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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리뷰 : 『전환기 미국 정치의 변화와 지속성』(미국정치연구회 지음 | 오름 刊 | 431쪽| 2003)
주간 리뷰 : 『전환기 미국 정치의 변화와 지속성』(미국정치연구회 지음 | 오름 刊 | 431쪽| 2003)
  • 권용립 경성대
  • 승인 200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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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적 관점에 젖지 않으려면

한미관계가 외교의 거의 전부였던 냉전시대의 한국에 정작 미국 전문가는 없고 미국의 주 관심 대상이었던 공산권을 전공한 전문가들만 눈에 띄었다. 이런 역설은 미국의 관심을 우리까지 세계의 보편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냉전 구조의 산물이었다. 미국을 연구 대상으로 놓고 보기에는 우리 시선마저 미국화 돼버린 탓에, 지금까지 한국 속의 미국은 너무나 가까운 상대 즉 애증의 대상으로만 존재해 왔다. 그러다가 냉전 말기인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을 전공한 유학생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 것은 뒤늦게나마 미국을 ‘느낌의 상대’가 아닌 ‘연구의 대상’으로 설정하려는 반성의 시작이었다.

‘전환기 미국정치의 변화의 지속성’도 그 연장선에 있다. 특히 1980년대까지 한국의 미국정치론이 대부분 학술을 빙자한 미국 선전의 수준에 그친 반면, 이 책을 비롯한 근래의 연구들은 선전을 배제하고 ‘학술’의 범역을 지키려는 본격적 연구들이다. 미국정치, 관료제, 정당, 외교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한 열 한편의 논문을 모으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깊이보다 넓이를 도모한 셈이 되긴 했지만, 이 책은 서문에서 밝힌 대로 미국 정치와 외교의 현안들을 가급적 미국적 관점과 편견에서 해방된 시선으로 다루려는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80년대 초까지 전국평균보다 높았던 남부백인들의 민주당에 대한 정당일체감이 빠르게 감소되면서 90년대 들어 전국평균보다 낮아졌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주제와 깊이를 지닌 논문들을 모아 놓았기에 일관된 서평은 어렵다. 다만 ‘미국적 관점’에 물들지 않으려면 미국 정치의 개별 이슈들을 항상 미국 역사의 전체적 특성과 추세와 연관시켜 파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나라 문제에 관한 미국 정치학계 내의 이론 논쟁에 관한 고급 소개나 해설에 그치기 쉽기 때문이다. 한 예로, 1부에서 손병권 교수는 1996년의 ‘개인 책임법’을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의 권한 관계의 변화로 보는 미국 정치학계의 기능적 관점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이 법은 복지정책을 사회적 ‘기생 계층’에 대한 시혜로 보는 미국 주류 사회의 전통적 평등관과 최소 국가 관념이 1994년의 중간선거로 구체화된 공화당 우세하의 연방정치를 배경으로 해서 법제화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개인 책임법’은 단순히 연방제의 변화 여부를 가늠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2부에서 정진민 교수가 다룬 1980년대 이후 남부에서의 공화당 득세 현상이나, 3부의 논문들이 다루는 탈냉전 미국 외교의 변화 추이와도 궁극적으로 연관되는 문제로 볼 수도 있다.

2001년 이후의 세계정세에서 보듯이 미국의 정치를 분석, 예측하는 일이 어찌 미국만의 일이겠는가. 21세기 한반도의 화두처럼 돼버린 ‘미국’이 비록 출중한 몇몇 선객들만 나서야 할 과제는 아니겠지만, 일단 선도적 미국 연구자들의 작업부터 조용히 축적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면 이 책에서도 얼핏 엿보이는 용어 번역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미국 연구자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권용립 / 경성대,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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