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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지하드 VS 맥월드』(벤자민 바버 지음, 문화디자인 刊, 2003)
논쟁서평 : 『지하드 VS 맥월드』(벤자민 바버 지음, 문화디자인 刊, 2003)
  • 김성곤 서울대
  • 승인 2003.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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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내부의 대립에 대한 매혹적인 통찰…맥월드의 긍정성 간과 아쉬워

김성곤 / 서울대·영문학

9·11 사태를 수년 전에 미리 예고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벤자민 바버의 '지하드 VS 맥월드'는 냉전시대 이후 세계지도를 뛰어난 통찰력으로 조감하고 있는 주목할만한 책이다. 과연 바버의 책을 읽고있노라면, 9·11 사태가 왜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비극적 사건이 이 시대에 어떠한 상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 깨닫고 새삼 스스로의 좌표를 돌이켜보게 된다.

바버는 냉전시대 이후 세계는 기독교문명 대 이슬람문명(또는 유교문명)간의 종교적 충돌이 아니라, 인류문명 내부에서 벌어지는 지하드와 맥월드의 문화적 충돌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전자를 주장했던 헌팅턴의 이론은 상당부분 그 유효성을 상실한다. 냉전 이후 세계지도 개편에 따른 서구 헤게모니의 상실을 우려하는 듯한 헌팅턴의 동서문명 충돌이론보다는, 근대화와 세계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성된 두 계층과 두 가치관의 갈등에 입각한 바버의 이론이 훨씬 더 복합적이고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에 세계는 비교적 단순하게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양분돼 있었다. 그러나 바버가 보는 이 시대는 지하드와 맥월드로 나눠져 심각한 갈등과 충돌을 겪고있다. 바버가 지칭하는 '지하드'는 단순한 이슬람이 아닌, 근대화로부터 소외돼 근대성 자체를 부인하며, 聖戰이라는 미명 아래 기술문명, 대중문화, 시장통합에 반대하는 모든 종류의 극단적 민족주의와 근본주의의 상징이다. 반면 '맥도널드/M-TV/매킨토시'와 '월드'의 조어인 '맥월드'는 단순히 미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경제적 세계화를 주창하며, 정보, 통신, 엔터테인먼트, 시장경제를 통해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고 통합하려는 공격적인 후기 자본주의 가치관을 상징한다.

과연 바벨과 디즈니랜드로 표상되는 그 두 가치관 사이에서 세계는 지금 급속도로 양분화 되고 있다. 전자는 국민국가의 경계가 소멸되면 민족문화가 사라지고 인류의 미래가 바벨처럼 혼란에 빠져 들어갈 것이라고 보는 반면, 후자는 장밋빛 낙관론과 근거 없는 이상론에 젖어 머지않아 세계가 하나가 되는 지구촌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두 그룹 사이의 그러한 갈등과 충돌이 비단 이슬람과 미국, 또는 제3세계와 선진국 사이에서 뿐 아니라, 지금 각 나라들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풍요에서 제외돼 극단적 투쟁을 벌이는 소외된 계층과, 정보오락산업과 시장경제 지상주의로 치부한 계층 사이의 갈등, 그리고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사이의 충돌은 지금 한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버는 지하드의 극단적 근본주의나 맥월드의 독점자본주의가 둘다 민주주의와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고 우려하며, 그 해결책으로 그 두 세력을 견제하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킬 시민사회의 힘을 제시한다. 그리고 시장경제논리와 기업경영논리에 의한 무조건적 민영화 정책보다는 정부의 적절한 간섭을, 또 재미와 이윤과 독창성만을 추구하는 대신 각 나라 고유문화의 발굴과 부흥을 제안한다. 결국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폴 리쾨르가 말한 대로, "어떻게 하면 자국의 고유문화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세계문명에 동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시민사회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자는 것도 어쩌면 유토피아적인 희망사항인지도 모른다. 모든 나라의 시민의식이 다 비슷한 수준에 올라 있는 것도 아니고, 시민단체 또한 언제라도 권력 집단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처럼 정부가 너무 오랫동안 간섭하고 규제해온 나라의 경우에는 민영화가 훨씬 더 바람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맥월드가 이미 미국을 떠나 전지구적 문화표상이 됐다고 보는 바버의 시각은 정확하고 설득력을 갖는다. 그럼에도, 맥월드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으로 인해 그가 그것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가능성과 긍정적인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지적해야만 할 것이다. 예컨대 맥월드의 확산이 자국의 고유문화를 적극 개발하고 상품화해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거나 자극제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바버는 또 맥월드가 결국 세계적인 문화적 단일화 및 획일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물론 그러한 위험성은 늘 경계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외래의 것이 들어와 위협이 되면 모든 시스템은 즉시 자생적인 '共進化'를 시작해 스스로의 방어체계를 갖추게 되며, 그 시스템 내부에서 오히려 다양한 혼합문화가 생겨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만일 맥월드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그것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내 활용하는 한편, 그의 말대로 그것이 공공의 善을 해쳐 지하드의 테러를 유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필자는 뉴욕주립대에서 '바쓰와 핀천의 역사적, 신화적 상상력'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미문학비평과 문화비평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으며, 탈구조주의의 문학적 적용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는 '미국현대문학', '문학과 영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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