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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의 전환 가져온 영국의 ‘지리적 행운’ … 산업혁명을 牽引하다
문명사의 전환 가져온 영국의 ‘지리적 행운’ … 산업혁명을 牽引하다
  • 윤상민
  • 승인 2018.09.0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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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의 역사_ 20세기 영국사 연구의 발자취 1. 영국 산업혁명의 원인: 석탄의 재검토

연재를 시작하며
<교수신문>은 영국사학회(회장 설혜심, 연세대)와 함께 20세기 역사학적 성과를 회고하고 21세기 역사학의 발전방향을 전망하는 연구사의 흐름을 소개하는 연재를 기획했습니다. 역사학 연구의 흐름을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20세기 후반 한국의 서양사를 이끌어 온 학자들이 대거 은퇴하는 동시에 학문후속세대의 수적 감소와 빈약한 입지에 대한 위기감 속에서 학문적 명맥을 이어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산업혁명에 대한 재검토를 시작으로 대서양사와 이민사, 정치가에 대한 평가의 변화 및 영국식 외교의 특성, 1차 대전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 및 혁명을 둘러싼 새로운 해석들, 대중혁명보다 고급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하이 폴리틱스 등 다양한 주제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을 통해 20세기 역사학의 학술용어 개념들이 어떻게 변천돼 왔는지를 확인하고, 나아가 21세기 역사학 연구방법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윌리엄 벨 스콧(William Bell Scott), 「석탄과 면화」(Iron and Coal)
윌리엄 벨 스콧(William Bell Scott), 「석탄과 면화」(Iron and Coal)

‘산업혁명’은 1760년대 이래 수십 년간 영국에서 전개된 공업생산의 증가와 이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변동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러한 변화는 영국을 비롯해 19세기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연이어 겪었기 때문에, 한 나라가 산업사회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단계로 인식되고 있다.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아널드 토인비의「영국 산업혁명강의」(1884)에서 학술적 의미를 갖게 됐지만, 그 이전에도 루이 블랑키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같은 동시대 지식인들이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급속한 변화를 가리켜 이런 표현을 썼다. 그동안 토인비 이래‘격변론자’들이 산업혁명의 중요한 특징으로 강조한 것은 경쟁적 시장, 공장제도, 기술혁신과 증기력 등이었다. 특히 1960년대 근대화론이나 경제성장사학에서 산업혁명은 근대화과정의 결정적 시점인 도약 단계, 인구증가율을 상회하는 지속적 경제성장 또는 근대적 경제성장의 최초 사례로 간주됐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정치적 격변과 달리 급격한 변화의 시점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산업혁명기 영국경제는 전반적으로 그 이전 시기와 뚜렷하게 대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날, 수정론자들은 산업혁명이 완만하고 온건한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혁명이라는 표현 자체가 실제로는 신화이거나 잘못된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산업혁명은 새로운 시대를 열만큼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하더라도 기술진보는 결코 전통적인 수공 기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었는데, 이는 결국 산업혁명기의 주요 산업이 수공업 기반 위해서 번영을 누리고 있었음을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기계에 빠져든 당대의 관찰자들

산업혁명을 격변적 변화로 인식해온 전통적인 견해는 특히 기계, 그 중에서도 작업기와 공장제도를 중시해 왔다. 산업혁명의 원인 또한 이 기계화와 공장제도의 확산에 유리하게 작용한 조건이나 요인들과 거의 같은 의미로 인식됐다. 그렇다면, 산업혁명 당대의 지식인들이 작업기에 관심을 기울인 까닭은 무엇인가. 1835년 앤드류 유어는 기계의 강점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기계 개량은 세 가지 이점을 갖는다. 첫
째, 기계는 그것 없이는 제조할 수 없는 상품을 만들 수 있게 한다. 둘째, 기계는 시간 작업 및 지속적인 노동의 질 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양질의 작업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 기계는 좀 더 숙련된 노동자를 미숙련 노동자로 대체하도록 만든다.”

그 당시 기계는 유어, 찰스 배비지, 에드워드 베인스 등 동시대 지식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이들은 모두가 기계란 그 안에 어떤 장치를 가지고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했다. 이들 가운데 유어가 수력방적기 또는 뮬 방적기 등의 구조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1820년대에 개량된 자동 뮬기(self-acting mule)는 산업혁명기 경제발전을 주도할 수 있는 기계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기계의 사용과 공장제도의 확산이야말로 산업혁명의 본질적인 면모로 간주됐다.

