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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16 - 스위프트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16 - 스위프트
  • 교수신문
  • 승인 2020.02.06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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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와 《걸리버 여행기》
야만적인 인간 야후의 세상과 달리 짐승 나비족이 유토피아를 이루고 사는 행성인 하늘을 나는 판도라가 나오는 영화 <아바타>를 보면서, 마찬가지로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가 나오는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 3부와, 휴이넘이라는 말이 나오는 그 4부를 합성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 것은 나 한 사람뿐일까? 나비족은 나바호라는 인디언 종족에서 따온 이름이어서, 악당인 인간이 미군처럼 과거에 인디언을 비롯한 여러 민족을 정복했듯이 2154년 미래의 나비족까지 정복하려고 한다고 생각되어 분노한 것은 나의 착각일까? 디스토피아인 미국이 유토피아인 소위 미개사회를 정복하는 것을 비판한 영화가 <아바타>라고 한다면 나는 영화를 제대로 못 본 것일까? 영화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나비족의 의식을 통해 인간의 육신에서 나비족의 육신으로 다시 부활하는 것을, 《걸리버 여행기》에서 걸리버가 말이 되고자 하는 꿈을 실현시킨 것이라고 보는 것도 착각일까?  

걸리버와 휴이넘의 대화에서 법률가들에 대한 비판(1856, 그랑빌)
걸리버와 휴이넘의 대화에서 법률가들에 대한 비판(1856, 그랑빌)

<아바타>가 SF라는 이유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지 못한 것처럼 SF소설가라는 이유로 노벨문학상 수상에서 제외된 작가가 어슐러 K. 르 귄이다. <아바타>가 아나키즘을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같은 SF인 《The Dispossessed: An Ambiguous Utopia》에서 작가인 르 귄은 스스로 아나키즘의 변용이라고 말한 오도니안 사상을 표현했다. 그 제목을 나는 ‘갖지 않는 자들’, 즉 ‘무소유자들’이라고 이해하는 데, 한국판 제목은 《빼앗긴 자들》이다. 소설 속에도 “당신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당신들은 자유입니다.”(414쪽)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 소설은 <아바타>보다 수 십 년 일찍 1974년에 나왔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에야 번역된 것을 보면 한국에서는 SF도, 아나키즘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토머스 모어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묘사되는 상상의 섬 이름이 바로 ‘유토피아’로 돈이나 법이 없는 곳이지만 플라톤의 《국가》처럼 여행의 자유가 제한되고, 가족제도를 무시한 통제사회이며, 식민지 건설 및 노예제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과연 이상적인 사회인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근대 최초의 아나키즘 이론가라고 불리는 영국의 고드윈이 아나키즘에 대한 힌트를 《걸리버 여행기》에서 얻었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더 거슬러 올라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그리고 더욱더 거슬러서 플라톤의 《국가》에서 얻은 것은 분명하다. 유토피아주의와 아나키즘은 사촌이라고 할 정도로 가깝지만 플라톤에서 모어에 이르는 유토피아는 아나키즘에 반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두 작품에 비해 《걸리버 여행기》는 보다 아나키즘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반아나키즘적인 측면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어린 시절부터 수십 번 읽었다고 하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이 그 책을 아나키즘 책이라고 보면서도 동시에 그 책의 반아나키즘적 측면을 비판한 점에는 수긍할만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나는 오웰보다는 훨씬 긍정적으로 《걸리버 여행기》를 평가한다.  

나는 2005년에 낸 《걸리버, 세상을 비웃다》에서 스위프트를 아나키스트라고 보았다. 그런데 그는 아일랜드인이 아닌 영국인으로서 후반생을 아일랜드에 있는 영국 성공회의 최고위 사제로 지낸 만큼 본래부터 아나키스트이기 어려웠을 터였다. 쉽게 비유하자면, 일제 강점기에 일본 신사의 권력자가 조선에 와서 조선 신사 책임자로 50년을 살면서 신채호처럼 일본 정부를 부정하는 아나키스트, 즉 반권력주의자로 활동한 셈이었다. 

