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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정의 마지막 질문
인생 여정의 마지막 질문
  • 김동배 연세대 명예교수 · 사회복지대학원
  • 승인 2019.03.0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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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최근 웰다잉(well-dying)이 세간의 관심을 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일명 ‘웰다잉법’도 제정된 지 1년이 되었다. 이 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연명의료를 중단하여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법이 나와야 할 만큼 이제 개인의 죽음은 사회문제가 되었다. 사실 어떻게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느냐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나는 최근 발족한 사단법인 웰다잉시민운동에 교육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웰다잉 이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나는 장인어른이 4년 전에, 아버님이 2년 전에 별세하시기까지의 투병생활을 지켜보면서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임 시절 대학원에서 ‘죽음과 유가족(Death & Bereavement)'이라는 과목을 여러 번 강의하였지만 막상 부모님이 죽음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죽음의 공포나 신체적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아버님의 경우 6년여의 병상생활(그건 생활이 아니라 생존에 불과했다!)을 자기통제력 없이 거의 의존상태에서 보내는 것을 목도하면서 나에게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인생 여정의 마지막에 고통과 불편함을 비켜 갈 수는 없다 할지라도 삶의 한계성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수용하면서 감사함으로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길은 길든 짧든 인간 모두가 마지막으로 거쳐 가는 길이지만, 이렇게 걸어가면 될 거라고 얘기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호스피스 완화의학이 중요한 해답을 줄 수 있지만 그것도 완벽하지는 않다.

발달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이 제시한 생성감(generativity)이 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30대 후반 중년기 이후 노년이 되기 전까지 인간은 ‘생성감’이냐 ‘침체감’이냐의 갈림길에 직면한다고 보았다. 생성감이란 원래 후세대를 양육하고 지도하는 일에서 느끼는 보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내가 살아오면서 후손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뭔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냈다는 자부심을 포함한다. 세상을 위해 내가 어떤 형식으로든 기여했다는 느낌이다. 이 생성감은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서도 유효하게 작동할 것이다. 

한편, 죽음에 관한 질문은 종교에서 더 의미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서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 하였다. 불교에서는 신행의 근본 방식을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 하여 자비와 내가 한 몸처럼 되는 것을 마지막 단계로 보고 있다.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는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과거에 내가 실행했던 베풂, 나눔, 섬김에 관한 기억은 질곡의 시간에 조금은 위로를 줄 수 있으리라. 모든 종교는 내세의 희망을 얘기하는데, 내세는 오직 희생적 사랑과 자비를 베푼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나는 퇴임 몇 년 전에 사회복지학 전공 학자들과 함께 ‘영성과 사회복지학회’를 만들었다. 인성이 메마른 현대사회에서 영성민감형(spirituality-sensitive) 사회복지사를 육성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특히 노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는 노쇠의 특징인 4D(disease,질병; disability,장애; dementia,치매; dependency,의존)를 영성의 요소인 4C(connectedness,연결; compassion,긍휼; creativity,창의; contribution,기여)로 대체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필요가 있다. 외롭고 비탄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영성훈련이 꼭 필요하다. 젊어서부터 영성이 풍부한 삶을 살아왔다면 인생이 마무리 되는 시점에 신의 은총을 받아 다소 평안함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김동배  연세대 명예교수 · 사회복지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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