기계를 바라보는 당대 사람들의 견해는 후일 산업혁명을 급격한 변화과정으로 바라보는 경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어와 배비지는 그 용도에 따라 기계를 동력기, 전동기, 작업기로 개념화하고 있다. 특히유어는 동력기라고 하는 첫째 부류의 기계보다는 마지막 형태인 작업기에 초점을 맞춘다. 왜 당대의 관찰자들은 생산과정에서 작업기의 역할을 강조했는가? 왜 그들은 기계에 빠져들었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영국에서 처음 기계가 출현하지 않았다. 실제로 기계는 前산업시대의 중국이나 유럽 대륙 같은 다른 지역에서도 만들어 사용됐다. 다만, 이들 지역의 노동자들이 기계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없었던 반면에 오직 영국의 노동자들만이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기계와 증기기관을 연결해 다루고 이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최근에 몇몇 역사가들이 산업혁명기 기계의 역할을 새
롭게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의 역사가들과 달리, 이들은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로서 기계의 지속적인 이용을 가능케 한 증기기관 또는 석탄 자체에 눈길을 돌린다.

기계는 전산업시대 다른 지역에서도 발명됐다. 중국과 같은 전통적인 사회에서 지식인과 장인들은 농경이나 양수용, 또는 군사용으로 정교한 기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기계들은 발명되었을 뿐 사람들이 널리 이용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방적기가 증기기관과 연결됐던 반면, 다른 지역의 작업기들은 인력이나 자연력으로 가동하는 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없었다. 바로 이점이 18세기 영국과 다른 지역의 차이를 낳은 것이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기계의 발명이 아니라 그 기계의 지속적인 사용 여부이다.

증기기관에 의해 추진되는 뮬방적기가 공장에 설치된 것은 1790년대 초의 일이다. 그러나 영국 산업혁명의 전개과정에서 증기기관과 석탄이 작업기보다도 오히려 더 중요했다는 점은 그동안 간과됐다. 최근 케네스 포머란츠는 18세기 영국 경제와 양쯔 강 델타지역 경제를 비교하면서, 지표면에 풍부하게 매장된 영국의 석탄을‘지리적 행운’이라 불렀다. 여기에서‘지리적 행운’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튜더시대 이래 영국인들은 랭커셔나 뉴캐슬 같은 잉글랜드 북부 지역에서 채굴한 석탄을 가정용 연료로 사용해왔다. 산업혁명 이전 두 세기에 걸쳐 석탄은 영국인들의 일상생활에서 매우 친숙한 연료였다. 존 에블린은 17세기 후반의 世上事를 기록한 일기를 남긴 인물로 널리 알려졌는데, 1684년 1월 9일자 일기에서 그는 혹한이 몰아친 런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런던은 혹한 때문에 공기에 연기가 가득하고 석탄 검댕이가 깃든 증기로 채워져서 거의 도로 건너편을 식별할 수도 없고, 이것이 폐에 대량으로 쌓이면 가슴을 압박해 거의 숨조차 쉴 수가 없다.”

석탄이 오랫동안 익숙하게 사용됐기 때문인가. 그 중요성을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산업혁명사 연구에서 석탄은 단지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 이상의 비중을 갖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에드워드 리글리가 석탄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석탄이야말로 영국 경제에서“열 에너지원으로서 목재를 대신할 수 있는 값싼 대체제”였다고 주장한다. 석탄 채굴량의 증가는 산업혁명을 초래한 여러 요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그것은 가정용 및 산업용 연료뿐 아니라 산업혁명의 토대가 될 제철분야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목탄 대신 석탄을 연료로 사용함으로써 제철생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유기경제체제에서 무기경제체제로

