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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성과 그 본질, 근대학문의 영원한 테마와 현상학
주관성과 그 본질, 근대학문의 영원한 테마와 현상학
  • 김건우 독일 빌레펠트대 박사과정·사회학
  • 승인 2018.11.19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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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은 지금_ 후설의 날 Husserl-Arbeitstage 2018 대회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쾰른 대학에서 “후설의 날 Husserl-Arbeitstage 2018”이 열렸다. 벨기에의 루벵대학, 뉴욕의 뉴스쿨, 파리의 후설 아카이브와 더불어 독일은 프라이부르크와 쾰른에 후설 아카이브를 갖고 있다. 쾰른의 후설 아카이브는 올 4월에 후설 국제학술대회인 ‘후설과 실존의 사유’를 개최한 바 있다. 

쾰른대학 철학과와 같은 과의 후설 아카이브 그리고 독일 현상학회가 주관한 올해 대회에서는 ‘주관성과 그 본질’이라는 주제로 24개의 발표가 있었다. 각각의 발표는 1. 인격, 에고, 아비투스, 2. 신체의식과 자연, 3. 의식구성과 발생, 4. 가치, 규범 그리고 책임, 5. 실존과 윤리, 6. 상호주관성과 간학문적 실천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후설강연’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조강연인 프라하 대학 한스 라이너 제프 교수의 ‘절대적인 것에 관하여: 극단의 현상학에 관한 스케치’로 대회를 시작해서, 미국 매버릭 칼리지 조지 헤퍼난 교수의 ‘보편적인 자기성찰: 현상학의 경계문제로서 실존적이고 윤리적인 질문을 다루는데 있어서 후설의 방법들’이란 강연으로 대회가 마무리되었다. 

후설 철학의 철저함과 현상학

강연의 경우 둘째 날 있었던 「깊은 발생: 후설의 C-초고에서의 복잡성에 관하여」가 주목을 끌었다. 후설 현상학의 특유의 철저함과 대상을 끝까지 파고드는 엄밀함과 집요함은 그 자체로 후설의 작업에도 드러난다. 이 발표는 그런 후설 현상학의 특징을 정확하게 정리하면서 그의 철학이 보여주는 미완은 불완전성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후설의 후기 작업인 이 초고는 주체의 의식 활동이 보여주는 구성의 과정이 시간구성의 문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시간을 체험하는 주체로서 나의 구체적인 시간이 어떻게 객관적이고 공통의 시간으로 이행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후설 현상학을 포괄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기하는 것이다.

종합과 구성의 활동은 완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루만이 후설의 ‘아름다운 메타포’라고 칭했던 ‘지평’(Horizont)처럼 계속 펼쳐지고, 도달할 수 없게 전개되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후설이 경험의 조건을 문제 삼았던 것은 그가 칸트 철학과 대결한 지점이기도 하고, 데카르트의 주체 철학을 간단히 폐기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더구나 발표자인 율리아 얀센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루벵대학은 루벵 후설 아카이브에 기반한 후설 전집비판본인 『후설리아나 Husserliana』를 1950년부터 2008년까지 전 42권으로 발행했기 때문에, 그녀의 발표는 오늘날 후설 현상학의 위치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번 학회를 주관한 쾰른 대학의 디이터 로마르 교수 역시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발행된 『후설리아나 자료들 Materialien』을 편집하고 『Denken ohne Sprache』 외 여러 권의 후설 현상학에 관한 저서들을 갖고 있는 중요한 연구자다. 

