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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이라크 파병 찬반논쟁 어떻게 풀 것인가?
이슈: 이라크 파병 찬반논쟁 어떻게 풀 것인가?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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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논리-사실관계 파악하려는 노력부터 우선

이라크 파병으로 온 나라가 내홍에 휩싸여 있다. 조기파병과 파병 절대불가가 여러 가지 주장으로 맞서고 있지만, 대화나 타협의 여지는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그 원인은 이념적 대결로 치닫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토론 및 여론형성 문화에서 발견된다. 각 측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추상적이고 예측적인 '설'들만 부딪히니, 설득력은 떨어지고 감정의 골만 더욱 깊이 팔 뿐이다.

파병과 국제법, 국내 헌법과의 거리

현재 파병반대론의 논리와 근거는 어느 정도 제시돼 있는 상태다. 서재정 코넬대 교수가 '사이버 참여연대'에 발표한 '파병을 하면 안되는 10가지 이유'라는 글은 파병 주장이 갖는 허점을 조목조목 짚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서 교수는 크게 법리적 차원, 국익적 차원, 이념적 차원에서 논리를 풀어가고 있다. 경제적 도움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미국이 석유 등 핵심 부분은 통제권을 놓지 않을 것이고, 장기전이 될수록 미국이 약속할 부분은 줄어든다"라고 지적하고, 경제보복설에 대해서도 "일부 보수강경분파의 보복 수단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분석으로 맞받았다. 유엔동의 후 파병설에 대해서도 "점령군에 다국적군을 허락할 리 없고, 동의해도 '평화유지군'이기 때문에 유엔동의를 파병의 시금석으로 삼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전투병 파병과 한반도 안정에 대해서도 무관설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공병대, 의료부대 파병 후에도 미국의 대북압박은 계속됐기 때문"이다. 결정타가 남았다. 바로 "파병이 국제법과 국내 헌법을 위배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선언하고 있으며 "유엔헌장 등의 국제법 또한 공격과 점령을 금하고 있다."

서 교수는 또한 파병이 한미간의 우호관계 개선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미군에게도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에 비해 파병반대 주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박 논리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현재 대표적 파병찬성론자 가운데 한 사람은 양신규 뉴욕대 교수는 "파병하면 미국의 꼬붕으로 찍히고, 아랍권과 틀어지고 국제위상이 나빠질 거라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현대건설의 1조3천억 미수금 등을 이라크정부로부터 받아내야 하고, 미군정은 우선순위를 정해서 후세인 정부가 진 이라크의 부채를 이행해야 하는데, 대규모파병을 하면 할수록 이 협상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 나아가서 이라크치안이 안정되면 이라크와 인접국에서도 개발붐이 일어날 것이라는 제2의 중동특수설이다. 나아가 "국익을 위해서는 인명살상을 어느 정도는 감수하는 게 헌법의 도덕적, 법률적 정언"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공론 형성 문화의 취약성과 소모적 논쟁

하지만 이 글에서 헌법을 달리 해석한 것을 제외하고는 서재정 교수로 대표되는 파병불가론의 비판에 대한 해명이나 반박은 찾아볼 수 없다. 결국 국제정세와 경제·정치논리에 기반한 주장이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론에서 내세우는 주장 가운데 "전쟁지역으로 우리자식들을 보낼 수 없다"라는 주장이라든지, "대량 인명피해가 일어날 것"이라는 극단설에 대해서는 검증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한겨레 종군기자의 현지보도에서 보듯, 이라크 국민들이 한국 공병단에 갖고 있는 호의적 감정과 그곳이 사실상 전쟁이 종료된 지역이라는 보도는 이 땅의 많은 평화론자, 명분론자들에게 사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 사회에 사실관계를 파악하려는 가장 기본적인 노력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현재 정국은 한승주 재미대사를 비롯해 정부 고위층의 잇따른 파병지지 발언 이후, 학계·시민단체의 파병반대론은 집단적 시위와 공동선언문 채택 등으로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현지조사단으로 이라크에 다녀온 박건영 가톨릭대 교수의 양심선언에서 밝혀졌듯 정부의 현지조사는 말도 안될 만큼 불성실한 수준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정확한 현실파악, 사실적 증거의 확보와 조합을 통한 대화분위기를 조성해나갈 필요가 절실할 때다. 과연 파병 여부가 국운을 가를 만큼 심각한 문제인지를 이 시점에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란 말인가.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전문가 의견]

대안론적 입장

“지금 상황을 잘 이용한다면 한반도 긴장완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한미동맹관계는 재조정의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데, 지금 파병찬성으로 한미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간다면 한국은 완전히 MD체제에 편입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한반도 안정과는 배치될 것이다. 때문에 지금은 이라크 시민과 한국 시민과의 연대를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등의 새로운 주체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구갑우 / 경남대 / 국제정치) 

“구호개발 NGO들은 한국군파병과 관계없이 이라크 시민사회 재건에 힘쓰며 장기적인 대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단순히 난민들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환경과 구조개혁으로 시민사회 구축과 활성화에 목표를 두고 적극적인 평화를 지원한다. 현재 국가차원애서만 파병의 찬반을 논할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운동을 보다 활성화시켜 국가행위를 조정하거나 견제하는 역할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한재광 / 지구촌나눔운동)

현실론적 입장

“한미동맹관계를 기본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 현재 미 부시정권이 국민의 동의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지도를 끌어올릴 가능성은 충분히 있기에 미국의 패권적 힘을 의심할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실천적인 면에서 국내의 파병의 최소화라는 조건을 내걸고 시민단체등의 지원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에 대해 대안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박재영 / 경상대 / 국제관계)

“파병문제는 외교차원의 문제이기에 도덕론과 명분론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결과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국익의 차원에서 논쟁이 이분법적으로 분열되는 건 소모적이다. 국익 자체가 애매한 개념이긴 하지만, 일정 선상에서 미국의 인권이나 민주화 개념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신중하게 한국이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들을 현실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신욱희 / 서울대 / 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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