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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추구사회와 한국경제
지대추구사회와 한국경제
  •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 승인 2018.12.2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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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경제학을 체계화한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원래 도덕 철학자 였다. “국부론”을 출간하기 전 그는 이미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인 "도덕 감성론"을 저술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인간의 본성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에 있지만 동시에 남을 생각하는 이타심(sympathy)도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질서와 시장경제체제가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과 같은 이기적인 인간만 있다면 시장경제체제는 유지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애덤 스미스 이후 공공선택이론의 창시자이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도 자신들의 이익(rent)을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소비자와 생산자 등 개별 경제주체의 행동을 분석하는 전통적인 경제학 방법론에서 벗어나 그룹의 행태를 분석하는 정치학적 접근방법을 도입했다. 정부 관료 역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으로 가정하고 정부의 규모를 줄일 것을 제안한다. 국제통화기금의 수석부총재를 역임한 앤 크루거(Anne Krueger) 교수는 특정 이익집단이 로비를 통해 관료들을 포획(capture)하고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든다고 했으며 이를 지대추구사회(rent seeking society)로 표현했다.  

이익집단이 로비를 통해 관료들을 포획(capture)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제로를 만드는 것을
지대추구사회(seeking society)로 표현했다.

개인이나 그룹이 이타심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강하게 추구할 경우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경제학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개인의 과도한 이익추구가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범할 경우 이를 외부성(externality)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경우 정부규제를 통해 시장의 실패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공공선택이론에서는 이익집단의 로비로 관료가 포획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을 줄이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카고 대학의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Ronald Coase)는 유명한 코즈정리(Coase theorem)에서 비록 외부성으로 시장이 실패해도 정부의 개입없이 이해 당사자 간의 협상에 의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MIT 대학의 대런 에쓰모글루(Daron Acemoglu)교수는 이익집단의 부작용을 경계한다. 저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이익집단이 잘못된 제도를 구축하게 만들어 결국 빈곤 국가로 남아 있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는 제도의 이익이 국민 모두에게 귀속되는 포용적 제도(inclusive institution)와 특정 이익집단에만 혜택을 주는 착취적 제도(extractive institution)로 구분하고 특정 이익집단의 행위로 착취적 제도가 만들어지면 그 나라는 빈곤 국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지대추구사회로 가고 있다. 에쓰모글루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한국은 빈곤 국가에서 부자나라로 성장한 세계 역사상 몇 안 되는 나라 중의 하나에 속한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조선, 철강, 자동차, 전자 등 주력산업의 중국이전으로 저성장국면이 지속되자 개인과 집단의 지대추구행위가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강해지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강조한 이타심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이 국가나 공공의 이익보다 우선시 되고 있다. 특정 이익집단의 로비로 제도 역시 포용적 제도보다 착취적 제도가 구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달리 고성장시기에 연금과 복지체제를 충분히 구축해 놓지 않아 대부분 국민들의 노후소득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성장, 고령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그동안은 성장률이 높고 일자리가 많아 이익집단의 지대추구행위가 강하지 않았으나 앞으로는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지대추구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지대추구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한국경제의 해법은 무엇일까. 성장률을 높이고 연금과 복지체제를 확충해서 지대추구행위가 약해지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애덤 스미스의 이타심으로 공동의 선을 이룰 것인가.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포스트 케인시안들의 주장대로 강력한 정부개입이 필요한가. 주류경제학인 합리적 기대학파와 같이 정부개입을 줄이고 시장경제체제를 강화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치학적 해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가. 한국경제의 해법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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