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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비평: 한국 현대사에서 기록사진의 의미
사진비평: 한국 현대사에서 기록사진의 의미
  • 박주석
  • 승인 2003.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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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견제받는 사회적 발언...치열한 기록정신 기대

광주대 / 사진사

기록사진은 다른 분야의 사진과는 달리 한 시대의 사회적?정치적 환경에 따라 그 성격과 가치가 달라진다. 그것은 사진을 통한 기록이 기록되는 현실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이뤄지고, 역사적 사실의 보존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현상에 대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결국 기록 또는 기록사진이란 대단히 역사적이면서 비평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기록사진은 정치권력에게는 견제와 규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독일의 나찌 정부가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작업이 정치적, 대항적 성격을 띠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탄압하고 출판을 금지한 사실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사진은 해방 후부터 한국사진?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발전해왔고, 특히 한국전쟁 시기에 많은 사진가들이 전쟁의 상황을 기록하는 종군 사진가로 복무하면서 기록사진의 의식과 독자적인 방법론을 체득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1950년대 임석제, 성두경, 이경모, 임응식 등이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중의 삶을 기록사진으로 다루었고, 나아가 ‘新鮮會’라는 전문적인 기록사진가 그룹을 탄생시켰다. 1960년대에는 주명덕의 ‘섞여진 이름들’,이라는 기록사진의 고전을 만들어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시기 기록사진 분야의 정신적 근간은 ‘사실성’과 ‘기록성’이었다. 

특히 주명덕은 혼혈고아들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이슈화시킨 ‘홀트씨 고아원 展’(1966)이라는 개인 전람회를 중앙공보관에서 가졌으며, 이때 전시됐던 것을 ‘섞여진 이름들’이라는 사진 집으로 발간했다. 이 책에서 주명덕은 “사람들이 사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어찌 보면 사진은 예술의 최하위 개념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진은 전혀 그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사진은 사실성과 기록성이라는 엄청난 무기가 있으므로. 사진은 그것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다 볼 수 있고 그것이 바로 힘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이전에도 리얼리즘 사진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이제야 공식적으로 사진매체에 대한 태도와 사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미학적 근거로서 기록성과 사실성을 거론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 기록사진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이후 1970~1980년대 초까지, 유신과 5공화국을 거치면서 한국사진에서 괄목할만한 기록사진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기록사진의 비평적 성격에 대한 권력의 견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진가들의 무기력한 대응과 도피에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과 이후의 상처, 그리고 지속된 과정에 대한 진지한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은 사진가들의 치열한 반성을 요구한다. 진정한 기록과 기록사진의 가치는 어려운 시대일수록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기록사진의 역사에서 이 시기는 심한 전통의 단절 현상이 보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한국사진에서 기록사진의 전통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것은 필자에게는 무척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사진의 역사가 입증하듯이 기록이란 단순한 역사적 자료의 남김만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 사회에 대한 비평이며, 동시에 역사의 교훈인 것이다. 기록사진은 사진발명 이후 사진의 역사를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은 상당히 다양한 기록 매체가 발달해왔고, 어쩌면 사진은 기록의 중요한 역할을 새로운 영상매체에게 넘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록사진만의 독자적 기능, 즉 삶과 사건의 기록, 이에 따른 대상의 현재화, 그리고 사진가의 의지반영과 대상에 대한 주관적 해석의 폭넓은 가능성 때문에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사진 방법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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