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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무죄 판결의 부당성 - 성적 자기결정권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된다
안희정 무죄 판결의 부당성 - 성적 자기결정권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립된다
  • 이상룡 부산대 강사·철학과
  • 승인 2018.09.27 15:4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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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교수신문> 937호에 실린 최성호 교수의 글 「안희정 무죄 판결의 정당성과 두 가지 자유 개념, 그리고 보론과 답변」을 읽었다. 최성호 교수는 자신의 글이 “많은 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모양이다. 그러나 나의 분석이, 나의 논증이, 나의 해석이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틀렸는지를 지적하는 비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라고 말하는데, 그 글을 읽고 심기가 불편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의 “분석이 어디서 어떻게 틀렸는지를 지적하는 비판”을 한 번 해 볼까 한다. 이 글에서 인용부호로 처리돼 있는 말은 모두 최성호 교수의 말이다. 

안희정 재판에서 핵심 쟁점은 김지은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했느냐의 여부였다. 재판부는 김지은의 피해자다움을 근거로 안희정의 무죄를 판결했다. 먼저, 위력의 행사 여부를 보자. 

위력의 '존재'와 위력의 '행사' 사이의 '간극'

재판부는 안희정이 위력을 갖고는 있지만 행사하지는 않았다고 봤다. 최성호 교수는 “일부 매체에서 위력의 존재와 위력의 행사가 구분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이번 판결을 비판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비판이다. 위력의 존재 자체와 그 위력을 실제로 행사함으로써 X를 실현하는 것 사이에는 명백한 개념적 간극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위력의 존재와 위력의 행사는 개념적으로 명백히 구분된다. 그런데 판사는 위력의 존재와 위력의 행사를 개념적으로 구분하는 학술행위를 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판한 요지는 위력의 존재와 위력의 행사가 현실 세계에서는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존재”하는 것은 “개념적 간극”일 뿐이다.

최성호 교수는 “앞서 자유를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음’으로 이해할 때 김지은과 안희정 사이의 성관계는 김지은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안희정의 위력 때문이다”고 말한다. 이때의 위력은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존재만으로도 행사되는 것인가? 혹시 최성호 교수는 자유를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음’으로 이해할 때에는 위력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 위력은 행사되는 것이지만, 자유를 ‘자기근원성’으로 이해할 경우에는 위력의 존재와 위력의 행사는 명백히 구분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위력의 존재와 위력의 행사를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음주’와 ‘운전’은 “개념적 간극”이 있으므로 저 말은 설득력이 있다고 해야 하나?

최성호 교수의 논지는 다음의 세 명제로 쪼갤 수 있다.

(1) 안희정의 위력을 아무리 폭넓게 해석한다 하더라도 김지은이 진심으로 원해서 성관계를 가졌다면 안희정은 무죄이다.
(2) 행위자의 행위를 법적·윤리적으로 평가하는 맥락에서 더 중요한 것은 자기근원성으로 이해된 자유 개념이기에 김지은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봐야 한다.
(3) 김지은의 피해자다움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이 옳다고 가정할 때 김지은이 안희정과 성관계를 가진 것 역시 자기근원성으로 이해된 자유의사에 따라 수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이 결론이고, (2)와 (3)은 전제이다. 이들 두 전제가 참이어야 (1)의 결론을 우리는 수용할 수 있다. 그런데 (3)은 “김지은의 피해자다움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이 옳다고 가정”한 것이다. 이 가정은 참인가? 최성호 교수는 이에 대해 “김지은의 피해자다움에 관한 각종 증언을 직접 청취하고 기록을 직접 확인한 재판부의 판단을 일단 존중하기로 하자”고 말한다. 최성호 교수는 “일단”이라고 말하지만 이후의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는 없으므로 전적으로 이 판단을 참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김지은의 피해자다움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이 절대적 참이라는 말이 아니다”고 나중에 말하기는 하지만, 실로 이 가정이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보자면, 이는 상당히 무책임한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다움’으로 성폭력 사건을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논쟁이 진행된 점에 비춰보면 명제 (3)은 성폭력에 대한 최성호 교수의 협소한 이해의 한계 하에서 성립될 뿐이다. 