따라서 그는 당연히 이중적일 수밖에 없었다.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공적인 종교인의 입장과 사적인 작가의 입장이 항상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는 보수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였다. 그는 대부분 가톨릭인 아일랜드 민중을 불신하면서도 의회주의를 신봉하는 자로서 언제나 민중의 편에 섰다. 고대를 찬양하면서도 현대를 무시할 수 없었다. 스위프트가 가면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의 글이 풍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아나키스트 스위프트

조너선 스위프트
조너선 스위프트

스위프트에 대한 지금까지의 평가는 대체로 그 같은 이중성에 초점이 모아졌다. 그러나 나는 스위프트는 이중적인 사람이 아니라 아나키스트였다고 본다. 왕이 지배하는 영국의 식민지에 살면서 그 왕을 부정하고 그 신하를 부정했으며, 그 체제와 학문을 부정했다. 특히 제국주의를 철저히 비판하고 부정했다. 18세기 영국문학사에서, 아니 영국 지성사에서 스위프트 말고 과연 어떤 사람이 그러했을까? 

반면 아일랜드 출신인 다른 작가들이 반권력주의자 아나키스트로 살았던 것은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일랜드는 7백 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49년에야 완전히 독립했으니 작가로서 그 지배자인 영국 정부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위프트는 철저히 이중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스위프트를 아나키스트라 본 사람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대표격인 조지 오웰조차 스위프트를 그렇게 부르면서도 그 앞에 ‘토리’라는 수식을 붙였다. 오웰은 스위프트가 평생 보수적인 토리당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끝내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스위프트를 그냥 아나키스트라고 부른다.

서울대 영문과 교수 송낙헌은 《걸리버 여행기》 번역서의 해설에서 스위프트가 “철저한 보수주의자였고, 국가와 교회(국교)의 권위를 신봉하며, 양식과 상식과 중용을 존중했다”(357쪽)고 한다. 그러나 이는 스위프트를 표면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특히 그 4부에서 반정부·반제국적인 스위프트를 볼 수 있는 반면 그 책 어디에서도 기도를 올리는 걸리버를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친정부·친제국적임은 물론 언제 어디서나 기도를 올리는 《로빈슨 크루소》와 너무나도 대조적인 점이기도 하다.

스위프트는 1667년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영국계 부모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였으니, 그의 출생은 마치 일본인이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태어난 것과 같았다. 더블린의 명문인 킬케니 스쿨과 트리니티 칼리지를 나온 후, 1688년의 명예혁명으로 제임스 2세의 왕위 양위와 그에 따른 아일랜드 침공으로 인해 더블린에 무질서가 만연하자 잉글랜드로 피신했다가 서리 주에 있는 정치가 윌리엄 템플 경의 집에서 템플이 1699년에 죽을 때까지 그의 비서를 지냈다. 그 사이에 아일랜드를 방문해 영국국교회의 성직자가 되었고, 1695년에 목사로 임명받았다. 

걸리버 여행기 초판본
걸리버 여행기 초판본

스위프트는 영국 정치계에 진출하고자 노력했으나, 템플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정치적인 출세 대신 당시 정권을 잡았던 토리당을 대표하는 정치 평론가로 활동했다. 1699년에 더블린으로 돌아온 스위프트는 성공회 신부로 지내면서 여러 권위 책을 썼다. 《걸리버 여행기》를 언제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대체로 1721년에서 1725년 사이에 집필하여 1726년에 출판했다고 본다. 1745년에 죽어 세인트패트릭 성당에 묻혔다. 벽면에는 그가 직접 쓴 다음과 같은 라틴어 비문이 새겨졌다. 

“신학박사이자 이 성당의 참사회장인 조너선 스위프트의 시신이 이곳에 묻혀 있다. 이제는 맹렬한 분노가 더이상 그의 마음을 괴롭힐 수 없으리라. 나그네여, 떠나시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전력을 다해 지고의 자유를 얻으려 한 이 사람을 본받으시오.”

 

 
스위프트의 아나키즘
스위프트는 ‘자유’를 의회 군주제의 시민의 조건으로 보았다. 그 점에서 그는 로크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로크와는 달리 그의 책에서는 시니컬한 염세주의자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영국민의 대부분을 “자연에서 지표면을 기어 다니며 악의가 없는 해충 중 가장 치명적인 종족”이라고 불렀다. 스위프트는 인류를 낮게 평가했고 야만인 풍자를 사용해 그들의 우월과 악을 비판하고 그들의 개선과 계몽을 위해 글을 썼다. 그는 폭정을 미워했고 특히 아일랜드에서의 영국 제국주의를 꾸준히 반대했다. 공중국 라퓨타(Laputa)의 비행 섬은 영국과 아일랜드에 대한 직접적인 풍자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스위프트는 유토피아와 반유토피아의 묘사를 사용하여 자기 나라의 악과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예를 들어 소인국 릴리퍼트(Lilliput)에는 사회가 엄격하게 분열되어 있고 정치적으로 터무니없는 곳이다. 대인국 브롭딩낵(Brobdingnag)에서는 주민들이 열심히 일하고 거의 욕망이 없고 단순한 미덕의 삶을 살고 있다. 알파벳의 글자 수를 초과하는 법은 허용되지 않는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릴리퍼트, 브롭딩낵, 라퓨타, 휴이넘, 야후 등)(1856, 그랑빌)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릴리퍼트, 브롭딩낵, 라퓨타, 휴이넘, 야후 등)(1856, 그랑빌)

