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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광장] 정치 깡패의 재판장을 향한 호령, "돈 준다는데 싫단 놈 있소?!"
[장병욱의 광장] 정치 깡패의 재판장을 향한 호령, "돈 준다는데 싫단 놈 있소?!"
  •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 승인 2018.09.1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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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광장_⑤ 7월 재판, 황금의 주먹

‘정치 깡패’라 일컫지만 그들도 결국 돈을 좇아 주먹을 놀렸음이 분명해졌다. 이정재 조열승 등의 모든 죗과가 이권 쟁탈에서 싹텄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고 심지어 이경수 같은 사나이는 “돈 준다는 데 싫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본바탕을 드러내는 판이었다. 

황금의 주먹을 휘둘러 치부해 놓은 그들의 재산 정도를 훑어보도록 하자. 이정재 = 5천만환, 임화수 = 2억환, 조열승 = 8천만환, 이경수 = 4천5백만환,  오윤석 = 1천5백만환, 홍영철 = 4천5백만환으로 되어 있다.

그는 “그 어른(이승만)을 모시고 있었기에 ‘고리대금업자’치고는 점잖은 말을 곧잘 써서 방청객들을 웃겼다. 말끝마다 ”없사옵니다“란 경어를 빼먹는 일이 없었다. 그런 줄만 알았더니 고대 데모대를 습격한 깡패들이 동대문서에 구속됐을 땐  양홍식 서장에게 다짜고짜로 ”개새끼“라 불러댄 일도 있었다고.

재판장도 그 말버릇을 책잡았다. 곽영주는 다급해져서 ”고대 데모대가 종로4가의 가게에 투석을 했다는 보고를 듣고 분개했다“고 딱 잡아떼기만 했다. 그러나 ”이 개놈의 새끼, 누가 깡패를 잡으라 했나? 시경국장도 당장 모가지“라고 호통친 사실은 왕년의 심복이던 남태우 경무대서장의 증언에서 굳어져 버렸던 것이다. 심문을 마치고 피고석에 돌아온그는 얼굴을 붉혀 ”아이고-“하며 긴 숨을 내쉬었다.

곽영주에 이어 심리대에 선 이정재는 재판장이 묻기만 하면 거침없이 거짓말을 쏟아놓았다.  정만옥씨에게 엄연히 전치 3주의 폭행을 가한 사실을 시인해 놓고도 ”얼글 한  두 번 밀어부쳤더니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다친 것 뿐이었습니다“....이렇게 시치미를 떼며 손짓 발짓 섞어 지질대는 것이었다. 

‘청계천 고가 도로 추진 위원회’ 관계 특수 협박 사건에 대한 신문에 이르러선 어찌나 장광설을 늘어놓았는지 재판장이 진술 중지 명령을 내린 일조차 있었다. 당시 심문하던 재판장에게 ”가만히 계세요“라며 냅다 소리 지르며 횡설수설했다. 재판장도 어이가 없어 웃어넘겨 버렸다.

왼쪽에서부터, 이강학, 임화수, 한희석. 사진 저작권=한국일보 DB콘텐츠부

임화수, 신도환의 비굴한 태도에 격한 유지광은 변호인 보충 신문을 받자 참을 수 없다는 듯 벌떡 일어서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경찰과 청년단은 그들이 한짓을  화랑동지회에 들러씌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유지광이고 뭐고 내 부하 ―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깡패들이 뭣 때문에 혼자서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저는 저의 윗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할지언정 아랫 사람들에겐 거짓말을 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더러운 짓입니까...” 땀을 흘리며 ‘유’가 외쳐대자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그의 부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울먹였다. “흑 흑” 흐느끼며 쇠고랑에 채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유의 옆에 서있던 이정재는 그의 동생 말이 터져나오자 ‘무슨 말이 나오나’ 겁을 집어먹고 줄곧 유의 입만 지켜보고 있었다. 

