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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두 번째 질문
톨스토이의 두 번째 질문
  • 박혜영 서평위원/인하대·영문학
  • 승인 2018.10.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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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박혜영 서평위원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러시아 민담을 옮긴 것인데, 거기에는 잘 알려진 대로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이 나온다. 사람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천사 미카엘은 6년 동안 지상에 머물며 목격한 세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자신의 욕구(needs)를 아는 것이고,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답을 얻는다. 그런데 첫 번째와 마지막 답변은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두 번째 답변은 추측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단순하게 보자면 부자가 오늘 죽을지도 모르고 일 년 이상 신을 수 있는 튼튼한 신발을 만들어달라고 한 것처럼 사람은 자신에게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른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왜 신이 인간에게 자신의 욕구를 알지 못하도록 한 것인지, 그리고 이것이 사랑과는 어떤 상관이 있는지를 따지다 보면 두 번째 질문에는 생각지 못한 큰 지혜가 담겨있음을 알게 된다.

 이 세 질문은 욕구와 사랑의 상관관계에 대한 것이다. 물론 욕구는 자기를 위한 것이고 사랑은 타인을 위한 것이다. 욕구는 생존에 필요한 것이라기보다는 부자가 구두장이에게 만들어달라던 고급 가죽구두처럼 상품이나 서비스와 연관된 욕망이다. 반면 사랑은 배고픔에 떨고 있는 미카엘 천사에게 내일 식구들을 위한 마지막 빵을 내주는 것이자 고아로 버려진 두 갓난아기를 데려와 자기의 딸처럼 키워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어진 삶의 조건이 뭔가 부족할 때 이런 제약을 이겨내고 생존하고자 모두가 공동으로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인류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막에서도 살고 북극에서도 살 수 있었다. 고산 지방에서도 나름의 방편을 찾았고 열대 밀림에도 삶의 기술은 있었다. 그야말로 호모 사피엔스, 말 그대로 참으로 지혜로운 인간이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주어진 여러 물리적 제약과 필연적인 자연조건에 적응하는 것이고, 오래된 전통문화는 모두 그런 지혜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러시아 민중들은 왜 신이 인간에게 내면의 욕구를 보지 못하도록 했다고 믿었을까? 욕구는 생존의 방편이나 지혜와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공동체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자의 진귀한 가죽구두는 자신의 욕구를 위한 것이지 마을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희소할수록 욕구의 만족감은 커지고, 충족되지 않을 경우에는 박탈감이나 결핍감을 느끼게 된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에 따르면 자신의 욕구만 들여다보는 인간이 바로 호모 에코노미쿠스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닌 공동체적 지혜를 갖는 대신 자신의 개별 욕구에만 몰두하는 새로운 인류를 말한다.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상대적 박탈감으로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되면 곧바로 호모 미저러블리스(homo miserabilis)가 된다. 욕구에 기초한 삶은 너무도 쉽게 비참한 삶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욕구에는 제한이 없어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충족감을 줄 수 있지만, 욕구는 그렇지 않다. 언제나 부족하고 결핍만 느끼게 한다. 만약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욕구만 들여다본다면 과연 공동체는 지속할 수 있을까?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호모 미저러블리스가 사회의 다수가 된다면 그 공동체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이것이 신이 인간에게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못 보게 하신 까닭일지 모른다. 미카엘 천사도 말했듯이 인간이 서로 어울려 같이 살기를 바라셨기에 신은 욕구를 감추고 사랑을 주신 것이리라. 미카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신은 인간이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각자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드러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서로 합일하여 살기를 바라셨기에 모두에게 필요한 것을 각자의 마음에 드러내셨습니다.” 함께 살기 위해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다.

 

박혜영 인하대·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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