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補職의 추억
補職의 추억
  • 김형순 순천대
  • 승인 2003.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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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김형순 / 순천대·재료공학

"아니 연구만 하던 김 교수가 보직을 맡다니, 그것도 재료전공자가 전산소장을". 몇 년 전에 대학 전자계산소장직을 맡게 되면서 들었던 이야기다. 2년의 임기를 마다하고 1년만에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말이다. 이유는 보직이 연구수행에 큰 장애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나의 도중하차가 이기적인 행동이라 혹평할 수 있겠지만 봉사활동이라고 하는 그 기간은 나에게 심리적인 부담감과 연구부실이란 큰 희생을 요구했다.

교수가 보직을 맡아 일하는 것을 대학에서 봉사활동이라고 한다. 학교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업무를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교수들을 만나야하며 주어진 보직수당으로 여러 사람들과 식사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수당을 받는 경제적 이점이 있으나 그 액수는 노동력과 시간에 비교할 수는 없다. 이력서에 한 줄 경력이 되겠지만 어떻든 보직기간은 대학에서 봉사기간이다. 이 보직자들은 대학 내에서 누군가 해야 할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선배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보직 활동이 길어지면 마약과 같아 독약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역으로 잘 활용하면 보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홍보해 인간관계의 폭을 확대할 수도 있고 정계로도 진출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공계 교수가 보직을 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직업무는 연구 활동에 바로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말 많은 교수들과 줄다리기를 잘 하기 위해서는 언변과 논리, 행정능력 등을 겸비해야 하는 자리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연구와 행정 중 하나만을 택하라는 조언도 있으며 연구 못하는 교수가 행정을 좋아한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둘 다 잘하는 성공적인 사례도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지난 보직 활동에 대해 그 당시 내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왜 그토록 못마땅하게 지켜봤을까. 지금에서야 곰곰이 생각하니 소위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겼다는 뜻도 내포된 것 같다. 하지만 보직교수가 꼭 전공분야와 관련이 되어야 하는가. 도서관장은 서지학/도서관학을 전공한 교수가 해야한다는 분류에 의한 접근은 편견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년간의 보직수행 동안에 연구실에 있던 학생들과 내 강의 수강생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회의 및 출장으로 휴강, 자주 잘린 강의시간 등은 분명 능력 부족 교수의 그것들이었으니까. 이것을 만회하겠다고 그 시기에 유행한 사이버강좌도 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학습방법은 효율성이 없다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대일의 지도와 격려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교육철학에도 모순되는 시기였고 동료교수들과의 관계도 덩달아 소원해졌다.

최근 대학총장의 연령이 낮아지는 만큼 보직교수들의 나이도 현저히 젊어지고 있다. 튀는 행정, 참신한 아이디어로 좋은 학생들을 유치하고 대학평가에서 고득점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젊은 층의 보직자들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연구수행여건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면, 공과 사를 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자질의 젊은 교수가 보직을 갖는 것이 대학의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고, 그런 인재발굴이 이뤄지는 대학에게 희망이 있다는 논리다. 보직수당보다는 봉사활동을 우선 순위로 자신을 희생하는 이들에게 대학의 모든 구성원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보직이 독약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올해는 수많은 학교위원회의 위원명단 중 내 이름 하나 찾아 볼 수 없었다. 연말에는 봉사활동 난을 비워둬야 할 것 같다. 동료교수들로부터 인심을 잃었는지, 행정경험이 없다고 평하는 것인지, 혹은 보직기간에 적을 많이 만들었는지, 밥을 사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자기성찰이 필요한 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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