2부 6장 마지막에서 국왕은 걸리버에게 다음과 같이 총정리를 해준다. “너는 이제까지 너의 조국에 대해서 아주 훌륭한 찬사를 보냈다. 입법자가 되기 위한 자격의 적절한 요소는, 무식과 게으름과 악덕이라는 것을, 너는 명백히 증명했다. 또한 법률을 왜곡하고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피하는 데 관심과 능력이 있는 자들이 법을 가장 잘 해설하고, 해석하며 이용한다는 것도 증명했다.”(송낙헌 옮김, 147-148쪽)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항해는 걸리버가 책의 4부에서 그린 휴이넘의 나라를 방문하는 것으로 법, 정부, 상업 및 전쟁을 통해 유럽 국가를 직접적으로 공격한다. 이 작품은 종종 반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고 아이러니하고 모호하지만, 고드윈은 스위프트가 과거나 현대의 작가들보다 정치적 정의에 대해 더욱 근본적으로 고찰했다고 보았다. 

스위프트는 야만적인 인간 야후와 달리 휴이넘을 이성적인 생물을 다스리기에 충분하다고 믿는 위엄 있는 말로 묘사한다. 그들은 보편적 자비와 완전한 성실을 실천하는 사회, 원시 공산주의라는 황금시대에 살고 있다. 즉 그들은 금속이나 옷이 없고 원하는 것도 거의 없다. 그들의 근본적인 최대치는 자연이 매우 쉽게 만족된다는 것이다. 인구는 도덕적 구속과 절제로 통제되고 남성과 여성은 절제, 근면, 운동 및 청결을 장려하는 동일한 교육을 받는다. 

휴이넘은 스스로 통치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권위, 법률 및 강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소위 이성적인 동물에게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를 밝혀주는 데 있어서, 천성과 이성이 충분한 지침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영국에는 다음과 같은 법이 있다. “우리에게는 한 집단의 인간들이 있는데, 이들은 받는 보수의 액수에 따라, 검은 것은 희고 흰 것은 검다고(그런 목적을 위해서 집대성된 말을 이용하여) 증명하는 기술을 젊을 때부터 훈련받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이 집단의 노예라 할 수 있습니다.”(292쪽)

변호사를 고용한다고 해도 그는 태어날 때부터 ‘거짓을 변호하는 데 훈련되어’ 진실을 변호하기 어렵고, 그가 조심스럽지 않으면 ‘법률의 영업을 방해하는 놈이라 해서 판사한테 꾸중을 듣고 동료의 미움을 사’기 때문에  불리하므로 결국 두 가지 방법밖에 없게 된다. “첫째는 상대방의 변호사에게 두 배의 요금을 주고 그를 매수하는 것”으로 “그러면 그 변호사는 그의 의뢰인 쪽에 정의가 있다고 넌지시 풍겨서 의뢰인을 배신할 수 있”거나, 둘째는 나의 변호사에게 그 소가 상대방의 소라고 인정하게 하고 나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이게 해 판사로부터 유리한 판결을 얻는 것이다.(293쪽) 판사란 “평생 동안 내내 진실과 정의에 편견을 품어 와서, 숙명적으로 사기와 위증과 탄압을 두둔해야만 되는 버릇에 빠진 자들”이고, 따라서 “속성과 직무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함으로써 그들의 장사를 망치게 하기보다, 정당한 측이 제공하는 고액의 뇌물을 거절하는 판사”가 있다. 한편 변호사들은 “상식적인 정의와 일반적인 인간의 이성에 위배되게 내려진 모든 판결”을 “판례라는 이름으로 가장 사악한 의견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내놓”고, “그러면 판사는 어김없이 그에 따라 판결”한다.  

