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2:55 (금)
[인문학 진흥을 위한 제언] <1> : 교양교육의 개편
[인문학 진흥을 위한 제언] <1> : 교양교육의 개편
  • 전수용 이화여대
  • 승인 2001.03.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3-20 22:02:49
전수용/이화여대·영문학

학부제에서는 교양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학부제에서는 전공이수학점이 원칙적으로 30∼36학점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학생이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교양과목이 대학교육에서 담당하는 비중이 2/3이상이 될 수도 있다. 이는 학부제가 원래 전문대학원이나 일반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기초학문을 연마하는 동시에 폭넓은 교양을 쌓기 위하여 고안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부제의 원산지인 미국 대학에서는 교양과목의 충실한 운영에 많은 역량을 안배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의 대학에서는 교양과목은 주로 시간강사들이 담당하는 과목으로 많은 경우에 대형강의에 의존하며, 전임교수들은 의무강의 시간을 전공과목으로 채울 수 없을 때 마지못해 맡게되는 과목으로 생각해 왔다. 학부제의 원래 취지인 폭넓은 교양인의 양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대학의 교양교육을 이런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다.
학부제 실시 이후 한국의 대학에서는 교양필수과목 수(4, 5개 정도)도 줄어들어 학생들은 이수학점의 절반이상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모범적인 교양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대학에서는 어떤 방법을 택하고 있는가? 1930년대에 획기적인 교양교육안을 마련한 것으로 유명한 대학원중심의 연구대학의 대표적 예인 시카고대학의 예를 살펴보면, 학교에서 상당히 구조화되고 체계적인 교양과목들을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이수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대학 교양과목, ‘백화점식’ 개론일 뿐
모든 입학생들은 인문, 사회, 자연과학 분야의 교양과목을 고루 이수하도록 되어있는데, 이는 하나의 전공을 택하더라도 다른 분야의 지식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학제적 교류를 통한 창조적 사고의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에 근거한 정책이다. 모든 입학생은 5학기의 과학과목(생물학 2학기, 물리학 2학기, 수학 1학기), 6학기의 인문학, 문명 및 예술과목, 3학기의 사회과학 과목을 이수하도록 되어있다. 이 과목들을 공통중핵과목들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대개 2학기, 3학기, 혹은 5학기까지의 연속강의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이 연강과목들을 이수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교양과목들처럼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개론과목들을 이것저것 섭렵하는 것이 아니고, 선택된 몇몇 분야에 대하여 집중적이고 심도있는 학습을 하도록 고안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인문학분야의 중핵연강과목은 98, 99년 교과과정에 따르면 여섯 종류가 있고, 학생들은 이들 중 하나를 3학기에 걸쳐 이수하도록 되어있다. 이 과목들의 주제는 ‘세계문학 강독’, ‘인문학에서 철학적 관점’, ‘그리스의 사상과 문학’, ‘인간과 시민’, ‘문화 읽기: 수집, 여행과 자본주의의 문화’, ‘인문학에서 언어에 대한 관점’이다.

읽기·사고하기·글쓰기 훈련의 시간으로
그리고 이 과목들은 반편성을 소수로 제한하여 교수의 충분한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훈련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글쓰기 과제를 도와주는 조교들이 배치되어 있다. 많은 과목을 체계 없이 늘어놓는 대신에, 몇개로 통합하여, 집중적인 읽기 및 사고와 글쓰기 훈련을 받도록 고안되어 교육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제도의 도입은 한국의 대학들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본의 동경대학도 교양과목의 강화를 위한 특별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학생들은 대개 1, 2학년 과정에서 학교가 요구하는 교양과목들을 이수하도록 되어있는데, 3, 4학년과 대학원에서는 교양과목을 전공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이는 학부제 대학에서 그 중요성이 날로 더해가는 교양과목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제도이다. 학제적 과목들의 개발, 새시대의 기술적 요구의 변화 등 전공교수들이 남는 역량으로 감당하기에는 힘든 문제들을 전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력을 생산하자는 것이다. 이것 또한 반쯤 진척되어 있는 한국의 학부제를 내실있게 운영하기 위하여 고려해 봄직한 안이라고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