“모른다” “몰랐습니다” “기억에 없습니다” “알쏭달쏭합니다”  얇삭하게 발뻼을 하다가도 원흉 들은 이따금씩 기가 막힌 명언들을 뱉는다. 그 때는 대개가 재판장의 따짐에 몰려 구석지에 바졌을 때나 자기네들끼리 말이 맞지 않아 앉달을 떨 때다.  여기 명구 중 원흉급을 골라 녹음해 본다

재판장은 이번 선거 부정에서 공무원을 동원한 사실을 요리조리 따지고 들었다. 빈틈없이 캐내고 난 재판장은 여기 관한 심문을 마감하듯이 이재학에게 한마디―“공무원들이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어주던가?” 이가 답왈 “ 글쎄 그 사람들이 딴 때는 말을 안 듣다 이 일에만은 말을 너무 잘 둘어줘서…”그리고는 자기 말에 자기가 어이없다는 듯 천장을 한번 쳐다보고는 “허 허 허”...

정부통령 선거의 개표가 끝나자 여 5천에 야 32표라는 지독한(?) 표수 차이에 놀란 원흉들은 내무부를 통해 표수를 조정하게 했다. 그렇게 하기까지의 경위를 묻는 재판장은 원흉 한사람 한사람에게 그 때 어떻게 했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한 이중재의 대꾸가 그야말로 일품. “그렇게까지 됐다면 이 선거는 망친 것 아닌가. 그럴 바엔 깨끗이 야당에게 정권을 넘겨줄 것이지! 저는 그렇게 주장했답니다.”

이따금 이들은 검찰 조서를 부인하고 든다. “그런 말 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조서에는 이렇게 씌어 있지?”하고 재판장. “적는 건 봤습니다만 다 적어놓은 걸 고치라고 하기도 뭐하고 해서 그만…”. 이것은 한희석 박용익이 두어번씩 뇌인 명언 중의 하나였다.

이런 중에도 명구가(名口家) 답지 않은 궁상도 피운다. 정기섭은  수갑밑 손목의 때만을 밀고 있다. 손목에는 빨갛게 수갑 자국이 나있다.  그리고 까만 실때가 밀려난다. 원흉들의 부록(附錄)처럼 나와 있는 이강학은 연방 굽실댄다. 굽실대며 재판장 질문에 대답하고는 얼른  자기가 금방 부른 이름의 주인공들 표정을 살핀다.  한희석은 수갑이 역겨운 듯 풀려있는 쪽 수갑을 두 손으로 맞잡아 입을 악물고 잡아다려 본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수갑을 들여다 본다. 수갑은 어디서 주어 온 것인지 그들의 마음속처럼 새까맣게 녹이 슬었다.

궁상을 떨면서도 명구는 내뱉는다. 그 명구엔 그럴싸한 서두도 붙는다. 서두가 너무 멋져서 재판장의 핀잔을 사기도 한다. 그 중 몇 가지―

한희석이 다른 피고와 다른 진술을 약간 비쳤다. 재판장이 따지고 들었다. 덩황한 한, “모른다던 사람들 입장이 거북할까봐서….” 이 때 재판장 핀잔, “사실이나 말해.” “네, 다른 사람들 말을 종합해 말씀드리면….” 또 핀잔 “네 얘기나 해.” 한번 더 피고들의 말이 엇갈린다.

대중잡을 수 없는 말이 계속되자 불쑥 손을 든 박원만. “에-이 일을 사리로 판단해 보더라도…” “판단은 재판부서 하는 거야.” 재판장의 일갈. “네에 알고 있습니다.” 이래서 재판 기록은 명구로 채워져 간다.
그러나 이들의 명구가 기억되는 의미는 어떤 것이 될 것일까―.

민주당 대통령후보지명대회장인 시공관 정문 앞에서 최인규 내무장관(오른쪽)과 조재천 민주당 의원(왼쪽)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 저작권=한국일보 DB콘텐츠부
민주당 대통령후보지명대회장인 시공관 정문 앞에서 최인규 내무장관(오른쪽)과 조재천 민주당 의원(왼쪽)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 저작권=한국일보 DB콘텐츠부

장병욱 <한국일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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