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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말말]글쓰기가 어려운 '당신'을 위한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 특강
[저자의 말말말]글쓰기가 어려운 '당신'을 위한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 특강
  • 전세화
  • 승인 2019.01.02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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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글쓰기의 고통을 발설하는 건 문인들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인간은 이야기 없인 살 수 없는 ‘호모 픽투스Homo fictus' 즉, ’이야기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용할 양식인 이야기를 주무르는 사람들에게 그런 정도의 특권이 없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나는 작가들의 그런 특권을 인정하면서도 ’글쓰기의 고통‘ 담론이 유발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주목한다. ’글쓰기의 고통‘ 담론은 인터뷰 등과 같은 문인 관련 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에 문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그렇잖아도 글쓰기에 자신이 없는 보통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이 말하는 ’글쓰기의 고통‘에 속지 마라. 그런 고통의 토로에 속아넘어가 자신이 글쓰기를 한사코 피하는 이유의 면죄부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글쓰기의 고통은 과욕에서 비롯된다. 처음부터 자신이 모든 걸 다 만들어내겠다니, 그 얼마나 무모한 욕심인가. 중요한 것은 ’창조는 편집‘이라는 것을 흔쾌히 인정하는 마음이다. 눈높이를 낮추면 ’글쓰기의 고통‘은 ’글쓰기의 즐거움‘이 된다. 전문가들의 전문적 글쓰기는 논문집이나 자기들만의 소통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진다. 보통 사람이 그 근처에 얼씬거릴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는 대중적 글쓰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중적 글쓰기 시장에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크지 않으며, 일상적 삶의 소재로 글쓰기를 한다면 보통 사람이 오히려 전문가다. ‘아는 게 없는 데 쓰긴 뭘 써?’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아는 게 많지 않으므로 오히려 유리한 처지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말이다. 자신의 글이 모두가 아는 너무나 뻔한 내용인지라 어렵지 않다고 자백하다니, 이게 웬말인가. ‘지식의 저주’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비교 우위를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90만 부가 팔렸다는 『82년생 김지영』에 무슨 어려운 이야기가 있는가? 글쓰기 시장에선 ‘지식’보다 센 게 ‘공감’이며, 어떤 분야에서 공감의 최고 전문가는 바로 당신일 수 있다.

 뻔한 말이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왕도나 지름길이나 요령도 없다. 평소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해보는 버릇을 길러야 한다. 독서의 생활화가 꼭 필요하다. 독서의 생활화를 위해선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책의 종류와 성격은 물론 자신의 선호도와 수준에 따른 차별적 독서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 평소 사고 훈련도 해야 한다. 무슨 글이건 글을 읽을 때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생각해보고 판단해보는 습관을 갖는 게 좋다. 생각은 ‘고통’인 동시에 ‘쾌락’이다. 쾌락 쪽으로 끌고 가자. 그리고 나서 써봐야 한다. 초기 훈련에선 ‘질’보다는 ‘양’이다. 처음부터 질 따질 겨를이 없다.

 초심자가 비문非文을 피하기 위해 일종의 훈련 과정으로 단문을 쓰는 건 권할 만하다. 소셜미디어 시대를 맞아 이른바 ‘세 줄 요약’이 일상화되고 있다 하니, 굳이 권할 필요도 업겠지만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의 시대다. 관심 경제란 세인의 관심이나 주목을 받는 것이 경제적 tfvo의 주요 변수가 된 경제를 말한다. 우리는 바야흐로 "날 좀 봐달라"고 몸부림쳐야만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는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글쓰기도 그런 몸부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독자의 관심을 얻으려는 글의 몸부림은 주로 제목 달기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전문 작가들은 제목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데에 인색하다. 자존심 때문이다. 어떤 작가가 “제목 덕분에 잘 팔렸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겠는가. 그래서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1968은 “나는 제목에 집착한 적이 없다. 이름을 뭐라 붙이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과 정반대되는 주장이었다. 헤밍웨이는 책을 끝낸 후 제목을 100여 가지나 써보면서 고심했고,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아예 ’제목 짓기용‘ 노트를 따로 갖고 다녔으며, 폴 오스터는 제목을 생각하는 데만 몇 년씩 보내기도 했다.


강준만 지음, 『글쓰기가 뭐라고』(인물과 사상사, 2018.1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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