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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모순 
  • 정찬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8.11.0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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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정찬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모순(矛盾)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창과 방패인데, 앞뒤가 서로 어긋나 맞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돼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보면 이러한 모순되는 말, 행동, 제도 등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특히 정치인 및 공직자 등이 모순되는 말과 행동을 하고 모순되는 제도 등을 시행하게 되면 국민의 정당 및 정부에 대한 신뢰는 크게 추락할 것이다. 똑같은 행동에서 남이 하면 그렇게 비난하던 사람이 자기의 그러한 행동은 괴변(怪辯)으로 합리화한다. 속칭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신문 등에 많이 나타난다. 이러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층의 주류를 형성하면 우리나라는 대내외적으로 크게 취약한 국가가 될 것이다. 개인 간에도 모순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기피하는 현상과 같을 것으로 본다.

법률(제도) 등에서도 모순되는 규정이 있는데, 이러한 규정은 정쟁의 대상이 될 여지가 없고 빨리 정부와 국회에서 바로잡아야 법의 권위와 실효성이 확보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러한 모순되는 규정의 개정이 정쟁의 대상이 돼 개정되지 않고 법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상법은 주식회사의 ‘이사회’에 업무집행권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이사회’에 이사회의 구성원인 이사의 직무집행에 대한 감독권을 부여하고 있다(상법 제393조 제1항, 제2항). 업무집행에 대한 감독기관은 업무집행기관과는 분리되어야 하는데, 동일한 기관에 업무집행권과 업무감독권을 부여하고 있으니(즉, 자기감독 또는 셀프감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니) 업무집행에 대한 효율성이 있는 감독이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사실상 감독기관이 없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업무집행에 대한 감사기관을 종래에는 감사(監事)만으로 규정했는데(상법 제409조, 제412조), IMF 이후 개정상법에서는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인 대규모 상장주식회사의 경우에는 감사(監事) 대신에 이사회 내 위원회(상법 제393조의 2)의 하나인 감사위원회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고(상법 제542조의 11 제1항) 이러한 감사위원회가  이사의 직무집행을 감사하도록 하고 있다(상법 제415조의 2 제7항, 제412조 제1항). 그런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하는데 이러한 이사회에 참가한 이사(사외이사 포함)가 다시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감사위원회로 하여금 이사의 직무집행을 감사하도록 하는 것은 자기감사(또는 셀프감사)가 돼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상법상 업무집행기관(집행임원)이 별도로 있지 않은 주식회사가 감사(監事) 대신에 감사위원회를 두는 것은 종래의 감사(監事)보다도 감사기관의 독립성이 더 취약하게 된다.  

또한 이처럼 취약한 감사기관인 감사위원회를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인 대규모 상장회사의 경우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는 것은 이러한 모순을 가중하는 것이다. 종래의 주식회사 이사회의 주기능이 업무집행이었으나, 대규모 상장회사의 이사회를 사외이사 중심으로 해(상법 제542조의 8 제1항 단서) 그 주기능을 업무집행에 대한 감독에 두었다면 당연히 감독기관(이사회)과 분리된 업무집행기관(집행임원)을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는 것이 이러한 모순을 피할 수 있다.

또한 분리된 업무집행기관(집행임원)의 존재를 전제로 한 감독기관으로서의 이사회에서만 이사회 내 위원회의 하나인 감사위원회가 의미가 있고 자기(셀프)감사의 모순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순을 피하고자 하는 상법의 개정이 정쟁의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인들의 극단적인 대립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업무집행기관에 대한 감독과 감사를 유명무실화 시키자는 것과 같다.

개인이 모순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하는 것은 치료를 필요로 하나, 이를 의식하면서 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그러한 자에게 불이익을 주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들은 절대로 공직에 취임할 수 없게 해야 할 것이다.  법률(제도)이 모순되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이에 참여하는 모든 자가 솔직해야 하고, 그 법률(제도)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어야 하며, 자기가 속한 단체나 특정한 이념 등에 편향되지 말고  대의(국가 또는 국민의 이익 등)를 위한다는 사명감이 있을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본다.

 위와 같이 모순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대폭 줄어들고 또한 모순되는 제도(법률) 등이 시정되면 우리나라는 신뢰가 깊어지고 훨씬 밝고 발전하는 국가가 될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모든 선생님이 앞장서서 실천하고 학생들을 교육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정찬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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