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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자연과학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자연과학이 있었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12.1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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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7월 18일 일본 고배 옆 작은 마을인 아카시에서 10인승 요트 두 대가 한국을 향해서 출항한다. 일본 내만의 구루시마 해협을 지나 히로시마를 거치고 일본 내만의 서쪽 끝, 시모노세키 항 진입로에 들어설때는 이미 밤이었다. 야간 항해는 매우 위험하여 어지간한 요티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 항해이지만 시모노세키 해협의 물때를 맞추기 위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약 40분간의 시모노세키 해협의 와류를 타고 관몬대교밑을 지나 시모노세키항에 정박을 하였다. 다음날 3미터의 파도가 치는 현해탄을 작은 요트를 타고 대마도를 지나 통영으로 입항하였다.

 원고를 요청받았을 때 제일먼저 떠오르는 것이 임진왜란당시 일본의 수군을 지휘했던 구루시마 해적들의 길을 따라 일본에서 출발하여 경상도로 들어오는 뱃길을 경험하기 위해 행했던 기억이었다.

 필자는 자연과학의 코어라 할 수 있는 수학을 전공하고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철저한 사이언티스트였다. 수학의 응용분야인 퍼지이론과 암호이론을 주 연구분야로 진행하였던 수학자가 임진왜란시 일본 해적의 길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 행한 무모함은 문화적 동질성에 대한 의구심과 우리 전통 과학기술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하였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해있더라고 사피엔스의 발전성은 유사하게 진행되는 경향에 의하면 우리가 배우고 사용하면서 철저하게 신봉하는 사이언스가 유독 서양만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왜 우리는 수학과 화학, 생물, 물리 등 자연과학의 대부분을 서양의 것에 의존할까? 서양이 사이언스의 철학을 받아들일 때 아시아에서는 뭘 하고 있었나?  

 우리수학과 우리과학의 뿌리를 연구하기로 마음먹고 연구를 진행 하였다. 그러던 중 뜻밖의 사실을 찾게 되었다. 전라도 화순의 산골마을인 동복에서 1800년 초에 흐르는 냇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을 품어 올리는 자동양수기를 정밀하게 설계한 설계도가 제작이 되었고 동리에서 홍대용의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를 제작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혼천의를 제작한 나경적의 조상이 거북선 제작책임자인 나대용장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수학이 설계도작성과 여러 기기 제작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이에 필자는 당시의 수학을 이용하여 신화화된 거북선의 실체와 화순지역에서 제작된 혼천의를 분석하기로 하였다. 그 일환으로 진도 울돌목을 요트를 이용하여 물살을 해쳐보았고 일본 그루시마 해적의 길을 다녀와 보았다. 진도대첩의 승리를 시모노세키와 구루시마의 물살에 익숙한 일본 해적이 약 15분이면 끝나는 울돌목의 물살에 당황하여 패배하였다는 것은 우리 과학의 우수함을 인정하기 싫은 외부인의 핑계이지 않을까 싶다. 

 지방대학의 박사학위로 할 수 있는 것은 지방대학에서 강의하는 것에 침잠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나로 하여금 과감하게 수학의 역사와 사용례를 살필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대학에 자리를 잡기위해 SCI급 논문에 급급하고 국제저널에 개제하기 위해 연구의 모든 방향을 잡아야 하는 현 대학의 현실에서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지원사업은 단물같이 다가왔으며 우리의 수학은 어떠하였을까를 풀어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후 보다 연구를 확장하여 화순의 도량형과 혼천의 제작에 사용된 전통수학을 찾기로 하였으며 거북선 설계 및 제작과정에서 전통수학의 쓰임을 분석하고 있다. 우리의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는 달콤한 미사어구보다는 실질적으로 각 지역에서 우리 것을 연구할 수 있는 지원이 이공과 인문의 학문적 경계를 벗어나고 중앙집중적 지원풍토를 탈피한다면 지역에서 연구하는 학자들도 튼실한 세계화를 이루리라 본다. 

 

임광철
조선대학교 기초과학연구원 연구교수
암호학으로 조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통수학 및 전통과학에 대한 연구와 빅데이터 및 암호이론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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