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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와 대화의 대학
환대와 대화의 대학
  • 박홍규 논설위원
  • 승인 2003.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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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새 학기 첫 시간을 맞으면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반갑게 환대의 첫 인사를 하며 한 학기 수업에 대한 계획을 함께 이야기하노라면 가슴이 벅차다.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하는 친구 집의 즐거운 대화처럼 수업을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수업은 쉽지 않다. 학생들은 여전히 대화에 익숙하지 못하다. 어쩌면 내가 잘못 이끄는 탓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학기가 끝나고 평가를 하게 되면 가슴이 쓰리다. 언제나 감점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죽은 일리치가 대학을 환대의 문화, 대화의 문화가 아니라 시험의 문화, 감점의 문화라고 부른 것을 실감한다. 조직화된 대학은 물론 모든 제도교육을 혐오한 그도 만년에는 대학에서 가르쳤지만 그 수업은 언제나 축제의 공기로 가득 찬, 무제한의 자유로운 형식과 평등이 지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수업을 만들기란 여간 어렵지 않아 언제나 일리치에 경탄한다.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소크라테스였으리라.  
그는 평생 현대 산업사회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하고자 한 사상가였다는 점에서도 우리 시대의 소크라테스였다. 특히 학교는 교육에 장애물이고, 병원은 건강에 장애물이며, 자동차는 이동에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근대화가 빈곤을 없애기는커녕 빈곤을 근대화하며, 국가 교육에 의해 인간의 언어나 생활의 능력은 쇠퇴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현대의 그 모든 것은 인간에 고유한 환대와 대화의 문화에 반대되는 것으로 비판됐다.
환대란 권위와 제도 속에서는 불가능하다. 일리치는 어려서부터 고향 없이 세상을 떠돌며 모든 권위와 제도에 저항하는 삶을 살았다. 신부로서 로마 교황청을 비판했다가 파문 당하고 청빈한 생활 속에서 무한한 자유와 평등만이 지배하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 이 세상 모든 일에 대해 가장 근원적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여 현실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도발하면서도 결코 유머를 잃지 않은 그는 르네상스적 인간의 전형이기도 했다. 10년 전 암에 걸리자 그는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스스로 아편을 먹으면서 열심히 가르치고 일하다가 죽었다. 
이제 일리치도, 프레이리도 죽었다. 프레이리 역시 사육과 조종의 교육을 부정하고 자유와 해방의 실천을 위한 교육을 주장했다. 그러나 일리치는 교육이란 민중을 유아로 만들기 위한 가장 이단적인 근대 기구라고 하면서 부정하고, 일상생활의 상호형성작용 속의 자율적인 배움을 주장했다. 따라서 대학이란 조직 속에서 그런 배움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일리치 자신 대학에서 가르친 것 자체가 역설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래도 일리치처럼 대학을 환대의 문화로 만들고자 하는 꿈을 여전히 갖는다. 물론 언제나 허망한 꿈처럼 깨지만 그래도 꿈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 

박홍규 논설위원 영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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