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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의 두 개의 섬
르 클레지오의 두 개의 섬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 · 불문학
  • 승인 2019.04.0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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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는 섬을 배경으로 두 편의 소설을 썼다. 하나는 아프리카의 모리셔스 섬이 공간적 배경인 『검역』이다. 다른 하나는 제주의 우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폭풍우』이다. 두 개의 섬은 아프리카의 인도양과 제주 앞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만큼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속해 있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두 소설 모두 허구적 체험이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모리셔스 섬을 조상들의 땅이자 정신적 고향으로 간주하며 『검역』이라는 소설로 그려냈고, 제주와 해녀, 제주 바다에 대한 애정과 그곳에서의 강렬한 인상을 『폭풍우』라는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제주 우도의 해녀들에게”라는 헌사를 붙였다. 말하자면 두 개의 섬은 작가의 직접적인 체험 혹은 정체성과 관련된 기억 속에서 태어났고 아름다운 자연과 수탈의 역사라는 공통점이 맞물려 깊은 애정의 대상이 되었다.

책의 제목이자 40일을 뜻하는 『검역La Quarantaine』은 타지에서 온 배가 하역하기 전에 40일을 항구에서 정박했던 데서 비롯된 단어인데, 소설의 주인공 역시 최종 목적지인 모리셔스 섬으로 가기 전에 검역을 위해 인근의 플레이트 섬에 머물게 된다. 주인공 레옹은 조상들의 땅이지만 부모 세대의 일로 추방되어 유목민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마침내 모리셔스 섬을 목전에 두게 되었지만, 검역이라는 시련 속에서 인근의 플레이트와 가브리엘 섬에 강제 체류하며 죽음의 위기를 겪다가 ‘수르야바티’라는 이국의 소녀를 만나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이야기의 골자이다.

작가는 제주의 우도가 배경이 된 『폭풍우』에서도, 등장인물의 여행 목적과 체류의 방식은 다르지만, 상당히 유사한 지향점을 보여주고 있다. 종군기자인 필립 키요는 베트남 전쟁의 기억과 정신적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메리 송’이라는 여자를 만나 우도에 정착한다. 키요는 우도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섬을 떠났다가 30년이 지나 돌아온다. 그는 “섬이란 죽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며 죽기 위해 우도를 다시 찾는다. 그곳에서 13세의 혼혈 소녀 ‘준’을 만나 때로는 아버지로 때로는 연인으로 관계를 이어가며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독자들은 이 소설에서 서구인들이 문학을 통해 ‘이국정서’를 다루는 방식에 주목하게 된다. 또한 “타인의 시선은 객관적일 수 있는가?” 나아가 “이방인이 특히 서구인이 동양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과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사실 서구인들이 문학을 통해 다루어온 이국정서라는 주제는 여행과 대항해, 식민주의와 맞닿아 있다. 이국의 낯선 풍경들과 문화, 신비한 매력을 지닌 동양의 여인 등이 19세기까지 이어온 이국정서를 다룬 문학의 단골 소재였다. 빅토르 세갈렌과 폴 고갱의 타히티, 피에르 로티의 이스탄불과 그들이 그곳에서 만난 여인들의 이야기는 서구인들이 동양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이국정서의 단면을 보여준다. 즉 그들은 자기 내부에 ‘없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 만들어내려 했다. ‘이국정서’ 연구자인 장 마르크 무라 역시 이국정서를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이자 자기 자신에 이르고 자신을 알기 위한 수단”으로 보았다. 르 클레지오의 주인공들이 『검역』의 수르야바티와 『폭풍우』의 메리 송 혹은 ‘준’에게 갖는 기대와 그녀들에 대해 만들어낸 이미지도 그 같은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르 클레지오가 소설에서 다룬 제주의 자연과 풍경은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솔직히 말해 필립 키요가 만난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는 낯설고 때로는 불편한 감정으로까지 이어졌다. 베트남 전쟁의 상흔, 45세 차이의 ‘준’과 나누는 우정 이상의 감정, 약국 여자와의 관계 등은 ‘우리로서는’ 공감하기 쉽지 않다. ‘지한파’ 르 클레지오의 우리에 대한 관심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려는 의도는 전혀 없고 서구인들의 동양에 대한 이해와 수용의 방식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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