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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봉봉 오스카 4관왕, 철학자는 이렇게 보았다 '기생춘향전'
봉봉봉봉 오스카 4관왕, 철학자는 이렇게 보았다 '기생춘향전'
  • 장성환
  • 승인 2020.02.2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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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사진 = CJ ENM 제공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오스카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에 이르는 4개 부분을 석권했다. 가문의 영광, 충무로의 경사를 넘어 국가의 영예다. 그냥 코리아도 아닌 ‘남 코리아(South Korea)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이름을 걸다니 보통 신나는 일이 아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북핵, 사드, 미군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에서 긍정의 아이콘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기꺼이 봉준호 만세다.
<기생충>의 주제인 양극화가 부정적이라고? 아니다. 부정적인 것은 오히려 세계화 그 자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속에서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을 즐기고 누리면서도 아파하고 억울해한다. 양극화는 세계화이고, 세계화는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우리에게 가져다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가 안 되면 너무도 먹고살기 힘들고, 그래서 세계화하면 더욱 먹고살기 힘들게 된다. 
뭐 이런 빌어먹을 모순이 있나. 먹을 것이 없어 씨앗을 먹고, 그래서 해가 갈수록 먹고살기 힘들어지다니. 특단의 조치 없이는 이런 상황은 나아지기 힘들다. 퀀텀펀드 이사장 소로스의 말처럼,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자신과 같은 사람도 먹고살기 힘들어지는 구조로 나가니 재벌이 앞장서서 이를 해소해야 할는지 모른다. ‘억수로 돈 많은 우리, 세금 더 내뿝시다.’ 안전한 세상을 위한 사회적 비용도 심각하게 걱정되고, 소비층이 건전해야 재벌이 계속 돈 벌 수 있단다.   
<기생충>은 우리를 기생충으로 부른다. 아무리 듣기 싫어도 그런 뜻이다. 그것이 우리가 아니라고 공연히 착각하지 말자-봉준호는 애써 이를 숨김으로써 극중 상황을 타자화시키고, 타자화 덕분에 관객은 웃지만, 사실은 ‘너네들’ 이야기다. 
우리는 기생충일 뿐이다. 재벌의 돈을 빼먹는, 자산가의 돈을 떼어먹는, 기업인의 돈을 빨아먹는, 나라의 돈을 축내는 일개 기생충일 뿐이다. <기생충>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다. 그래서 몰입되고, 매혹적이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그곳, 그래서 기생하여 함께 살아보고자 하는 ‘나’(기생충)의 전략과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의 꿈은 너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내 삶이 곧 그렇다. 그것이 내 생존의 길일뿐이다. 악의는 없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살아야겠다. 
영화와 드라마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도 <기생충>의 탄생을 위해 길을 닦았던 두 드라마 이야기는 꼭 해야겠다. 그런 드라마의 결집이 영화다. 
‘드라마가 뭐라고!’라며 낮춰볼 수도 있다. 스스로도 드라마의 무게를 책과 사상보다 긍정하고 싶지 않지만, 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대중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별일 아닌 듯싶지만 나만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다시 본다. 드라마 속의 일을 투영해서 나를 거듭 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거듭’이란 재생(再生)이요, 갱생(更生)이다. 