그리고 “이 집단에는 그들 간에만 통하는 특이한 용어와 은어가 있어서, 다른 사람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고, 모든 법률을 그런 용어로 기술하며, 그 분량을 늘리기 위해 특별히 노력한다”거나 “이런 용어 때문에 그들은 진실과 허위, 옳고 그름의 핵심 자체를 혼동해버려서, 저의 조상이 6대에 걸쳐서 저에게 물려준 땅이 저의 소유인지 300마일 떨어진 타인의 소유인지를 결정하는 데에 30년이 걸”린다.

한편 정부는 분배를 조정하고 인구 증가를 규제하기 위해 4년마다 5~6일 동안 열리는 전국의 대표 위원회로 축소된다. 그들은 모든 결정에서 만장일치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의회는 법률을 만들지 않고 단지 권고를 촉구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합리적인 존재가 어떻게 강요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은 없고 조언이나 권고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법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성에 의해 지배된다. 

동시에 이 아나키즘 유토피아에는 강하게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사회의 단위는 강력한 가부장제 가족이며 경제는 야후의 노동에 근거한다. 합리적인 휴이넘은 인간의 따뜻함이나 열정이 없으며 강하게 금욕적이다. 그들은 성적 의미의 사랑이나 자신의 자녀에 대한 편견이 없다.  경제는 석기 시대의 경제이고 과학과 기술에는 명백한 관심이 없다. 땅에는 바퀴나 금속이 없다. 스위프트는 아마도 휴이넘을 이상적인 존재로 제시하는데 교묘한 아이러니로 보인다. 그러나 걸리버가 영국으로 돌아 왔을 때, 그는 말의 냄새와 태도를 선호하게 되었고, 가족에게 휴이넘에게 배운 ‘우수한 미덕의 교훈’을 적용하려고 시도한다. 

오웰은 휴이넘의 합리적 사회에는 개인적인 특유의 표현이나 개성이 발휘될 여지가 없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오웰은 야후 인류와 달리 휴이넘이 진정으로 이성에 의해 지배된다는 점을 간과한다. 그들에게는 이성과 열정, 양심과 욕구 사이에 갈등이 없다. 그들에 대한 진실은 보편적이고 자명하기 때문에, 순전히 이성적인 존재로서 그것들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스위프트의 입장은 의심할 여지없이 모호하고 역설적이다. 오웰이 지적한 대로 그는 합리적 아나키스트로 등장하는 토리당원이다. 아일랜드의 영국 정착민의 아들인 그는 아일랜드 경제적 독립을 요구했다. 그는 인류를 멸시했지만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스위프트의 평가와 영향 

걸리버와 야후(1856, 그랑빌)
걸리버와 야후(1856, 그랑빌)

스위프트의 선배가 토머스 모어라면, 후배로서는 윌리엄 모리스(1834~1896)와 오웰을 들 수 있다. 모리스는 19세기에 유일한 대영제국에 대한 비판자였고, 오웰은 20세기에 그런 유일한 비판자였다. 오웰은 스위프트를 좋아했고, 《걸리버 여행기》는 어려서부터 평생에 이르도록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문학 입문서였다. 특히 오웰의 《동물농장Animal Farm》과 《1984년》은 스위프트의 작품들과 대비되었고, 오웰은 영국의 다른 어떤 작가보다 스위프트의 감정, 통찰력, 언어 절약을 공유한다고 평가된다. 동시에 스위프트와 오웰은 둘 다 ‘모순된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성을 가진다. 즉 진보와 보수가 혼재했다. 이런 특성을 아나키즘과 반 아나키즘의 공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웰이 스위프트 이상으로 존경한 톨스토이한테도 이 같은 성향이 나타난다. 흔히 모어를 유토피아 작가, 오웰을 그 반대인 디스토피아 작가라고 하는데 그 사이에 있는 스위프트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동시에 그린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영문학에서는 스위프트를 중요하게 다루지만 가공의 인물인 셜록 홈즈의 박물관까지 있는 런던에 스위프트 박물관이 없다는 점은 매우 섭섭한 일이다. 런던이나 영국에서 스위프트를 별로 기념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를 대영제국을 가장 철저히 비판한 ‘매국적’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영국 문인들은 그를 싫어했다. 대부분 제국주의자들이었던 그들이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스위프트를 좋아할 리 없다. 솔직히 말해 나는 셰익스피어부터 해리 포터의 작가까지 5백년의 영국 문학을 제국주의 문학으로 규정한다. 그런 비판적 관점에 서지 않고 영문학을 무조건 찬양하는 한 우리의 영문학 연구는 사대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 문학보다 제국주의적인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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