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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스스로 중심에 서야
대학이 스스로 중심에 서야
  • 교수신문
  • 승인 2019.05.1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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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교수
민경찬 교수

 

우리 대학들은 요즈음 신이 날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등록금은 10여년 동결되어 있고, 시간강사법, 대입 정시선발 비중 30%,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 및 학령인구 급감과 연계된 대학구조개혁, 총장 선거제도 등은 대학들을 현안에 급급하도록 묶어두고 있다. 긴 안목으로 미래를 치밀하게 설계할 마음의 여유를 찾기 어렵게 한다. 
그런데 이 모든 대학 관련 내용들은 교육부 중심의 정부가 주도하는 이슈들이다. 대학들은 정부의 관리 대상인 것이고, 대학들은 수동적인 위치에 서는 일에 별 부담 없이(?) 익숙해져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가급적 많은 정부 재정지원 사업에 선정되고, 국내외적 대학 평가에서 순위를 올리는 데 에너지를 다 소진하는 듯하다. 우리 모두는 사실 이를 대학 책임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때문인지, ‘대학들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대학들이 추구하는 목표와대학 총장 4년의 업적은 무엇이어야 하나?’, ‘미래의 대학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 등의 질문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요즈음은 ‘대학의 자율권’이라는 용어 자체도 듣기 어렵다. 정부가 무섭기는 하다. 최근 ‘정시 선발 30% 확대’ 정책을 따르지 않은 대학은 ‘괘씸죄’로 정부 지원사업에서 탈락시켰다는 보도가 있다.
지금 세계는 매우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AI, 로봇, 빅 데이터 등이 주도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는 기업이 가장 빠르게 적응해나가는 것 같다. AI를 도입한 세계 기업 수만 해도 지난 4년 간 270% 증가하였다고 한다. 우리 기업들은 이미 채용과정에서도 ‘언어논리, 수리논리, 추리, 시각적사고 등’을 평가하며, 미래시대에 요구되는 기본 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들은 더 나아가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모두의 공존을 위한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철학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정부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정부는 지난 달 2022년까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바이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주요 산업분야에서 15만8000명의 인재를 양성하기로 했다. 또한 대학교육과 산업을 긴밀히 연결시키는 ‘LINC+ 사업’을 추진해왔고, 대학별로 비전을 세우며, 새로운 시대를 대비시키는 ‘대학 기본역량 진단평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업과 정부의 노력이 대학과 어떻게 의미 있는 조화를 이루며 생산성을 높여 가느냐다. 대학과 기업은 변화의 속도차이를 어떻게 좁혀나갈지에 초점을 맞추고, 대학도 기업처럼 사회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철학, 원칙, 방향을 세우고 긴 호흡으로 지켜나가는 일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대학들은 공동으로 정부 정책들의 방향과 성과를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지난 3월 정부의 AI대학원 지원 사업에 신청했다가 탈락한 대학 중 독자적으로 AI대학원을 추진하는 곳이 없다고 한다. 이는 대학 자체적 비전이 없음을 의미하며, ‘부끄러운’ 일이다.
정부와 대학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배워야 한다. 1980년대말 몬트리올대는 당시 ‘찬밥’이었던 AI에 비전을 세웠고, 정부는 이 지역에 30년간 단기적 성과를 요구하지 않고 묵묵히 지원해주었으며, 현재 세계의 석학과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AI의 성지를 만들어냈다. 국민들이 대학에 어느 정도라도 세금으로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에게는 개별 대학 유지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공한 기업인이 한 대학에 와서 “나는 미래와 경쟁한다. 세상의 변화에 맞춰 자신도 끊임없이 변신해야 한다’고 하였다. 대학이 서야 할 위치다. 정부와 기업에 이끌리기보다, 대학 스스로 중심에 서서, 비전을 세우며 미래를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여기에서 대학은 내공을 쌓으며, 국가의 생산성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고,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기대를 얻게 된다. 그 결과는 결국 대학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선순환의 구도를 새롭게 그려야 할 때다.

민경찬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과실연 명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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