먼저, 배용준의 <겨울연가>가 일본에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당시 일본에서 나는 배용준의 사진엽서를 지니고 다니면서 길을 가르쳐준 아줌마, 식당의 친절한 주인에게 돌렸다(인천공항에서 엽서를 팔기에). 말로 가르쳐주던 사람이 역전까지 데려다주지 않나, 음식을 더 가져다주지 않나, 사진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움직이게끔 만드는지 신기했다. 언어를 떠들었으면 행위가 절로 따른다는 ‘화행’(話行: speech act)이라는 어려운 이야기도, 말을 하면 사람의 행동이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완수’(performance)라는 이론도, 사진 한 장으로 증명되고 있었다. 당시에 찾은 삿포로의 얼음축제는 정말 괜히 갔다. 얼음조각의 대부분이 배용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게 잡은 캡슐호텔을 취소하고 밤늦게 남하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이렇다. 재일동포부터 우리나라 사람까지 한국말을 쉬쉬하며 할 때가 1980년대였는데, 무척이나 신기하게도 <겨울연가> 이후 한국어의 톤이 올라가 있었다. 전철에서도, 식당에서도 그랬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한류가 뭐길래’라며 한류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정당당해진 교포의 자세와 어조를 통해 배용준과 그 드라마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뼈저리게 멸시받던 재일동포의 한을 배용준이 한 꼭지는 풀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철학이 그만한 역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재일동포는 목소리가 없는 사람에서 목소리가 있는 사람으로 ‘재생’되고 있었다.(우연히도 이번에 남우주연상을 받은 푸에리토리코 출신의 호아킨 피닉스가 영화는 ‘목소리 없는 사람voiceless’을 대변한다는 것과 통한다)
다음은 <대장금>이다. 연속극을 이어 볼 재간이 없는 나로서는 미국에서야 이를 비디오로 몰아볼 수 있었다. 한 줄의 기록에 상상력을 덧붙여 그런 장편 드라마를 만들다니, 재주가 놀라웠다. 사극이 갖는 재미는 ‘어쩔 수 없는 것’이 많은 데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이란 신분제, 남녀 차별, 무지막지한 권력, 절대 악과 절대 선으로 구분되는 역사적 분법, 그리고 운명으로 번역되는 지속적인 우연한 만남들이다. 사극에서는 ‘왜 못해?’, ‘왜 안 해?’라고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감정이 집중된다. ‘바보 같아서’가 아니라, ‘오직 시대 때문’이니 얼마나 안타깝고 억울한가. 
<대장금>이 중국의 안방극장에도 방영된 이후, 나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받았다. ‘한국 사람들은 다 그렇게 먹고살아요?’ 참네, 중국인들이 못살던 시절이기도 했고, 묻는 사람이 앞뒤가 막히기도 했지만, 어떻게 장금이의 요리를 일개 한국인이 먹고산다고 상상한단 말인가.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황제요?’ 임금님께 바치던 요리를 만들던 장금이인데, 그녀가 한국의 요리사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한국인들은 그렇게 먹고 살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니 놀랍다. 그렇게 우리는 못 먹는 한국인에서 잘 먹는 한국인으로 ‘갱생’하고 있었다.(우리 시절의 주된 표어 가운데 하나가 ‘자력갱생自力更生’이었다)
이 이야기를 쉽게 말하련다. 나는 중학교 때 <벤허>를 보고 ‘이런 더러운 나라, 슬픈 나라, 부끄러운 나라’를 외치며 극장 광장에 섰다. 황금 전차를 모는 로마인들 앞에서 난 정말로 창피했다. 우리 조상은 무엇을 했고, 우리 현실은 왜 이 모양이고, 우리 앞날은 정말로 희망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내 앞에는 땅바닥을 기며 구걸하는 상이(傷痍) 군인이 천지였고, 골목마다 폐지 한 장이라도 건지려는 넝마주이가 돌아다녔으며, ‘문둥이’라고 불리던 한센환자들은 떼를 지어 이 마을 저 마을로 옮겨 다녔다. 그들의 손은 쇠갈고리 손이 아니면 붕대로 칭칭 에워싼 손이었고, 멀쩡해야 비로소 미군 깡통이나 종이를 주울 집게를 들고 있었다. 나의 대한민국이 그랬다. 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이랬다. 그러나 <대장금>과 <겨울연가> 이후, 일본인과 중국인이 우리를 보는 시작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다. 할리우드 자본으로 그려낸 로마인과 마찬가지로, 나는 배용준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고, 나는 대장금이 해준 밥을 먹는 사람이 된 것이다. 홉스봄의 주장처럼, 역사는 이렇게 자본과 문화에 의해 창작되고(invented) 있었다. 
여기서 나는 전통 철학을 말하고 싶다. 음양이 함께 가는 세계,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가치관, 그리하여 한 작품 안에도 희극과 비극이 함께 어우러지게 배치하는 예술관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배용준의 점잖은 이야기 뒤에는 친구나 직장 동료의 웃긴 이야기가 있고, 이영애의 슬픈 이야기와 함께 그녀의 부모의 방정맞은 웃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연속극이나 영화 모두 비극이면 비극, 희극이면 희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긴장과 이완을 주는 데 탁월하다. 심지어 서사만이 평행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인물조차 희비를 겸비한다. 그런 점에서 음양의 태극을 무척이나 닮았다는 것이다. 내 속에 너 있고, 네 속에 나 있다. 슬픔 속에 기쁨 있고, 기쁨 속에 슬픔 있다. 선은 악 속에서 도드라지고, 악은 선 속에서 더욱 악하다. 나는 이를 ‘평행주의’(parallelism)라고 부른다. 희비병진, 음양대대(對待), 대구법(對句法) 그리고 병행진화의 뜻을 담는다.  