모든 발표나 강의에서 후설의 현상학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가 소환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이데거를 의도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질문시간에는 어김없이 하이데거가 소환되기 때문에 결국 ‘후설-하이데거’는 마치 ‘존재와 시간’처럼 그렇게 서로를 구속하고 20세기 이후의 사유경험의 조건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아가 19세기 후반의 신칸트학파까지 자연스럽게 논의의 대상이 되면서, 이곳은 2018년이 아니라, 1918년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겠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특히 후설과 하이데거 그리고 헤겔을 경유한 일련의 프랑스 철학자들이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라는 철학적 사유의 운동을 정초한 이래, 현상학이나 주체 철학이 극복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주체, 인간성, 실존, 인식과 인지, 초월, 의식, 주체성/주관성 등과 같은 개념들에 천착하는 것은 ‘반시대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개념들은 언어의 차원에서 오늘날 완전히 우리의 일상 언어에 들어와 있다. 철학의 운명이 ‘반시대적인 철학’에 있는 것이라면 현상학도 예외일 수는 없다. 어떤 급진적인 철학과 사유라 하더라도 윤리, 책임, 가치, 상호주관성, 인격 등과 같은 낡은 말들을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완전한 개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은 물론 자연과학까지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다. 발표된 주제들의 반시대성에 냉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과 주체를 둘러싼 문제들에 대한 탐구는 꼭 현상학적인 환원이나 초월적 주체의 종합 등과 같은 방법이 아니더라도 현상학이 여전히 그 철저함을 견지해야 한다는 요청을 후설 현상학 연구로 하고 있구나 싶었다. 인간이 철학의 대상인 한 현상학은 아무리 낡은 것이어도 앞으로도 낡은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현상학은 소진되지 않는 미래의 철학일까. 적어도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에게 요구되는 윤리적인 요청에 현상학은 여전히 철학적인 방법과 개념들로 직접 대면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였다.

에드문드 후설(Edmund Husserl)
에드문드 후설(Edmund Husserl)

주관성의 문제와 사회학

이런 이유에서 이번 대회의 테마가 ‘주관성과 그 본질’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회는 현상학을 “주관성의 기본학” Grundlagenwissenschaft der Subjektivitat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베버는 주체성/주관성에 대한 탐구가 근대학문이 마주한 가장 어려운 난제 중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사회학은 오롯이 근대인의 주관성을 이해하고, 해명하기 위한 학문이라고 말해도 좋다. 주지하다시피 후설의 생활세계 개념을 근대사회에 관한 이론의 중요한 자원으로 삼는 하버마스는 후설의 ‘에고중심적인 의식’을 상호주관성으로 전환하는 생활세계 개념으로 확장했다. 소통적인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공통의 지평으로서 생활세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는 슈츠 이래로 사회학에서 상호주관성의 문제가 현상학적인 전통의 기반 위에서 중요한 이론적인 문제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루만에게 후설의 주체 이론은 ‘초월적인 에고학’ transzendentale Egologie이었다. 그는 1995년 「근대학문들과 현상학」이라는 제목의 후설 강연에서 주체, 특히 후설이 강조하는 초월적인 주체의 사회적 조건이 변했다고 하면서도 후설의 의식과 현상의 구별이 오늘날은 자기지시와 타자지시로 전환될 수 있고, 그렇게 사회학으로, 인지과학으로, 경험적 인식론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다. 세계는 닫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열리는 개방성과 자기제약의 통일성으로서 특별한 지평이 된다. 의미와 세계를 구성하는 차원이 사회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슈츠나 하버마스, 루만에게서 보듯이 후설의 현상학은 철지난 구식의 주체 철학으로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사회의 구성과 작동을 설명하는 중요한 사유의 자원으로서 사회학적으로 전환된다. 어떤 과감한 사회이론이라도 세계의 현상학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이것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열린 문제가 남는다.

반시대성의 역설

끝에 도달할 수 없는 줄 알면서도 하나의 연구대상을 계속 밀고 나가는 그 철저함과 열정 앞에 현상학적 테마들이 갖는 ‘반시대성’은 오히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반시대성이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것, 시간 앞에 한없이 부스러지는 것, 기억조차 되지 않을 것을 학문의 이름으로 요구하는 우리 시대 전체에 대해 ‘판단정지’할 것을 학적으로 요구하는 것 같았다. 넓게 파야 깊게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깊게 파려다보니 불가피하게 넓어진다는 것이 학문적인 순수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후설의 진단처럼 ‘유럽학문의 위기’가 아니라 학문의 토대 자체가 위기인 이 시대에 꼭 초월적 현상학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김건우 독일 빌레펠트대 박사과정·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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