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이해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미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가급적 그것(시대적 흐름)에 충실하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도 불안할 뿐만 아니라 때론 타인에게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 때문에 랭보는 “항상 현대적이어야 한다”고 외쳤는지 모르고,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마음』의 선생은 유서에서 ‘時勢의 추이’, ‘시세에 뒤쳐짐’을 언급했는지 모른다. 물론 토마스 만은 우리는 시대의 자식이 아니라 신화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고, 밀란 쿤데라는 니체의 ‘영원회귀’를 빌어 우리의 선택이나 판단에 존재하는 한없는 가벼움을 지적하며 ‘시세의 추이’에 저항하기도 했다.

근대사회에서 담론경제는 무엇보다도 자기시대에 대한 인식과 그것의 유통(보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우 그것은 소화하기 쉬운 형태로 요약되거나 糖衣錠이 입혀진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는 ‘헬조선’의 시대나 ‘일베’가 활개를 친 시대로 규정되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 이제 아무도 ‘헬조선’이나 ‘일베’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실은 변한 게 없지만 그것을 말하는 것 자체가 낡은 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모두가 ‘페미니즘’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워마드’를 비판하거나 변호한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탈조선’이 이야기되었다. 물론 그것은 조선 바깥에 천국이 있다는 말이라기보다 당대현실에 대한 일종의 ‘태도’를 의미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에 해당되는 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소확행’이 아닐까 한다.

1986년에 탄생한 ‘소확행’이라는 말은 정작 탄생지인 일본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2015년 즈음 대만에서 크게 유행을 했고, 국내의 한 언론은 이를 지금의 대만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상징어로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낯선 용어였다.

그런데 이 단어는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2017년 후반부터 자주 언급되기 시작하더니 2017년 말에는 서울대 소비트렌드 연구소가 선정한 2018년의 소비트렌트 중 하나가 되었고, 한 여성주의 미디어는 2018년의 중요한 문화적 흐름으로 그것을 다루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말의 출처가 생략된 채로 TV예능에도 등장하는 용어가 되었다. 이제 ‘탈조선’이 아니라 ‘소확행’인 것이다.

‘소확행’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랑겔한스섬의 오후』(1986)에 등장하는 말로, 흥미롭게도 그것은 빤쓰(점잖게는 팬티)를 이야기하는 도중에 나왔다. 작가는 빤쓰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 서랍장에는 상당한 양의 팬티가 있는데, 서랍에 돌돌 잘 말은 깨끗한 팬티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작지만 확고한 행복’(그는 이것을 줄여 ‘소확행’이라고 말한다)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물론 오늘날 ‘소확행’에 대한 비판도 적지 많다. 고작 빤스를 수집하는 즐거움을 정색하고 비판을 한다는 것(불황시대의 수동적 생존전략 운운)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 그런데 ‘소확행’은 ‘시세의 추이’를 따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하루키가 ‘소확행’에는 ‘자기규제’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힌트를 드리고 싶다. ‘랑겔한스섬(Langerhans islets)’이란 우리 바깥이 아닌 우리 몸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혈당을 관리하는 내분비조직이라는 점(이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당뇨병에 걸린다)과 ‘소확행’이란 하루키 자신이 번역하기도 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A Small, Good Thing」에서 유래했다는 점이다.

조영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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