물론 리글리는 단순히 영국 산업혁명만이 아니라 문명사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석탄 문제를 언급한다. 그는 석탄 이용을 유기경제(organic economy)에서 무기경제(inorganic economy)로 전환하는 분수령으로 간주한다. 유기경제란 토지가 인구를 부양할 식량을 제공하고 식물과 동물을 통해 모든 원자료를 공급하는 경제다. 이 경우 인구증가에 따라 노동집약적 생산으로 나아가며 조만간 맬더스적 한계에 이르러 생태위기에 직면한다.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것은 무기경제, 즉 광물로부터 에너지와 원료를 얻는 상태에서나 가능하다. 석탄과 증기력, 그리고 화학비료의 등장이 무기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지난 한 세기에 걸쳐 산업혁명의 주된 원인들을 밝히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18세기 영국에서 자본축적과 노동공급, 그리고 시장수요에 유리하게 작용할 만한 여러 조건, 제도, 관행, 사회 분위기 등이 중시됐다. 명예혁명 이후의 정치적 안정, 국제무역 주도, 중간계급의 성장, 이윤추구 경제활동에 대한 귀족층의 참여, 금융혁명, 부의 축적과 신분이 밀접하게 연결된 영국 귀족제도의 개방적 성격, 과학지식의 보급 등이 원인 목록에 자주 등장한다. 좀 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노포크 농법으로 널리 알려진 농업혁명, 18세기 후반에 집중된 의회 인클로저, 운하망과 항구와 도로 같은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자유방임주의 등이 주로 거론된다. 나아가 제도적 차원에서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법과 제도의 정착, 거래를 활성화할 수 있는 편리한 계약관행도 중시됐다.

그렇지만 역사가들은 이들 요인 가운데 가장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니콜러스 크래프츠같은 역사가는 그동안 거론된 여러 요인들의 목록을 작성한 뒤에 영국의 산업화는 아마도 ‘확률상의 문제’일 것이라는 자조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은 산업혁명사 연구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대답을 찾기란 그만큼 어렵다는 점을 일깨운다.

그러나 산업혁기 당대의 지식인 가운데 석탄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한 인물도 있다. 예를 들어, 1835년 존 머컬러크는 유어의『공장의 철학』을 다룬 한 논평에서 석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머컬러크에 따르면, 유어는 공장에 설치된 기계류의 기계적 속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기계에 관해서 너무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 독자들이 그의 책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공장제도가 왜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다른 나라에서 나타나지 않는지, 독자들이 그 이유를 알려고 한다면, 유어의 책을 통해서는 어떠한 해답도 얻을 수 없다. 유어는 자동 뮬방적기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그것은 석탄이다.

“그러나 제조업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경이적인 진보를 이룩하는 데 기여해온 물질적 환경 가운데서도 가장 가치 있는(채굴비용이 가장 저렴한) 탄광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것은 없다. 이 점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똑같은 수준으로 도저히 누릴 수 없는 여러 이점을 우리에게 부여한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철광산이나 다른 유용한 금속 등 부존자원이 풍부하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무진장한 탄광이 없다면 거의 또는 전혀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영국 산업혁명의 원인을 찾다보면 역사에서 우연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포머란츠가 말한 ‘지리적 행운’을 고려하지 않고서 영국 산업혁명의 전개과정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의 원인을 어떻게 서술할 수 있는가. 근래 로버트 앨런의 ‘편향적 기술진보론’이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견해로 인정받고 있다. 앨런은 산업혁명의 원인에 관한 논의에서 제도적·문화적 요인과 기술요인의 결합을 추구한다.

선진적 제도와 문화는 가술혁신의 공급을 증가시킬 수 있지만 곧바로 기술혁신의 수요에 연결되지는 않는다. 영국에서 증기력과 기계의 수요가 창출된 것은 16-18세기에 형성된 잉글랜드 특유의 경제적 조건 때문이다. 16-18세기에 영국은 농업혁명, 인클로저, 원산업화, 신대륙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국제무역 주도 등에 힘입어 도시화가 진척되고 도시경제가 발전했다. 고임금과 도시화에 따라 비화석 에너지가격이 급등했으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석탄이 등장한 것이다. 영국에서 석탄, 증기기관, 기계가 확산된 것은 도시화, 고임금, 기존 에너지가격 상승이라는 조건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영석 광주대·외국어학부
성균관대에서 박사를 했다. 대표논문으로 「19세기 영제국과 세계」, 저서로 『공장의 역사: 근대 영국사회와 생산, 언어 정치』, 역서로 『옥스퍼드 유럽현대사』 등이 있으며, 한국서양사학회, 도시시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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