그런데 이런 구조는 전통 서사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심청전>이 그렇고, <춘향전>이 그렇다. 심청이의 선한 성격, 뺑덕어멈의 악한 성격, 그 가운데 어정쩡한 심 봉사. 심청이의 뒤바뀌는 운명, 뺑덕어멈에 대한 징악(懲惡), 심 봉사의 왔다 갔다 하는 인생. 심청이가 슬프다면 뺑덕어멈과 심 봉사는 웃긴다.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 비극적이라면, 방자와 향단이의 사랑은 희극적이다. 그리하여 통일되는 비극과 희극. 거기에 이야기를 서술하거나 증폭하는 월매까지 끼면 희극과 비극이라는 구분된 장르는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기생충>이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바로 이런 지점이다. 슬프면서도 웃긴, 웃기면서도 슬픈 것이다. 비극을 앞세우는 서구 미학이 좇지 못하는 우리의 영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고, 이른바 한류의 원형은 춘향이로 대표될 수 있는 ‘희비극’ 합체의 형태인 것이다. 그것이 세계인의 주의를 모은 것이다. 
봉준호는 운도 좋았다. 아무리 좋은 작품도 그들이 ‘외국어영화상’이 아닌 ‘국제영화상’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기 전에는 상을 받기 어려웠다. 남의 말로 된 영화가 아닌 세계 속에서 훌륭한 영화를 찾으려는 자세의 변화가 없었다면 봉준호도 힘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욱이 봉준호 식의 웃음 코드가 없었다면 미국인은 절레절레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바로 그 코드가 방자의 코드이며, 심 봉사의 코드다. 유럽 영화의 심각함과 미국 영화의 때려 부수기가 봉준호를 통해 변증법적 합일을 이루게 된 것이다. 찝찝하면서도 웃긴 <기생충>은 그래서 총 174개의 상을 거머쥐면서 세계 속에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송강호 배우도 걱정을 마시라. 내 판단에는, 아직 서구인들이, 아니 정확히는 비한국인들이 배우의 양면적 성격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웃기면 웃기고, 무서우면 무서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송강호의 배역을 이해 못 하는 것이다. 이런 심미 코드는 조선 사람만이 익숙한 것이니 세계인이 아직 모른다고 해서 화낼 일이 아니다. 
송강호는 그런 점에서 아직 참고 견뎌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 그 이중성, 음양성, 태극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송강호야말로 ‘저기서 이리로, 여기서 저리로, 매우 빠르게 왔다 갔다’하는 최고의 배우임을 알게 될 것이다. 선악은 따로 연출되기도 하고 서로 착종시키기도 하지만, 희비만큼은 함께 다루지 못하는 미의식의 한계 속에서 송강호는 남우주연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 속의 송강호를 이해할 때가 바로 그들이 배우 송강호를 알아차릴 때다. 송강호는 자신은 가장 못생겼고, 아직 한국에는 잘생긴 50명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50명의 브레드 피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한국 배우 가운데에는 못생긴 오직 한 명의 송강호가 있다.  
나도 학교에서 영화를 가르치지만, 어려운 영화는 학생들이 질색한다. 그래도 끼워 넣는데, 학기말에 ‘좋았던 것, 나빴던 것’(Best, Worst)를 적어내라고 해서 빼버리기도 한다. 빠진 것 가운데, <베를린 천사의 시>의 원작자인 피터 한트케가 마침내 노벨상(2019)을 타게 되어 기뻤고, 이미 노벨상(1998)을 탄 주제 사라마구의 <에너미>(원작 도플갱어)를 개인 감상 과제로 내서 흡족한 결과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영 화를 꼽지 못해 늘 안타까웠다. 이제는 손꼽을 영화가 생겨서 즐겁다. 그 영화의 이름은 <기생춘향전>이다.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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