사책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촛불혁명까지 다뤄

유창하다 못해 수다스럽기까지 한 그의 한국말이 시작됐다. “2005년에 낸 책의 증보판이에요. 다른 점이요? 한국사 시작점은 구석기시대로 똑같고요. 음, 초판에는 2003년까지,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 시대까지를 기록했고요. 이번에는 박근혜 정권과 최순실, 2017년 촛불혁명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당선까지 다 기록했죠.”2005년 410페이지였던 초판이 2018년, 710페이지의 증보판으로 재탄생했다.

잘 알려져 있듯 한국학을 주제로 한 그의 저술은 170여종에 이른다. 『춘향전』 같은 고전문학부터, 이문열의 『시인』,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 등의 소설작품,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같은 불교 고전까지 분야를 막론한다. 리오토 교수는 이번 역사책을 쓰면서 철저히 사료 중심으로 참고문헌을 구성했다. “일본 사료, 중국 사료, 한국 사료 가리지 않았어요. 그 다음으로는 한국 학자, 유럽 학자, 미국 학자들이 쓴 책을 거의 다 참고했죠.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무조건 사료예요. 『삼국유사』, 『삼국사기』가 중요한 사료고요, 발해에 대해서는 일본 사료에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죠.”

그가 이번 증보판에서 특히 더 공을 들인 부분은 한국 디아스포라,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다. 한국의 디아스포라는 19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리오토 교수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바다를 건너 가 일본 문화를 세운 한국인도 있고,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했을 때 발해로 건너간 110만명이 있고, 임진왜란 때는 일본인이 한국인을 납치해서 팔았어요. 그런 사람들도 디아스포라입니다. 다만 옛날 이민 갔던 사람들이 몇 백년이 지나 얼굴이 달라진 것입니다. 디아스포라 문제를 사회학이 아닌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꼭 봐야 하는 이유죠.”

리오토 교수가 독도 문제로 화제를 돌리며 애초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문제였다고 열변을 토한다. 문득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남북문제를 그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어떤 한국인도 그리 생각하진 않겠지만 한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가 어렵다고 봐요. 한반도가 통일되면 주변에 좋아할 나라가 없거든요. 중국은 북한을 차지할 생각이었고, 통일이 되면 미국은 2만8천명의 주한미군을 주둔시킬 명분이 사라지죠. 그래서 한국인들이 잘 해야 해요. 절대 부족(민족)주의로 가면 안 되고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2015) 사태를 언급했다. “유대인을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게 아니라 테러리스트로 감옥에 보낸 것이고 그들은 나중에 먹을 게 없어서 다 죽었다고 말한 프랑스 학자 로베르 포리송과 유사하다고 봐요. 2년간 버마에서 싱가폴까지 일본군 위안소 관리자가 쓴 일기를 출간한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안병직 저, 이숲, 2013)도 있지만요, 예민한 문제지만 박 교수가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형제로 봤으니 일본을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는 거죠.” 하지만 리오토 교수는 박유하 교수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책을 쓸 권리가 있는 것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수정주의가 없으면 역사책은 바이블이 됩니다. 바이블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무조건 믿어야 하는 책이잖아요. 제가 박 교수의 많은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박 교수가 그 책을 쓸 권리가 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리뷰라는 방식이 왜 존재할까요? 동의 안 하는 사람이 어떤 측면에서 동의할 수 없다고 쓰면 되는 거예요. 학문적 영역 안에서 말이죠.”

그는 한국이 지금까지 서양에 소개되지 못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 그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볼 때, 동쪽으로는 일본, 서쪽으로는 중국, 북쪽에는 시베리아, 남쪽으로는 필리핀 등‘만남의 광장’으로서 재미있는 문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나라가 약했기 때문에 중국,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고 본다. 약한 나라는 쇄국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한국에 드나들던 외국인 선교사나 군인은 한국에 관한 전문적인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962년에 설립된 이탈리아 일본문화원, 한국은 2016년에 설립

하지만 그는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는 쇄국정책이 끝났지만, 아직 학문적으로 닫혀 있다고 지적한다. 왜일까? 교수 직함을 받음과 동시에 한국 사회에 안주해버리는 일부 한국 학자들의 지적 게으름도 한 가지 이유가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로 마우리치오 리오토 교수는 한국학자들이 중국, 일본 학자들에 비해 서양으로 많이 오지 않는 점을 들었다. “로마에 일본문화원이 언제 생겼는지 아세요? 1962년이에요. 한국문화원은 2016년에서야 만들어졌죠. 한국의 서양학은 일본에 비해 50년 더 늦게 가고 있는 거예요. 제가 대학생일 때 이미 일본학자들이 이탈리아에 와서 발굴을 했거든요.”

그는 일본학자들의 서양학 수준이 매우 높다고 평한다. 정부 지원이 있었는지 개인적인 노력이었는지 저간의 사정이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본의 서양학 연구자들은 중세철학, 라틴어, 고고미술사 등 서양학에서 이미 국제적인 학술 수준에 도달했고, 일부 분야에서는 서양학자들을 앞서기도 한다는 것. 리오토 교수가 한국은 국가적으로, 학자 개별적으로도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늘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지 말고 투자라고 생각하세요. 장기계획이 필요합니다. 국가주의 사상에서도 벗어나야 할 것이고요.”

한국사는 세계사의 한 부분

현재 그는『삼국유사』를 번역하면서 소극적 근본주의자 연구와 비교문화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동양, 서양 이야기하면 『산해경』과 서양책을 많이 비교하죠. 비슷한 게 많아요. 왜냐고요? 한국사는 세계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에요. 국가주의에 갇혔던 한국은 역사를 국사와 세계사로 구분해 가르쳤어요. 그러면 세계가 한국인과 세계 두 종류로 나뉘어요. 아니에요. 한국은 언제나 세계의 한 부분이었어요. 역사는 이렇게 가르쳐야만 발전해요.”

1985년 한국과 인연을 맺은 리오토 교수는 지금 한국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강의로 ‘비교문화’를 말한다. “한국 학자를 세계적인 학자로 만들려면 비교문화 연구가 필수예요. 좋은 학생들을 가르쳐서, 훗날 서양학 분야에 독립적인 한국학자가 생기면, 그 사람이 자기 힘으로 또 제자를 만들고, 스콜라를 만들 정도가 되도록 해야죠.” 외국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만 많은 한국 대학의 현실에서, 더 늦기 전에 고대서양문화의 정수를 가르칠 외국인 교수들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과정보다 열매를 탐해온 한국 대학들이 기초학문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는 碧眼의 교수의 진중한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늘 시작이 문제다.

글·사진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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