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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시대의 고독한 연구자 
불안한 시대의 고독한 연구자 
  • 교수신문
  • 승인 2020.03.0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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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청탁을 받고 연구자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삶의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뉴스를 확인하기가 무서울 정도로 코로나19가 하루가 다르게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삶도, 일상도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잠식당하고 있다. 아직 요원하다고 생각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감염의 확산과 함께 일상에 침투된다. 평온한 일상이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오버랩 되고, 심리적 충격이 지진의 여파처럼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못지않게 전염력을 가지고 일상을 집어삼키는 건,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의 바이러스다. 생각과 신념은 이것보다 한층 더 강력하다. 모 종교단체를 통한 집단 전파가 그렇게 빨랐던 것도, 신도가 하나의 감염 매개체가 되어 포교활동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들이 믿는 신념은 인간을 “비판적 사고”가 끼어들 틈이 없는 진공포장의 상태로 만들어 왕성한 활동력을 가진 전파자로 양산시켰다. 신념도 하나의 바이러스고 생각도 하나의 바이러스이다. 유튜브에, 티비에, 신문에 수많은 매체들이 날마다 수만 가지 바이러스를 실어 나른다. 한류와 같은 긍정적인 문화가 생성되어 전 세계에 전파될 때도 있고 독재와 같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한 나라를 집어삼킬 때가 있다.  

과거와는 다르게, 시·공간이 활짝 열려버린 시대에서 우리는 이제 날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여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최고의 사투는,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것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전투 가운데서,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싸움이다. 내 안의 괴물처럼 커져가는 공포를 누르고, 여전히 이 세상과 공존하기 위해 암중모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고독해져야 하는 시대가 왔다. 연구자는 원래 고독과 함께 하는 존재였다.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중심을 잡고 멈추어 서서 세상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자이다. 처음에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하루 빨리 교수가 되어, 대학 강단에 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연구자보다는 지식 전달자에 방점을 두었다. 그러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고 시간이 점점 흘러, ‘나는 무엇을 위해 연구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아니,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형태의 것인가 라는 좀 더 존재론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교수는 하나의 직업이지만, 연구자는 말 그대로 “연구하는 사람”이다. 

연구자는 우선적으로 보는 자이다. 말을 하기 전에 세상을 응시하는 자이고, 행동하기 전에 대상을 관찰하는 자이며, 앞에 나서서 대중들을 선동하기 전에 홀로 앉아 사유하는 자이다.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것들을 부나방처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촛불 하나를 켜고 무지의 어둠을 밝혀내는 존재인 것이다. 보는 눈에는 세계를 구축하는 힘이 있다. 나의 중심이, 나의 내부가 갉아 먹히지 않게 끊임없이 채우고 비우고 다시 응시하는 관찰자로서의 눈은, 텅 빈 것 같으면서도 결국 모든 것을 담아낸다.  

졸업 이후의 삶들이 축축 늘어질 때, 가뭄에 단비 내리듯 연구재단에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보장되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최소한 연구자로서의 삶까지 포기하지 않을 만큼 희망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불안한 여정은 계속될 테지만, 그것은 코로나와의 전쟁만큼이나 내 생명의 한계를 제대로 응시하며 한걸음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이미옥 
서울대학교에서 한·중 현대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명지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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