이와 관련해 하나 더 언급하자면, 최성호 교수는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그 결론을 옹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지식을 동원하는 것, 이것이 올바른 학자의 자세인가? 절대 아니다. 나는 그것이 책이건 논문이건 아니면 <교수신문> 기고문이건 결론 미리 정해 놓고 그에 대한 정당화에 몰두하는 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 재판에서 핵심 쟁점은 ‘성적 자기결정권’이었지만, 즉 김지은이 “진심으로 원해서 성관계를 가졌”느냐는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서 최성호 교수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옳다고 가정하고 논증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판부의 판결을 참이라고 받아들이고 그 판결을 정당화하기 위해 “두 자유 개념의 충돌”을 동원한 것으로 간주될 소지가 크다. 즉, 재판부의 판결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재판부가 ‘자기근원성’으로 이해된 자유 개념을 사용한 것으로 해석해 줌으로써 재판부의 판결을 정당화해 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학자다움”을 강조하는 최성호 교수는 “김지은의 피해자다움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가를 “분석”하는 글을 썼어야했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행사(성립)되는 성적 자기결정권

명제 (2)를 보자. 여기서 핵심은 ‘자기근원성’이란 개념이다. 최성호 교수는 “성적 자기결정권은 행위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스스로 성생활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 정의된다”고 말하는데, 최성호 교수에 의하면 자유는 ‘자기근원성’이므로, “비록 포승줄로 묶여 있어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이외에 달리 행동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철수는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듯이, 비록 수행비서여서 성관계의 요구에 응해주는 것 이외에 달리 행동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김지은은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한 셈이다.

그런데 ‘자기근원성’이라 할 때 여기서의 ‘자기’는 자신의 존재를 위해 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실체로서의 자기로 생각될 수 없다. 인간으로서의 개인은 그러한 신과 같은 존재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성호 교수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진심으로 원해서 어떤 행위를 수행한다고 할 때, 나의 몸과 마음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이 과거 사건과 자연법칙에 의해 이미 다 결정돼 있다 가정하더라도 나의 행위가 여전히 자기근원성의 의미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를 자기근원성으로 해석할 때 그 자기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또는 타자와의 관계 속의 자기다. 즉, 자유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의 자유이다. 마찬가지로 성적 자기결정권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그렇다면 김지은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김지은이 자신을 둘러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행사하는 것이 된다. 즉, 안희정과의 관계 속에서 김지은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김지은이 안희정과의 관계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따라서 안희정과 성관계를 가졌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김지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구성하는 두 관계항을 함께 봐야 한다. 그런데 최성호 교수는 왜 안희정이라는 관계항은 쏙 빼고 김지은이란 관계항만 보고 김지은의 피해자다움만 이야기하는 것일까?

이제 마지막으로 명제 (1)을 보자. 최성호 교수의 주장이다. ‘~라면’논법이란 것이 있다. 가언명제를 만들어 전건인 p가 참이라면 후건인 q이다고 상대를 공격하는 논증인데, 국내 최대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언론사에서 즐겨 쓰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 논증은 q라고 공격하기 위해 입증되지도 않은 사실을 참인 양 전건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뇌리에는 p는 사라지고 q만 각인된다. 이걸 노리는 것이 ‘~라면’논법이다. 최성호 교수의 논증은 ‘~라면’논법이다. 그것은 “학문을 구부려 세상에 아부하는 것 다름 아니다.”

 

이상룡 부산대 강사·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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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10-15 17:17:07
이래서 한국 철학과가 싸그리 욕 쳐먹는 거지. 똥양 인문학의 실종. 아니 딱 봐도 불륜짓인데 뭔 여자는 금치산자 장애인이냐? 아예 장애인증 발급해줘라

가나다 2018-10-07 22:29:31
근데 "P이면 Q이다"는 진술이지 논증이 아니지 않아요? 진술과 논증 차이도 구분 못하면서 뭐하는 건지 난 도저히 모르겠네요. ㅅㄱ

가나 2018-10-05 21:31:48
피해자다움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하고 논의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하며,사건에서 피해자다움으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지 않을 수 있다는 점, 안희정이란 관계항은 빼고 말했으며 ‘~라면’이라는 논법이 문제가 있다는 점 등 좋은 반박 글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그네 2018-10-01 21:20:07
아예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국가에 넘겨라..... 행사할줄 모르면서 왜 갖고 있나..

댓글러 2018-10-01 11:29:39
그런식으로 성적자기결정권에 테클을 걸거면 모든 상사와 저지른 성관계는 언제든지 강간죄로 몰아갈 수 있다 재판부는 양쪽의 주장 증거 모두를 가지고 판단한 것이다 이상룡 말대로라면 상사와 부하는 절대 좋아할 수 없는 관계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